탐방구간: 낙동강휴게소-구미보-금오서원
탐방일자: 2024. 6. 5일(수)
탐방코스: 낙동강휴게소(하행)-월암서원-도개동타워전망대-구미보-금오서원
탐방시간: 9시16분-16시51분(7시간35분)
동행 : 나 홀로
이번에 낙동강을 따라 걸은 지역은 경상북도 구미시(龜尾市)입니다. 구미시는 신라 초기에 일선군으로 불린 후 1995년 구미시로 승격되기까지 여러 번 지명이 바뀌었습니다. 신라 진평왕 36년인 614년에는 일선군이 일선주로 승격되었고, 경덕왕 16년인 757년에는 숭선군으로, 고려 시대에는 선주로, 조선시대 태종 13년인 1413년에 선산군으로 개칭되어 6백년 가까이 지속되었습니다. 1978년 선산군의 구미읍이 구미시로 승격되어 선산군과 구미시가 분리되었다가 1995년 1월 1일자로 구미시와 선산군이 통합되어 오늘의 도농복합형 구미시가 된 것입니다.
조선 후기 실학자인 이중환(李重煥, 1690~1752)은 저서 『택리지(擇里志)』에서 ”조선 인재의 반은 영남에 있고 영남 인재의 반은 일선(一善)에 있다“고 말했습니다. 여기서 언급된 일선(一善)은 선산(善山)을 가리키는 오늘의 구미시입니다.
선산에 인재가 많은 것은 선산의 지리적 조건이 좋아서일 것입니다. 이중환이 살기 좋은 곳으로 칭찬한 곳은 선산과 인접한 상주(尙州)였습니다. 상주는 조령 밑에 있는 큰 도회지로 산이 웅장하고 들이 넓으며, 북쪽으로는 조령과 가까워 충청도 및 경기도와 통하고, 남쪽으로는 낙동강에 임해서 김해 및 동래와 잘 통해 뭍길과 물길이 모여드는 곳으로 무역을 하기에 편리한 곳이라 했습니다. 상주에 우복(愚伏) 정경세(鄭經世, 1563-1633)와 창석(蒼石) 이준(李埈, 1560-1635) 같은 훌륭한 선비나 높은 벼슬을 지낸 사람들 및 부유한 사람들도 많았던 것은 상주의 지리적 이점 때문이라 했습니다.
이중환이 상주만큼 상찬한 지역은 ”남쪽에 있는 선산은 산천이 상주보다 더욱 깨끗하고 맑다“라고 말한 선산(善山)입니다. 이중환의 상찬이 틀리지 않아 선산은 야은(冶隱) 길재(吉再, 1353-1419)와 단계(丹溪) 하위지(河緯地, 1412~1456) 같은 충절이 빼어난 인물들을 배출했습니다. 선산이 배출한 인물로는 금오서원에 배향된 길재선생과 월암서원에 배향된 하위지 선생 외에도 여러분이 더 있습니다. 고려 말의 김주(金澍), 조선 시대 김숙자(金叔滋) · 김종직(金宗直) · 이맹전(李孟專) · 장현광(張顯光)이나 일제 시대 장지연(張志淵), 그리고 미군정 시대의 장택상(張澤相) 같은 인물들이 바로 선산 분들입니다.
선산에서 인재가 지속적으로 나오지 않은 것은 “임진년에 명나라 군사가 이곳을 지나가다 명나라 술사(術士)가 외국에 인재가 많은 것을 꺼리어 군사를 시켜 고을 뒤 산맥을 끊고 숯불을 띄워 뜸질하게 한 것”과 “큰 쇠못을 박아 땅의 정기를 눌렀기 때문”이라고 이중환은 그의 저서 『택리지』에 적고 있습니다. 이 글은 이중환이 풍수지리설(?)의 영향을 벗어나지 못해 실학자로서 한계를 드러낸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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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경주로 가는 고속버스를 타고 가다 낙동강휴게소(하행)에서 하차했습니다. 이번에 낙동강휴게소에서 낙동강 좌안의 가산제 제방길로 쉽게 이동할 수 있었던 것은 카카오맵의 스카이뷰를 열어 미리 길을 익혀두었기 때문입니다.
9시16분 낙동강의성휴게소(하행)를 출발했습니다. 이 휴게소 북단의 ‘언약의 장소’ 소공원(?)에서 서쪽으로 나 있는 야산의 호젓한 산길로 들어섰습니다. 경운기가 다닐만한 넓은 산길을 따라 내려가 볏모가 가지런히 이식된 넓은 들판을 지났습니다. 휴게소 출발 20분이 지나 올라선 가산제 둑방 길에서 의성군단밀면과 구미시도개면 경계점을 확인하고 낙동강 좌안의 하천부지로 내려가자 진노랑의 금계국 꽃이 활짝 피어 마치 화원(花原)에 들어선 듯했습니다. 강가로 다가가 잔잔히 흐르는 낙동강의 물흐름을 카메라에 옮겨 담은 후 다시 제방길로 올라서 남진했습니다. 가산리양수장의 철망에 걸려 있는 “개자식아!!! 쳐 먹고 싶냐!”라는 낙서를 보고 증오감에 사로잡힌 정신이상자가 이처럼 평온한 시골에도 있나 싶어 씁쓰레했습니다. 월림제 제방길로 들어선 지 얼마 후 2층 양옥의 단아한 독채 건물을 지나면서 생각한 것은 낙동강의 전망처로 이만한 집이 따로 있겠나 하는 것이었습니다.
11시41분 월암서원(月巖書院)을 들렀습니다. 자전거쉼터에 도착해 미리 와서 쉬고 있는 젊은 바이커들과 인사를 나눈 후 얼마간 더 걸어가자 월림제 제방길이 끝나고 강변 길이 이어졌습니다. 보라색의 갈퀴나물꽃이 활짝 핀 강변을 지나 다시 제방길로 올라서 뒤를 돌아보자 산비탈에 세워진 월암서원이 바로 앞에 보였습니다. 자칫했으면 그냥 지나쳤을 월암서원을 찾아가 서원 안을 둘러본 후 낙동강을 조망했습니다.
조선조 인조 8년인 1630년에 지방 유림의 공의로 창건된 월암서원은 구미시 도개면 월암리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선산이 배출한 농암(籠巖) 김주(金澍) , 단계(丹溪) 하위지(河緯地) , 경은(耕隱) 이맹전(李孟專) 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하여 창건된 이 건물이 서원으로 승격된 것은 숙종 20년인 1694년의 일입니다. 1868년 대원군의 서원철폐로 훼철된 서원 터에 1960년 정자를 세웠고 2001년에 복원해 고유제를 올렸다고 ‘월암서원’ 비문은 전하고 있습니다. 이 서원을 대표하는 강당인 구인당(求仁堂)은 가운데 마루와 양쪽에 공부방이 배치되어 있는데 규모가 작아 학생들이 많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뒤쪽 축대 위에 자리한 사당은 문짝이 모두 청색으로 칠해져 있어 눈길을 끌었습니다.
낙동강의 정경이 한눈에 잡히는 월암서원에서 임호2제 제방길로 이동하자 먼발치로 높은 산이 보였는데, 그 산이 해발 594m의 냉산이라는 것은 나중에 알았습니다.
13시46분 선산대교에 다다랐습니다. 임호2제가 짧은 것은 북동쪽의 동산지에서 내려오는 지천을 만나서였습니다. 이 지천 위에 놓인 월림교를 건너 들어선 임호1제도 길지 않았는데, 그 까닭 또한 이 제방이 낙동강의 제1지류인 신곡천에서 끝나기 때문입니다. 신곡천 앞에서 왼쪽으로 내려가 신곡교를 건너 도개제 제방길로 들어섰습니다. 도개제 오른쪽 하천부지에는 도개파크골프장이 들어섰고, 왼쪽 옆 25번 도로변에는 낙동강을 조망할 수 있는 도개리전망대가 우뚝 서 있었습니다. 도개파크골프장이 끝나는 지점에서 신림교에 이르기까지 낙동강 좌안의 하천부지가 진노란 금계국 꽃들로 덮여 화사했습니다. 신림교를 건너 이어지는 신림제를 따라 걸으며 선산대교를 다리 밑으로 지났습니다.
선산대교를 지나 일선교에 이르는 중 자동유량관측소 안내판을 보았습니다. 유량(流量)을 자동으로 측정하는 관측소의 안내판에는 수계/하천명, 하구로부터의 거리, 위도와 경도, 수위표영점표고 등 여러 항목들이 적혀 있었습니다. 그 중 ‘EL 30.788m’로 기록된 ‘수위표영점표고’는 수위가 기준수위이하(마이너스 수위)로 표시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예상 최대갈수위 이하로 잡은 것으로, 여기 이 지점의 예상최대갈수위가 30.788m 라는 것입니다.
15시29분 구미보에 이르렀습니다. 일선교를 지나자 강 건너 오른쪽 먼발치로 그동안 몇 번 오른 해발 976m의 늠름한 금오산이 보여 반가웠습니다. 구미의 금오산은 야은 길재선생이 머물던 명산으로, 『금오신화』의 저자인 매월당 김시습 선생이 머물던 경주의 금오산과는 다른 산입니다. 일선교를 지나 신림제로 올라서자 쭉 뻗어 나가는 제방이 꽤 길게 보였습니다. 한 낮의 기온이 섭씨 29도로 치솟아 그늘이 거의 없는 제방길을 장시간 계속해서 걷고 나자 시원한 곳에서 쉬어가고 싶은 마음이 절로 일었습니다. 대다수의 가로수들이 아직은 다 자란 것이 아니어서 제대로 그늘을 만들지 못해 더욱 그러했습니다. 해평파크골프장을 지나 구미보를 건너면서 낙동강 강바람을 맞았습니다.
강바람도 더위를 식히지 못해 곡선미가 빼어나 보이는 구미보전망대 안으로 들어가 잠시 쉬어갔습니다. 꼭대기층에 자리한 전망대에 오르자 에어컨이 가동되어 시원했는데, 낙동강의 정경이 시원스레 펼쳐져 더욱 그러했습니다. 전망대에서 얼마간 쉬고 나자 전시물들이 비로소 눈에 들어왔습니다. 구미보의 저수용량은 52.7백만m3이며, 상한 수위는 33.0m, 하한 수위는 22.6m, 소수력발전소의 발전용량이 3,000KW, 연간발전량이 16.9GWh라는 것은 안내판을 보고 처음 알았습니다.
16시51분 금오서원에 도착해 하루 여정을 마무리했습니다. 구미보를 건너 낙동강 우안의 차도를 따라 남진해 선산파크골프장을 지나면서 낙동강 강변이 파크골프장의 최적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선산읍 원1리 마을에 들어서자 산비탈 높은 곳에 자리한 금오서원이 한눈에 들어왔습니다.
낙동강과 이 강의 제1지류인 감천에 둘러싸인 금오서원(金烏書院)은 야은(冶隱) 길재(吉再, 1353~1419) 선생의 충절과 학문을 기리기 위해 조선 선조5년인 1572년 봄에 건립된 사액서원입니다. 처음에는 금오산에 세웠다가 임진왜란으로 불에 타 선조35년인 1602년에 이 자리에 다시 지은 이 서원은 다행히도 서슬푸른 대원군의 서원철폐를 피해 오늘에 전해지고 있습니다. 길재 선생 외에 김종직, 정봉, 박영, 장현광 등 여러 유학자들이 배향되고 있는 금오서원은 외삼문의 역할을 하는 읍청루, 강학공간인 청학당, 상현묘로 통하는 내삼문, 위패를 모신 상현묘를 일직선으로 두었으며 정학당 앞에는 유생들이 생활하였다고 안내문은 전하고 있습니다.
월암서원보다 2-3 배는 더 커 보이는 금오서원을 돌아본 후 택시를 불러 선산읍내 버스터미널로 이동했습니다. 22년 전에 한 번 들렀던 선산읍내 거리를 사진 찍은 후 시내버스를 타고 구미종합터미널로 이동해 19시발 서울행 고속버스에 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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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떠날 때마다 기대되는 것은 제가 잘 모르는 인물들을 만난다는 것입니다. 제가 즐기는 국내 여행은 주로 강줄기를 따라 걷는 것이어서 풍광이 빼어난 명승지를 지날 때가 많습니다. 그때마다 많이 볼 수 있는 것은 서원이나 누정입니다. 이런 서원이나 누정을 찾는 사람들은 글을 아는 사대부이거나 글을 배우는 학동들일 것입니다. 이들은 서로 교유하며 시를 읊고 글을 지으며, 담론을 나누며 배우고 성장하게 됩니다. 이번 탐방길에 들른 서원은 금오서원과 월암서원이고, 두 서원에서 만나 뵌 인물은 길재선생과 하위지선생입니다.
길재(吉再, 1353~1419) 선생은 고려의 삼은(三隱)으로 불리는 대학자로, 저서로는 『야은집』을 남겼습니다. 과거에 급제한 후 태학에서 생도들을 가르치는 직만 맡아 일하다가 고려가 망할 조짐을 보이자 여기 선산으로 낙향했습니다. 조선이 건국된 후 오로지 학문과 교육에만 힘쓴 선생의 학맥은 김숙자 · 김종직· 김굉필· 정여창· 조광조 같은 빼어난 유학자들이 이어갔습니다. 선생의 충절은 아래 시에서도 읽을 수 있습니다.
오백년 도읍지를 필마로 돌아드니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 데 없다
어즈버 태평연월이 꿈이런가 하노라
사육신(死六臣) 중 한 분인 하위지(河緯地, 1412~1456) 선생은 『고려사』 개찬과 『세종실록』 편찬에 참여한 조선전기의 문신입니다. 선생은 1456년 단종복위운동으로 거열형을 당하였고, 두 아들도 사형당했습니다. 남효온(南孝溫)은 선생의 인품에 대해, “공손하고 예절이 밝아 대궐을 지날 때는 반드시 말에서 내렸고, 비가 와서 길바닥에 비록 물이 고였더라도 그 질펀한 길을 피하기 위해 금지된 길로 다니지 않았다.”고 그의 저서 『추강집(秋江集)』의 「육신전(六臣傳)」에 적고 있습니다. 충절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은 선생도 가슴 속 한구석에 자연에 은거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 아래 시를 남긴 것이 아닌가 합니다.
손님이 떠난 뒤 문을 닫으니 바람은 물러가고 달이 지는 구나
술독을 다시 열고 시 한수 흩어 부르니
아마도 소인이 뜻을 이룰 곳은 이 뿐인가 하노라
<탐방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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