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방구간: 산호대교-석적파크골프장-왜관역
탐방일자: 2024. 9. 25일(수)
탐방구간: 산호대교-동락서원-동락공원-석적파크골프장-칠곡보-왜관역
탐방시간: 10시36분-18시19분(7시간43분)
동행 : 나 홀로
오랜만에 낙동강 따라 걷기에 나서 구미시의 산호대교에서 칠곡군의 왜관역까지 20Km가량 걸었습니다. 통상 7-8월 두 달은 더위를 피해 강 따라 걷기를 쉬었다가 선선해진 9월에 재개하곤 했습니다. 올해는 9월이 다 가도록 폭염이 끝나지 않아 한 낮의 기온이 섭씨 30도 아래로 떨어지기를 기다리느라 하순에 접어들었는데도 나서지를 못했습니다.
모처럼 경북 구미의 날씨가 최고기온은 섭씨28도를 넘지 않고 한창 더운 오후의 낮 시간에 는 구름이 잔뜩 끼는 것으로 예보되어 설레는 마음으로 집을 나섰습니다. 수원역에서 경부선 열차에 올라 2시간40분 가량 달려 구미역에 도착했습니다. 낙동강을 따라 걷는 길에 구미 땅을 걷는 것은 이번이 마지막이다 싶어 구미의 명승인 채미정을 둘러보고자 택시를 타고 금오산입구로 이동했습니다.
채미정(採薇亭)은 야은(冶隱) 길재(吉再, 1353~1419) 선생의 충절과 학문을 추모하기 위하여 1768년(영조 44)에 선산부사 민백종(閔百宗)이 현지 유림(儒林)들과 의논하여 금오산 아래 건립한 정자입니다. 문화재청은 2008년 채미정을 명승으로 지정하면서 아래와 같이 그 이유를 밝혔습니다.
“채미정은 고려에서 조선의 왕조 교체기에 두 왕조를 섬기지 않고 금오산 아래 은거한 야은 길재의 충절과 학문을 추모하기 위해 영조 44년(1768)에 금오산 아래 건립한 정자이다. 채미정은 멀리 바라보이는 금오산과 채미정 전면의 맑은 계류와 수목들이 채미정과 어우러져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는 경관미가 뛰어난 명승지이다.”
수년전에 한 번 와본 채미정을 둘러보며 사진 찍기를 마친 후 이번 낙동강 탐방의 출발점인 산호대교 앞 비산사거리로 이동했습니다. 꼭 3달 전 이 다리를 건널 때도 꽤 더웠는데 이번에도 일기예보와 달리 구름 한 점 없이 햇볕이 쨍쨍 쬐어 과연 20Km 거리를 무난히 걸어 목적지인 왜관역에 제대로 도착할 수 있을지 걱정도 됐습니다. 정 힘들면 무리하지 말고 중간에 끝내리라 마음먹고 낙동강 따라 걷기를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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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시 산호대교의 비산네거리는 교차로가 복잡하고 운행차량이 많아 자전거 길 찾기가 결코 수월하지 않습니다. 택시 기사분이 제 곳에 저를 내려주었고, 3달 전 한 번 와본 곳이어서 생각보다 쉽게 자전거길을 찾아 23번째 낙동강 탐방을 시작했습니다.
오전 10시36분 산호대교를 출발했습니다. 비산네거리에서 자전거길을 따라 산호대교 바로 밑으로 빙글빙글 돌아 내려갔습니다. 낙동강 우안의 제방길인 낙동강변로로 올라서자 바로 앞에 길 건너 공단의 LIG넥스원 공장이 보여 구미가 공업도시임을 새삼 확인했습니다. 왼쪽 하천부지에 자리한 야구장을 지나 구미대교 아래 그늘에서 햄버그로 요기를 한 후 구미대교를 건너 동락서원을 둘러보았습니다.
동락서원은 1655년(효종 6)에 지방유림들이 장현광(張顯光)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한 서원입니다. 1676년(숙종 2)에 사액서원(賜額書院)으로 승격된 이 서원은 1871년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철폐되었다가 1932년 사당이, 1971년에는 부속건물이 복구되었습니다. 17세기 영남 유학을 대표하는 여현(旅軒) 장현광(張顯光, 1554-1637)은 인동과 선산을 포함 구미의 유학 전통을 계승하여 조선성리학의 내용을 한 단계 성숙시킨 대표적인 성리학자로 알려진 유학자입니다. 장현광은 관직에 나가지 않고 오직 학문과 제자 양성에만 몰두하였다고 합니다. 1636년 병자호란 때는 의병을 일으키고 군량미를 모아 전장에 보낸 장현광은 삼전도(三田渡) 굴욕 소식을 듣고 분개하여 동해안 입암산(立碧山)으로 들어간 지 반년 만에 이 세상과 작별했습니다.
11시50분 동락서원을 출발했습니다. 구미대교를 건너자마자 오른 쪽으로 내려가 동락서원을 둘러보았습니다. 동락서원을 출발해 여헌기념관을 들렀다가 수출대로를 따라 서진해 인동광장교차로까지 진행했습니다. 뒤늦게 길이 아닌 것을 알고 구미 대교 쪽으로 되돌아가다가 왼쪽으로 꺾어 3공단1로로 들어선 후 남진해 구미센츄리호텔을 지났습니다. 이계천 위에 놓인 우담교를 건너자마자 오른쪽으로 꺾어 낙동강 좌안의 강변 길을 따라 걸었습니다. 오른 쪽 아래로 낙동강이 흐르고 왼쪽 옆에 동락공원이 자리 잡고 있는 천변의 자전거길을 걸으면서 이런 공원 옆에 직장을 갖고 있는 LG DISPLAY 직원들이 부러웠습니다.
동락공원은 구미대교 아래 임수동에서 칠곡군 석적읍 중리까지 이르는 수변형 도시공원으로 그 면적이 약 10만평에 달합니다. 길이가 약 2Km에 이르는 장방형의 이 공원에는 산책로와 잔디밭, 각종 체육시설 및 편의시설이 갖춰져 있는 데다 그 서쪽으로 낙동강이 흐르고 있어 도시공원으로 이만한 데가 따로 있겠나 싶은 생각도 들었습니다. 천변의 동락파크골프장에는 더위를 무릅쓰고 파크골프를 즐기는 선남선녀들이 보였습니다. 이 공원에는 첨단의 전자산업도시답게 세계 최초로 전자신종을 설치하여 성덕대왕신종(에밀레종)의 종소리 원음 그대로를 전자음향에 의해 재현하고 있다고 합니다.
13시16분 동락공원 끝자락의 사거리에 다다랐습니다. 동락공원 끝자리의 야구장을 지나 3공단로와 3공단1로가 만나는 사거리의 3공단교 앞까지진행했습니다. 3공단교를 건너 유학지 저수지에서 흘러내려오는 광암천 좌안 길로 들어섰습니다. 광암교 앞에서 오른쪽으로 꺾어 우방신천지타운 아파트까지 갔습니다. 더 이상 길이 나 있지 않아 조금 돌아가 다다른 사거리에서 길을 건넜습니다. 한솔솔파크 아파트단지를 지나 다다른 석적행정복지센터 앞 사거리에서 길을 건너 경부고속도로 아래 굴다리를 지났습니다.
15시5분 낙동강 좌안의 석적파크골프장 입구를 지났습니다. 굴다리를 지나 얼마 후 오른쪽 포남제 제방길에 이르자 바로 아래 천변에 석적파크골프장이 보였습니다. 이제껏 골프를 한 번도 쳐보지 못한 제게는 그림의 떡일 수밖에 없는 파크골프장을 지나 계속 남진해 포남1교차로에 다다른 시각이 16시32분이었습니다. 포남1교차로를 막 지나 다다른 홀소나루는 6. 25전쟁 때 우리 국군이 북괴군을 격퇴한 승전지입니다. 유속이 느리고 강이 얕아 건너기에 최적인 여기 홀소나루에서 북한군의 공격을 격퇴했기에 다부동전투를 승리로 이끌었을 것입니다. 다시 제방길을 따라 남진했는데, 햇볕을 피할 만한 그늘이 거의 없어 힘들었습니다. 제방이 끝나는 지점에서 만난 반지천 합류점에서 이 하천을 거슬러 올라갔습니다. 반지교를 건넌 다음 다시 하구로 내려가 강변도로 좌측의 자전거도로를 따라 걸어 중지교차로에서 굴다리를 지났습니다.
17시10분 칠곡보에 이르렀습니다. 굴다리를 지나 낙동강변의 칠곡보생태공원에 이르자 뒤쪽으로 철교가, 앞쪽으로 칠곡보가 잘 보였습니다. 왕굴(?)로 보이는 수생식물이 군락을 이루고 있어 볼만한 생태공원을 지나자 낙동강을 건너 쏜살같이 달리는 고속열차가 머리 위를 지났습니다. 시간이 없어 칠곡호국평화기념관을 들르지 못하고 그대로 진행해 강물을 방류하는 칠곡보의 위용을 카메라에 옮겨 담았습니다. 2012년에 완공된 칠곡보는 총연장이 약480m로 고정보와 가동보가 갖추어져 있습니다. 이 보에 부설된 칠곡보수력발전소의 발전용량은 연간1,528만KWH로 14천명이 사용할 수 있다고 합니다.
18시19분 왜관역애 도착해 하루 여정을 마무리했습니다. 칠곡보에서 왜관역까지는 멀지 않은데도 낮 동안 강렬한 햇볕에 시달려서인지 발걸음이 무거웠습니다. 왜관철교와 왜관교를 차례로 지나 칠곡평화분수대에서 왜관 시가지로 들어섰습니다. 십여 년 전 한 번 들른 바 있지만 여전히 낯설어 몇 번이고 길을 물었습니다. 왜관역에 도착해 1시간 가까이 기다렸다가 수원 행 itx 열차에 올라 하루 여정을 모두 마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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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실학자인 이중환(李重煥, 1690~1752)은 저서 『택리지(擇里志)』에서 ”조선 인재의 반은 영남에 있고 영남 인재의 반은 일선(一善)에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중환이 언급한 일선(一善)은 선산(善山)으로 오늘의 구미시를 이릅니다. 이중환은 같은 책에서 “선산은 산천이 상주보다 더욱 깨끗하고 맑다” 라고 호평했습니다.
산천이 깨끗하고 맑은 선산은 충절의 야은(冶隱) 길재(吉再)와 단계(丹溪) 하위지(河緯地) 외에도 고려 말의 김주(金澍), 조선 시대 김숙자(金叔滋) · 김종직(金宗直) · 이맹전(李孟專) · 장현광(張顯光)이나 구한말의 장지연(張志淵) 같은 고매한 유학자들을 많이 배출했습니다.
낙동강을 따라 걷지 않았더라면 구미지역의 역사적 인물을 찾아뵙기가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낙동강을 따라 걷는 길에 월암서원을 들러 김주, 하위지와 이맹전을 만나 뵈었고, 금오서원을 찾아가 김종직과 장현광을 만났으며, 이번에 들른 동락서원에서는 장현광을 뵈었습니다. 만나 뵙지 못한 한 분은 을사보호조약 체결을 보고 ⌜시일야방송대곡⌟을 써 신문에 발표 한 장지연 애국지사로 이 지역 서원에 배향되지 않아 찾아뵐 수 없었습니다.
구미가 낳은 최고의 인물은 단연 박정희대통령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분이 아니었다면 대한민국의 근대화는 이루어지지 못했고, 오늘도 북한같이 하루 세끼 끼니를 이어가는 것을 걱정하고 있을 지 모릅니다. 언제 한번 짬을 내어 손자와 함께 구미의 박대통령 생가를 다시 찾아가 박대통령이 생전에 이룬 위업을 설명해주고자 합니다.
<탐방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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