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방일자: 2023년12월16일(금)
탐방지 : 경북안동시도산면원천리내살미 소재 월란정사
동행 : 나 홀로
낙동강을 따라 걷는 길에 제가 들른 정사(精舍)는 경북 안동의 월란정사와 도목정사 등 두 곳입니다. 이번에 탐방한 월란정사가 누정과 다른 것은 대문과 담이 있는 것이었습니다. 뒤늦었지만 큰맘먹고 여덟 달 전에 다녀온 월란정사의 탐방기를 작성하고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을 검색하다가 ‘정사(精舍)’에 관한 이모저모도 같이 살펴보았습니다.
정사(精舍)란 신앙에 따라 수행하는 사람들이 머무는 종교 건축물을 이릅니다만, 우리나라에서는 사찰을 정사로 명명한 예는 드물고 도교나 유교를 숭상하는 이들의 수련처를 정사라고 칭해 왔습니다. 대표적인 정사로는 서애 유성룡이 『징비록』을 집필한 경북안동의 옥연정사를 들 수 있을 것입니다. 서울종로의 무계정사나 충북보은의 풍림정사도 널리 알려진 정사라고 하는 데 가보지를 못해 과연 규모가 어떠한지 잘 모릅니다. 와서보니 내살미 마을 가까이의 산자락에 자리한 월란정사는 그 아래로 낙동강이 흐르고 있어 강학뿐만 아니라 휴식의 장소로도 쓰였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월란정사(月瀾精舍)는 조선 중기의 문신인 만취당 김사원(金士元, 1539-1601) 의 후손들이 1860년 조상인 김사원이 퇴계선생의 가르침을 받고 심신을 수양하던 옛 월란암(月瀾庵) 자리에 퇴계 이황의 학덕과 만취당 김사원의 면려(勉勵)를 기리고자 건립한 정사입니다.
김사원은 본관이 안동이고 호가 만취당(晩翠堂)으로 1560년(명종 15) 퇴계 이황(李滉) 한테서 음양오행설을 배웠다고 합니다. 타고난 성품이 인자한 김사원은 재산을 털어 굶주린 백성들 진휼(賑恤)해 지방민의 추앙을 받았으며, 임진왜란을 맞아 의병을 규합하여 정제장(整齊將)으로 추대되었고, 사후 후산사(后山祠)에 제향되었습니다. 퇴계 이황께서 많은 제자들 가운데 유일하게 의성의 사촌에 거(居)한 김사원에게 이 정자 터를 내주어, 김사원의 후손들이 여기에 월란정사를 지을 수 있었습니다. 이런 까닭에 지금도 월란정사는 사촌 문중과 진성이씨가 공동으로 관리하고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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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따라 걸은 낙동강의 구간은 ‘와룡산휴게소-내살미마을-월란정사-왕모산성로 끝점-월곡초교부포분교-성성재 종택-부포리선착장-월천서당’ 으로, 눈이 계속 내려 긴 시간 우산을 받쳐 들고 걷느라 많이 힘들었습니다. 안동역에서 하차해 도산면 온혜리까지는 시내버스로 이동했습니다. 온혜리에서 택시를 잡아타고 왕모산성휴게소로 가서 낙동강 따라 걷기를 시작해 월란정사에 이르기까지 1시간이 채 안 걸렸습니다.
오전9시48분 왕모산성휴게소를 출발해 원천교에 이르자 전날 내린 비로 강물이 불어 탁류로 변해버린 낙동강의 물 소리가 엄청 크게 들렸습니다. 원천교를 건너 나지막한 언덕 위로 올라서자 내살미 마을이 한눈에 들어왔습니다. 규모가 작아 조촐해 보이는 도산교회를 지나 마을을 벗어난 지 얼마 안 되어 왕모산성로에서 왼쪽 산 위로 230m 떨어진 월란정사로 가는 샛길이 보였습니다. 이 길을 따라 월란정사로 오르는 길이 가파르고 질펀해 양손으로 스틱을 짚고 조심해서 올라갔습니다. 왕모산성로에서 20분을 채 못 걸어 올라 오전 10시40분에 월란정사에 다다랐습니다. 월란정사는 생각보다 규모가 작고 허름했으며, 대문이 굳게 잠겨 있어 정사 안을 들어가지 못하고 담 밖에서 발꿈치를 들고 사진 몇 장만 찍었습니다.
월란정사의 건물구조는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간략히 소개되어 있습니다. 정면 3칸, 측면 1칸 반 규모의 ‘一’ 자형의 건물로, 가운데에 1칸 대청을 놓고 그 좌우에 각 1칸씩의 온돌방이 배치된 월란정사는 자연석 허튼 층 쌓기 한 기단 위에 막돌 초석을 놓고 정면 모두와 우측면 가운데 기둥만 원주를 세우고 나머지는 방주를 세운 5량 가 홑처마 팔작지붕으로 되어 있습니다. 제가 두 눈으로 확인한 월란정사는 대문 위 지붕에서 풀들이 자랐을 만큼 초라해 보였습니다. 이처럼 허름한 월란정사가 안동시의 문화유산 제105호로 지정된 것은 1531년부터 1566년까지 퇴계 이황이 수시로 여러 제자와 더불어 머물며 강학하고, 특히 농암 이현보를 모시고 철쭉꽃이 만발한 음력 4월에 "월란척촉회"라는 문학동호회를 만들어 시문을 읊던 곳이자, 도학을 강론하던 도산학 발상지로 유서 깊은 곳이기 때문이라 합니다.
월란정사를 둘러보고 바로 앞 월란암칠대기적비(月瀾庵七臺紀蹟碑) 쪽으로 다가가자 앞이 탁 트여 강 건너 풍경이 한눈에 들어왔습니다. 지난번에 들렀던 이육사문학관과 그 앞의 넓은 들판, 그리고 그 들판 앞을 굽이쳐 흐르는 낙동강이 어우러져 빚어낸 겨울 풍경이 일품이었습니다. 거기에 눈까지 내려 어린 시절 고향마을을 걷는 것 같은 아스라한 느낌도 들었습니다. 준비해간 햄버그로 요기를 한 후 올라온 길로 되내려가 낙동강 좌안의 왕모산성로로 복귀했습니다. 우산을 받쳐 들고 낙동강을 따라 걷노라니 시흥(詩興)이 절로 일었는데, 시를 짓는 것이 능력 밖의 일이어서 퇴계 선생의 한시 (漢詩) ⌜월난대(月瀾臺)⌟를 감상하는 것으로써 시작(詩作)을 대신했습니다.
아래 시(詩)는 월란정사에 걸려 있는 편액에 담긴 퇴계 선생의 작품으로, 퇴계선생문집 권1에 실려 있습니다. 아쉬웠던 것은 문이 잠겨 있어 안으로 들어가지 못해 제 눈으로 이 시가 실린 편액을 직접 확인하지 못한 것입니다.
<月瀾臺 (월난대)>
高山有紀堂 높은 산에는 모서리도 있고 펀펀한 곳도 있는데
勝處皆臨水 경치도 좋은 곳은 모두 강가에 있네.
古庵自寂寞 오래된 암자 저절로 적막하니
可矣幽棲子 그윽하게 사는 이에게 있을 수 있네.
長空雲乍捲 넓은 하늘에 구름이 문득 걷히니
碧潭風欲起 짙푸른 소(沼)에 바람일 것 같네.
願從弄月人 바라노니 달을 즐기는 사람을 쫓아서
契此觀瀾旨 이 물결 이는 것을 관찰하는 취지에 부합하고자 하네.
퇴계선생께서 이 시를 지은 것은 월란정사(月瀾精舍)가 세워지기 3백여 년 전입니다. 이 터에 월란암(月瀾庵)이 자리하고 있을 때였기에 퇴계선생은 이곳 정경을 “古庵自寂寞(오래된 암자 저절로 적막하니)” 라고 읊었을 것입니다.
<탐방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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