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방구간: 물금역-옛 동원진나루터-구포역
탐방일자: 2024년12월19일(목)
탐방코스: 물금역-호포교-옛동원진나루터-대동화명대교-구포역
탐방시간: 9시46분-14시51분(5시간7분)
동행 : 나 홀로
제가 수변공간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우리나라 강들을 따라 걷기 시작하면서부터입니다. 제가 따라 걷기를 마친 강은 섬진강, 영산강, 임진강과 금강입니다. 낙동강은 거의 마쳐 구포-낙동강 하구의 한 구간만 남았으며, 한강은 발원지 검룡소에서 영월의 동강과 서강이 만나는 합류점까지 걸어, 한강의 하구까지 남은 거리는 한강 전체의 2/3가량 될 것 같습니다.
제가 살펴본 바로는 강에 면해 있는 수변공간은 강변 둔치로 그대로 남아 있거나 수변공원으로 조성되어 있습니다. 수변공원이란, 해변이나 강변, 호수 등을 끼고 만들어진 도시공원을 말하는데, 이 글에서는 수변공원을 특별히 강변에 조성된 친수공간(親水公間)에 국한해 사용하고자 합니다. 제가 살펴본 바로는 수변공간이 가장 넓은 강은 유로 길이가 가장 긴 낙동강이고, 수변공원이 가장 많이 조성된 강도 역시 낙동강이 아닌가 합니다.
여러 강을 직접 따라 걸으며 관찰한 바로는 수변공간의 공원화는 강에 댐 또는 보가 얼마나 여러 곳에 설치되었느냐와 강 주변의 도시에 얼마나 많은 인구가 살고 있느냐에 달려 있는 것 같습니다. 수변공원이란 문자 그대로 물가의 공원이기에 본질상 강에 물이 많이 흘러야 합니다. 그러려면 댐이나 보를 설치해 필요한 만큼 물을 담아 두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수변공원이 다른 강에 비해 그 수가 적은 섬진강이나 임진강에는 댐은 한 곳씩 설치되어 있지만, 따로 보가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공급 면에서 댐이나 보를 설치해 물을 담아두는 것이 필요하다면, 수요 면에서는 강 주변에 대도시가 있어야 보다 많은 주민들이 지자체에서 예산을 들여 조성한 수변공원을 이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낙동강과 한강에 이어 남한에서 3번째로 긴 강인 금강에 수변공원이 별로 없는 것은 장장 401Km를 흐르면서 만나는 대도시가 대전시, 세종시, 공주시와 군산시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낙동강은 인근에 구미시, 대구시, 부산시 등의 대도시가 자리한 데다 8개의 보가 설치되는 등 수변공원을 조성할 조건을 두루 갖추고 있어 어떤 강보다 많은 수변공원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수변공간에 조성된 수변공원의 대다수는 체육공원이거나 생태공원입니다. 체육공원이 많이 들어선 강은 낙동강으로, 파크골프장이 다른 강보다 많이 만들어진 것이 특징이라 하겠습니다. 수변공간에 캠핑장이 비교적 많이 들어선 강이 임진강이다 싶은데, 휴전선과 가까운 파주시보다는 비교적 멀리 떨어져 흐르는 연천군에 많이 들어섰습니다. 또 하나 특기할 만한 것은 제가 따라 걸은 강 중에서 댐 상류에 조성된 수변공원을 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이는 강폭이 좁고 S자를 그리며 흐르는 감입곡류천이 많아 공원을 조성할 만한 수변공간을 확보할 수 없어서일 것입니다.
확실치는 않지만 강변에 수변공원이 들어선 것은 서울의 청계천이 수변공원으로 조성된 이후가 아닌가 합니다. 이렇게 들어선 수변공원이 단순히 체육공원이 아니고 생태공원으로 조성된 것은 참으로 잘된 일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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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군포시의 산본역에서 평택지제역까지는 전철로, 평택지제역에서 동대구역까지 SRT고속열차로, 그리고 동대구역에서 물금역까지는 무궁화로 이동해 이번 낙동깅 따라 걷기의 출발점인 물금역에 도착한 시각은 9시41분이니 집을 나와 4시간40분이 걸린 셈입니다.
9시46분 물금역을 출발했습니다. 물금역에서 육교를 건너 내려선 황산공원은 엄청 넓었습니다. 중부광장에서 자전거길을 따라 걷다가 족구장과 축구장을 들렀습니다. 문이 잠겨 있어 들어가 보지는 못했지만 잔디구장에 8개의 코트가 들어선 족구장을 보고 이런 족구장이 여기 말고 또 있을까 싶어 부러웠습니다. 눈에 띈 것은 축구, 테니스, 배드민턴 등의 타 용도로 사용하지 말라는 것과 반드시 바닥이 평평한 운동화를 신으라는 족구장의 이용수칙이었습니다. 바로 옆에 인조잔디(?)가 깔린 축구장이 있는데도 족구장에서 축구를 하는 사람들이 있으랴 싶은데 그런 사람들도 있는 모양입니다. 영산낙동강대교와 양산천/낙동강 합류점 사이에 자리한 황산생태공원은 안내판에 소개된 대로 ‘억새뜰’, ‘생태물길’, ‘모래등마루’, ‘철새마루’ 등이 조성되어 있어 여러 구장(球場)과 캠프장이 들어선 황산공원과는 많이 달랐습니다. 황산생태공원이 돋보이는 것은 양산천이 낙동강으로 합류하기 직전에 여기 생태공원 안에 자연적인 연못을 만들어 놓았다는 것입니다.
11시1분 호포교를 건넜습니다. 양산낙동강교를 밑으로 지나 자전거길을 따라 진행해 양산천 위에 놓인 호포교를 건넜습니다. 호포교를 건너 그림 같은 황산생태공원을 돌아보자 갈 길이 멀어 공원 안으로 들어가 둘러보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습니다.호포교를 건너 높이 보이는 호포마을회관을 지나 낙동강대교에 이르기까지 철로 아래쪽에 나 있는 호명나루공원의 자전거길은 거의 직선에 가까워 단조로웠는데, 강 건너 쪽에는 낙동강대교의 서단에 건축공사가 진행되는 듯해 활기가 느껴졌습니다. 금곡주공1단지아파트가 높이 보이는 지점을 지나자 사장교인 낙동강대교가 더욱 선명하게 보였습니다.
12시27분 옛 동원진나루터를 지났습니다. 낙동강대교를 지나 다다른 이 나루터는 조선 시대 수로 운행의 요지로서 역원이 설치되었던 곳이라 합니다. 동원진은 삼포로 입국하는 일본의 사절들이 낙동강을 따라 상경하는 길에 들르는 첫 기착지로, 상경 행차에 필요한 선박운행과 접대를 담당했던 나루터였습니다. 여기 동원진은 수참(水站)으로서 관선을 대기해 놓고 공천(公職)을 두어 참부(站夫)로 썼다고 안내판은 적혀 있는 것으로 보아 중요한 기능을 수행했던 곳임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1972년까지 나룻배가 오갔던 동원진나루터의 옛 모습은 이제는 찾아보기 힘들지만 노거수 두 그루가 자리를 지켜 주어 그나마 다행이다 싶었습니다.
낙동강 하구둑을 20Km 남겨 놓은 지점에서 잠시 멈춰 일직선으로 뻗어 나가는 메타세콰이어길을 사진 찍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메타세콰이어가 널리 알려진 것은 전라남도담양군에서 가로수로 이 나무를 심어서가 아닌가 합니다. 연륜이 오래된 담양의 메타세콰이어는 대다수가 거목이 되었는데, 여기 메타세콰이어는 심은 지 오래되지 않아서인지 여름이 되어도 울창할 것 같지는 않아보였습니다.
13시15분 대동화명대교를 그 아래로 지났습니다. 메타세콰이어 길을 거쳐 어지러울 정도로 교차로가 복잡한 대동화명대교를 지난 후부터 제가 주목한 곳은 서낙동강이 본류에서 분기되는 지점이었습니다. 대개의 강은 하류로 내려갈수록 지천의 물을 받아들여 세를 불리는데, 보기 드물게 낙동강은 두 갈래로 갈라져 바다로 흘러 들어갑니다. 이는 강 하구에 쌓이는 충적토가 삼각주를 만들어 물길을 가로막기 때문으로, 이 삼각주에 들어선 대표적인 시설이 바로 김해공항입니다. 지도를 보면 서낙동강이 시작되는 분기점과 가장 가까운 낙동강 좌안의 지점이 화명역 아래 수변공원의 축구장 같은데, 그 옆을 지나면서도 저곳이 바로 그 분기점이라고 특정하지 못했습니다.
잠시 자전거길에서 벗어나 화명생태공원 안의 수생식물원을 둘러보았습니다. 여기 수생식물원에서 자라고 있는 식물로는 자라말, 가래, 수련, 부들, 갈대, 물억새, 창포, 매자기, 세모고랭이, 띠, 갈풀, 수크렁 등이 있는데 제가 아는 풀들은 몇 가지 되지 않았습니다. 수생식물원을 돌아보며 마음이 평안해진 것은 이 식물원 안에 작은 연못이 들어 앉았고 그 연못 위를 청둥오리(?) 들이 유유히 유영하고 있어서였습니다. 데크길을 따라 걸으며 연못에서 한가로이 물 위를 떠다니는 저 오리들도 물 밑으로는 쉬지 않고 발을 움직이고 있듯이, 저 또한 남들이 일하는 주중에 강 구경을 나서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지만 제 두발 또한 거의 쉬지 않고 강가를 따라 걷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4시51분 구포역에 도착했습니다. 대동화명공원보다 교차로가 더욱 복잡해 보이는 구포낙동강교를 지나 덕천유수지(?)에 이르자 대여섯 마리의 오라들이 방사선을 그리며 퍼져 나가는 모습이 보여 인상적이었습니다.
구포역으로 가는 길에 구포장터삼일운동기념비가 세워진 유적지를 들렀습니다. 이 기념비는 1919년3월 29일 구포장터에서 일어났던 3ᐧ1만세운동을 기념하고 만세운동에 참가한 선열들의 민족혼을 기리기 위하여 세워졌습니다. 경성의전을 다니는 양봉근(楊奉根)으로부터 독립선언서를 전달받은 구포지역 청년들은 3월29일 정오에 청년들과 장꾼, 농민, 노동자 등 1,000여 명과 함께 구포장터에서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시위를 벌였습니다. 이 시위로 9명이 부상을 입고 주동자 42명이 옥고를 치렀다고 합니다. 해마다 3월29일 즈음에 구포장터의 3ᐧ1만세운동을 재현하는 행사를 열어 면면히 민족정신을 이어가는 것은 타 지역에도 훌륭한 귀감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구포역에 도착해 14시54분에 출발하는 수원행 열차에 올라 35번째 낙동강 따라 걷기를 마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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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을 따라 걸으며 조선 시대에 조성된 수변공원은 보지 못했습니다.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그 시대에는 백성들이 함께 모여 즐길 스포츠가 발달되지 않은 데다 제방이 오늘처럼 많지 않아 쓸만한 수변 공간이 별로 없었을 것입니다.
오늘날의 수변공원을 대신할 만한 것을 굳이 찾는다면 정자와 서원이 아닌가 싶은데, 이것들을 수변공원과 바로 비교하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이다 싶습니다. 정자와 서원이 가장 많이 자리한 곳도 낙동강의 강변이 아닌가 합니다. 이는 정자나 서원은 사대부들의 문화유산인데, 조선의 조정에 진출한 사대부들을 가장 많이 배출한 지역이 낙동강이 관통해 흐르는 영남지역이기 때문이라 생각됩니다.
조선 시대에는 수변공간보다 수상공간이 더욱 분주했을 것 같습니다. 마차가 다닐 만한 길이 나 있지 않아 육운은 활발하지 못했지만 강을 이용해 배로 화물을 실어나르는 수운은 육운보다 활성화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수운의 발달로 곳곳에 나루터가 있는 것은 낙동강도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고 보니 조선시대에 수변공간에 가장 많이 들어선 것은 나루터인 것 같습니다.
강변에 더 이상 서원이나 정자가 세워지지 않고, 나루터는 거의 다 사라졌지만, 대신에 수변공원이 들어서 수변공간은 훨씬 더 활기차 보였습니다. 강이 우리 삶의 중요한 공간이라는 것은 시대를 뛰어 넘는 사실이기에, 저의 강 따라 걷기는 앞으로도 계속할 뜻입니다.
<탐방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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