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III.시인마뇽의 명소탐방/국내명소 탐방기

141. 상주명소 탐방기1(공검지)

시인마뇽 2024. 8. 7. 10:00

탐방일: 202459()

탐방지: 경북상주시공검면양정리 소재 공검지(일명 공갈못)

동행    : 나 홀로

 

 

  상주는 한때 경상감영이 설치되었던 경상도의 대표적인 도시였습니다. 조선이 전국을 경기도, 충청도, 경상도, 전라도, 강원도, 황해도, 평안도, 함경도 등 8도로 나누고 감영을 설치한 것은 태종 13년인 1413년의 일입니다. 당시 상주에 감영을 둔 경상도는 청원 · 옥천 · 보은 · 영동 · 황간 일대가 충청도에 이관되어 그 면적은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8도 중에서 가장 넓었습니다상주에 있던 경상감영이 대구로 옮겨간 것은 임진왜란이 끝난 지 3년 후인 1601년의 일입니다. 임진왜란 중 관군이 북천(北川)에서 왜군에 대패(大敗)해 상주성이 함락됨에 따라 상주가 감영으로서 제 기능을 할 수 없게 되자 조선 조정은 경상감영을 상주에서 대구로 이전했습니다.

 

  낙동강을 따라 걷는 길에 경북 상주의 저수지인 공검지(일명 공갈못)를 다녀왔습니다. 상주에 제천의 의림지나 김제의 벽골제에 비할 만큼 오래된 저수지가 있다는 것은 십수 년 전에 처음 알았습니다. 2010년 한국방송통신대 국문과에 입학해 고전문학 시간에 공갈못 노래인 노동요 채련요(菜蓮謠)를 배우고 나서, 상주를 가게 되면 꼭 한 번 이 저수지를 들르겠다고 별러왔습니다. 이번에 마침 낙동강을 따라 걷는 길에 상주시를 지나게 되어 잠시 짬을 내 공검지를 다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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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주의 상풍교-강창교 구간을 낙동강을 따라 걸은 후 강창교를 건너 신상정류장에서 버스를 타고 상주터미널로 이동했습니다. 터미널에서 택시로 갈아타 공검면의 상주공검지에 다다른 시각은 저녁 기운이 뚜렷한 1720분이었습니다. 택시에서 하차해 기사분께 잠시 대기해 줄 것을 부탁드린 후 공검지 제방에 올라섰습니다.

 

  비석이 세워진 제방에 올라 공검지를 보고 크게 실망한 것은 눈 앞에 펼쳐진 저수지가 너무 작아서였습니다. 고려 명종 25년인 1195년에 상주사록 최정빈이 고쳐 쌓은 공검지는 둘레가 16,647(8.56km)이고, 둑방 길이가 860(430m)이며, 만수시 수심 10(5.6m)이나 되어 그 규모가 전국최대였다는데, 제가 와서 본 공검지는 그 1/10에도 훨씬 미치지 못하는 것 같았습니다. 공검지역사관에 전시된 옛 공검지의 담수 예상도에는 공검지는 동쪽으로 화동리 숙골 입구, 서쪽으로 동막리 구마이, 서북쪽으로 부곡리 골마, 북쪽으로 역곡리 성심공소에 이르는 것으로 그려져 있었습니다. 이토록 큰 저수지가 줄어들어 수원지 동남쪽 아우라지를 막은 둑방과 주변의 수변생태공원만 남아 있는 것은 산업화 시대를 맞아 공검지로부터 물을 받아 농사를 지었던 농지가 급격히 다른 용도로 전환됨에 따라 농업용수의 필요량이 줄어들었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제방을 따라 조금 걷다가 상주공검지 습지보호지역안내판을 보고 여기 공검지가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된 것을 알았습니다. 논습지로는 국내 최초로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된 상주공검지는 수달, , 새오라기 등 멸종위기 야생동물들을 비롯해 원앙, 소쩍새 등 천연기념물을 포함한 다양한 동식물이 서식하는 생태계의 보고라고 안내판에 적혀 있었습니다.

 

  제방을 걸으며 많이 아쉬웠던 것은 연꽃이 보이지 않아서였습니다. 여기 공검지는 저수지 서쪽에 연꽃이 만발할 때 그 비경이 중국의 전당호에 비길 정도였다고 합니다. 공검지의 아름답기가 그 정도였으니 "저승에 가도 공갈못을 구경하지 못한 사람은 이승으로 되돌려 보낸다"는 속설이 전해졌을 것입니다. 세계민요대전에 정선아리랑과 함께 우리나라 대표민요로 채련요를 출품한 것도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닙니다. 연꽃이 보이지 않은 것은 제가 너무 이른 철에 왔기 때문이지 연꽃이 사라져서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인터넷에서 다른 분이 7월에 찍어 올린 사진을 보고 알았습니다. 연꽃의 개화 시기는 7-8월이며, 연잎이 연못을 뒤덮는 것도 6-7월이 되어야 볼 수 있는데 너무 일찍 온 것입니다.

 

  남아 있는 공검지는 규모가 작아 저수지도 한눈에 들어왔고 제방도 짧았습니다. 수면 위로 연잎은 드문드문 보였는데 연못 가의 갈대는 푸른 색으로 바뀌어  무성해 보였습니다. 한갓진 공검지를 카메라에 옮겨 담은 후 바로 옆 공검지역사관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시간이 없어 휘 둘러본 공검지역사관에서 가장 눈에 띈 것은 옛 공검지의 담수 예상도였습니다. 에상도에 그려진 것처럼 대규모의 저수지가 상주에 있었다는 것은 그만큼 넓은 농지가 있었음을 뜻한다 하겠습니다. 이는 낙동강이 상주지역을 흘러내려 가면서 충적평야가 만들어졌기 때문인 것 같은데 과연 그런 것인지 확인해볼 뜻입니다.

 

  공검지역사관에 근무하는 채순철선생께서 고맙게도 난재 채수선생의 삶과 문학 등 상주에 관한 책 3권을 챙겨주었습니다. 대기한 택시에 올라 상주역으로 이동, 1815분에 출발하는 경북선 열차에 탑승하여 김천으로 향하는 것으로 공검지탐방을 마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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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검지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이 지역 노동요인 채련요(採蓮謠)입니다. 아래 가사는 인터넷에 이중기가 채보하고 상주문화원에서 제공한 것으로 나와 있는 採蓮謠(공갈못 연밥따는 노래의 노랫말입니다.

 

상주함창 공갈못에

연밥따는 저처자야

연밥줄밥 내따주께

이내품에 잠자주소

잠자기는 어렵잖소

연밥따기 늦어가오

 

상주함창 공갈못에

연밥따는 저큰아가

연밥줄밥 내따줌세

백년언약 맺어주소

백년언약 어렵잖소

연밥따기 늦어가오

 

  ⌜채련가가사를 읊조리면서 애틋한 이 노래가 잊혀지는 속도보다 공검지가 더 빨리 줄어드는 것은 아닌지 걱정도 되었습니다.

 

 

<탐방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