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방구간: 하빈pmz평화기념센터-고령보-사문진교
탐방일자: 2024년10월16일(수)
탐방코스: 하빈pmz평화기념센터-하빈천-고령보-사문진교-설화명곡역
탐방시간: 11시21분- 16시46분(5시간25분)
동행 : 나 홀로
닷새 전에 들른 칠곡군의 다부동전적기념관이 6.25 전쟁 때 다부동전투에서 희생된 전몰군경과 학도병들의 호국정신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것이라면, 이번에 찾아간 달성군의 하빈pmz평화기념센터는 하빈pmz평화기념마을 조성사업의 일환으로 6.25 피난민들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점에서 대비됩니다.
한강 이남에서 최초로 평화라는 콘셉트를 가지고 5년 전에 건립된 이 센터는 단층 건물로 외관이 날렵해 눈길을 끌었습니다. 이 센터에서는 평화를 주제로 지역작가를 초청하여 작품을 전시하고 주민 및 관광객을 대상으로 낙동강변의 장소적 특성을 살려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고 안내전단은 소개하고 있습니다.
궁금한 것은 이 벽촌에 번듯한 평화센터가 들어선 사연이 무엇인 가였습니다. 이 궁금증을 풀어준 것은 하빈pmz평화기념마을의 벽보 사진이었습니다. 1950년대에서 1990년대까지 이 마을의 변화상을 담은 5개의 벽보 사진에 이곳에 마을이 생기고 발전하게 된 역사가 간략히 소개되어 여기에 옮겨놓습니다.
여기 하빈으로 이주하면 주택이나 농사를 위한 소 등 삶의 터전을 마련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는 국가의 홍보를 믿고 6.25 전쟁 전재민 등 다양한 사람들이 봉촌리로 모여들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였습니다. 막상 이주를 해오자 울타리도 없이 방 두 개, 주방, 거실로 구성되어 흡사 벌집과 같이 촘촘하게 나열된 송판집이었고, 특히 길가에는 모래가 산더미처럼 쌓여있어 바람이 많이 부는 날이면 학교를 다녀오는 아이들의 입안에 모래가 잔뜩 들어가서 입안이 모래를 씹은 듯 까끌거렸습니다. 부모님들이 이런 집에서 어떻게 자식을 키우냐며 서글피 울었다고 합니다.
1970년대에 들어 새마을 운동이 전개되었고 1980년대에는 낙동 연잎마을 봉촌2리의 연재배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당시 하빈 지역의 땅은 모래의 구성비가 높아 논농사나 밭농사가 힘든 지역이었습니다. 이 때문에 주민들은 생계를 위해 반야월에서 종자를 구해 시험 재배를 시작하였고 재배에 성공한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연농사를 시작해 이제는 대구를 대표하는 연 재배단지로 탈바꿈 하게 되었습니다. 연근의 효능으로는 항암효과, 지혈작용, 소염 작용, 체내 니코틴의 배출 등이 있으며 특히 이곳에서 생산되는 연근의 경우 색깔이 곱고 수분 함량이 많아 전국적으로 인기가 높다고 합니다.
봉촌리의 벽촌을 가꾸어 오늘의 마을로 만든 분은 노상빈장로입니다. 노상빈장로는 1969년경부터 허허벌판이었던 봉촌리에 터를 잡고 주민과 함께 마을을 개척하였습니다. 특히 생계로 바쁜 부모들을 대신하여 아이들을 위한 탁아소를 운영하고, 주변 지역을 돌며 구호 물품을 지원받아 마을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등 마을을 위해 헌신하였습니다. 이에 1992년에 마을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노상빈 장로의 큰 공헌을 기리고자 그 행적을 새겨 공덕비를 세웠습니다.
여기 하빈pmz평화기념마을에 기념센터가 건립된 것은 2019년6월28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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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역에서 지하철로 갈아타 2호선의 종점인 문양역에 도착한 시각은 오전 11시였습니다. 문양역에서 하빈pmz평화기념센터까지는 버스를 기다리는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택시로 이동했습니다. 하빈pmz평화기념센터에 도착해 기념센터, 사진 벽보, 그리고 골목 몇 곳을 부지런히 카메라에 옮겨 담았습니다.
11시21분 하빈pmz평화기념센터를 출발해 25번째 낙동강 따라 걷기를 시작했습니다. 이 마을의 골목길을 보고 참으로 깨끗했지만 사람들이 전혀 보이지 않아 적막감이 감돌았습니다. 기념센터를 출발한 지 10분가량 지나 자전거길로 복귀했습니다. 양쪽이 습지인 고즈넉한 자전거길을 따라 걷다가 오른쪽 강변으로 다가가 아직도 걸어보지 못한 강 건너 성주 땅을 사진 찍었습니다. 불현듯 생각난 것은 성주 주민들이 전자파가 과다하게 발생해 인체에 해롭다면서 지대공미사일 사드 설치를 극렬하게 반대한 일입니다. 위해물질의 발생문제는 존재 여부가 아니고 허용치를 초과하느냐 아니냐의 문제인데 존재 여부만을 문제 삼아 반대를 하는 것은 과학적인 태도는 아닐 것입니다.
헬기가 내려앉아도 충분할 만한 원형의 넓은 공터를 지나 자전거 쉼터에서 준비해간 샌드위치로 점심식사를 했습니다. 이 가을에 다시 볼 수 있으리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한 샛노란 애기똥풀 꽃과 진노란 금계국 꽃 등 봄꽃들이 화사하게 피어 있는 모습을 두 눈으로 직접 보았습니다. 개나리나 진달래처럼 나무에서 피는 봄꽃을 가을에 피는 것은 종종 보았지만 풀꽃인 애기똥풀이나 금계국 같은 봄꽃을 가을철에 보는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이러한 이변은 기후변화 때문으로 앞으로 상례적으로 일어날지, 아니면 기상이변 때문으로 올해 한 해 만의 기이한 현상인지는 앞으로 지켜볼 일입니다.
12시27분 낙동강의 제1지류인 하빈천을 건넜습니다. 수변수목들이 촘촘히 들어선 하빈지구수변공원을 지나 하빈천에 이르렀습니다. 칠곡군지천면의 송정리에서 발원하여 약 13Km를 흘러 여기 달성군하빈면의 봉촌리에서 낙동강으로 유입되는 하빈천을 건너 문산정수장으로 향했습니다. 강변을 따라 낸 자전거길을 따라 걸어 나지막한 언덕 위에 자리한 문산정수장을 거쳐 그 아래 문산나루터에 도착한 시각은 13시11분이었습니다.
지금은 ‘강변풍경’이나 ‘카페 리버’ 등 고급음식점이 들어선 문산나루터는 낙동강에 다리가 세워지기 전까지는 5일 장인 고령장, 다끼장, 동곡장, 왜관장, 선남장으로 운송되는 농축산물과 고령 다산면과 대구를 오가는 주민들을 실어나르기 위해 배가 운항되었던 나루였습니다. 이 나루터가 형성된 것은 조선 중기의 문신인 아암(牙巖) 윤인협(尹仁浹, 1541-1597)이 살던 16세기로 추정됩니다. 한양에서 태어난 윤인협이 여기에 터를 잡아 살 뜻을 가지게 된 것은 어렸을 때 조부를 따라 부임지인 상주목(尙州牧)으로 내려가 경상도의 산수를 유람하고 나서입니다.
문산나루터를 출발해 매곡제 제방길이 거의 끝나는 매곡배수문에 이르기까지 대략 반 시간이 걸렸습니다. 매곡제 길가의 산수유 가지에 다닥다닥 달려 있는 작은 열매와 길 건너 감나무를 노랗게 물들인 감들로 늦게나마 곁에 와 있는 가을의 풍성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14시22분 강정고령보에 도착했습니다. 매곡취수장을 지나서부터 낙동강자전거길은 이 강 좌안에서 조금 떨어진 물 위에 나 있어 바로 위에서 낙동강을 온전하게 완상할 수 있었습니다. 남서쪽으로 희미하게 보이는 높은 산은 현풍의 비슬산 같은데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강정보에 도착해 외관이 유선형으로 날렵해 보이는 보(洑)와 주변 건축물과 풍경을 사진 찍었습니다. 4대강 정비사업으로 건설한 16개의 보 중에서 길이가 가장 긴 강정고령보는 보 중간에 가야토기와 가야금을 형상화한 탄주대와 톰니바퀴 형상의 아름다운 인공섬인 낙락섬이 조성된 것이 특징이라 하겠습니다. 전장 810m의 강정고령보 다리인 우륵교를 건너 고령 땅으로 들어섰습니다.
우륵교에서 낙동강 우안에 낸 자전거길을 따라 남서진하며 대가야를 소개하는 안내문을 읽고서 고령 땅이 대가야의 중심지였음을 확실히 알았습니다. 서력42년에 가야산신 정견모주와 천신 아비가 사이에 태어난 뇌질주일이 대가야를 건국하여 이진아사왕이 되었다는 건국신화가 신라의 건국신화와 다른 점은 알에서 태어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대가야가 멸망한 것이 562년으로 한반도에서 540년이나 존속되었음에도 가야의 존재를 새까맣게 잊고 삼국시대 운운 하는 것이 과연 맞는 것인지 따져볼 일입니다.
16시7분 사문진교를 건넜습니다. 우륵교에서 사문진교까지 거리는 자전거길 기준으로 3.5Km가량인데 걸어서 1시간이 조금 더 걸린 것은 사진을 많이 찍어서였습니다. 대가야를 소개하는 여러 안내물, 강 건너 낙동강과 금호강의 합수점과 그 왼쪽 다크 문화관, 강 위의 유람선, 다산파크골프장 등 많은 볼거리 중에서 인상 깊게 본 것은 디아크문화관입니다. 한강의 세빛둥둥섬을 연상시키는 디아크 문화관은 세게적인 건축설계자인 하니 리사드가 강과 물, 자연을 모티브로 구상하여 완성한 건축물이라 합니다.
사문진교를 건너면서 강 건너 화원유원지가 가까워지자 한번 둘러보고 싶은 마음이 동했지만 시간 여유가 없어 꾹 참고 건넜습니다. 사문진교를 건너며 조망한 다리 위쪽 낙동강과 아래쪽 낙동강 모두에 석양이 내려앉기 시작해 저녁 기운이 감지되었습니다.
16시46분 설화명곡역에 도착했습니다. 사문진교를 건넌 후부터는 자전거길을 벗어나 카카오맵이 가르쳐주는 대로 따라갔습니다. 중부내륙고속도로를 아래로 지나 도착한 설화명곡역은 대구 지하철1호선의 종점으로 지하철인 것이 2호선의 종점인 지상철의 문양역과 달랐습니다. 설화명곡역에서 지하철로 대구역으로 이동해 수원 가는 itx에 승차함으로써 25번째 낙동강 따라 걷기를 마무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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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평화는 이런 여행기에서 다룰 만한 가벼운 논제는 아닙니다. 그런데도 제가 전쟁과평화를 되새기는 것은 다부동전적기념관과 하빈pmz평화기념센터 두 곳을 다녀온 의미를 제 나름대로 정리해보기 위해서입니다.
전쟁은 평화를 달성하기 위한 마지막 수단입니다. 전쟁을 하지 않고는 진정한 평화를 달성할 수 없을 때 평화를 위해 선택하고 해야하는 것이 전쟁이기에 전쟁과 평화중 어느 하나를 선택하라는 것은 억지입니다. 전쟁의 결과가 진정한 평화를 결과할 때만 전쟁은 비로소 의미를 갖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아무리 나쁜 평화도 전쟁보다 낫다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억지라고 생각합니다. 다부동 전투에서 우리 국군이 승리하지 못했다면 하빈에 평화기념마을이 형성되고 기념센터가 설립되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오스트리아의 장군 전쟁 클라우제비츠는 그의 역저 “전쟁론”에서 전쟁이란 적으로 하여금 이쪽 의지에 굴복하게 할 것을 목적으로 하는 폭력행위라고 정의하면서 “전쟁이란 다른 수단을 가지고 하는 정치의 계속에 불과하다”고 했습니다. “한민족전쟁사”를 쓴 온창일 박사 역시 전쟁은 정치집단간의 조직적이고 유혈적인 무력충돌로 정의했습니다. 이 두 분의 의견을 종합한다면 전쟁이란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벌이는 폭력행위로 정의될 수 있을 것입니다. 전쟁이 동네 패거리들의 떼 싸움과 구별되는 것은 정치적 명분이고, 또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벌이는 피 말리는 협상과 다른 점은 무력이 뒤따른다는 것입니다. 한국전쟁에서 대한민국이 북쪽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유엔군의 우세한 무기와 시민을 존중하는 민주주의, 그리고 시장을 중시하는 자본주의를 국시로 하는 정치적 명분을 선점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입니다. 전쟁은 수많은 전투로 이루어집니다. 6.25전쟁은 거의 한반도 전역에서 치러졌기에 이 전쟁을 통해 잃어버린 인명과 재산피해는 남북한 모두 회복하기 힘들 정도로 컸습니다. 제 소견으로는 6.25전쟁이 나름대로 의미를 갖는 것은 이 전쟁으로 모든 것이 파괴되어 모처럼 원점에서 남북한이 재출발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전쟁종료 55년이 지난 지금 남북한의 국력을 비교한다는 것이 무의미할 정도로 대한민국은 북한에 압승했습니다. 전쟁의 목적이 적의 저항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것이라면 대한민국은 종전 후 벌어진 총성 없는 전쟁에서도 통쾌한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이 승리가 계속 되어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북한이 아예 딴 생각을 갖지 못하도록 전쟁억지력을 확실하게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고 또 중요할 것입니다.
<탐방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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