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I.강줄기 따라걷기/한강 따라 걷기

한강 따라 걷기14(평창강/동강합수점-각동교-양짓골휴게소)

시인마뇽 2025. 4. 6. 16:21

탐방구간: 평창강/동강합수점-각동교-양짓골휴게소

탐방일자: 2025. 3. 31()

탐방코스: 평창강/동강합수점-영월빛드림본부-팔괴2리마을회관-원골버스정류장

                -각동교-김삿갓삿갓쉼터-충북/강원도계-양짓골쉼터

탐방시간: 1045-1625(5시간40)

동행 : 서울사대 원영환, 이상훈, 우명길 동문

 

 

 

  강원도 태백시의 검룡소에서 시작한 한강 따라 걷기는 이번이 14번째로,  삼척시, 정선군, 평창군과 영월군을 거쳐 충북 단양군에 발을 들였습니다. 한강 탐방길에 올라 골지천-조양강-동강을 지나 동강과 서강이 합수하는 영월읍의 합류점에 다다른 것이 작년 12월이었습니다. 긴 겨울을 보내고 새봄을 맞아 이번에 대학동문들과 함께 걸은 동강/서강 합류점-각동교-양짓골휴게소 구간은 이동거리가 약 16Km, 14Km는 강원도 영월땅을, 2Km는 충청북도 단양 땅을 걸었습니다.

 

  앞으로 여기 영월 땅을 찾아와 걸을 일이 다시 있겠나 싶어  영월을 널리 알린 역사적 인물들을 검색해 보았습니다. 여러 인물 중에서 가장 많이 알려진 두 사람은 조선의 6대국왕 단종(端宗, 1441-1457)과 방랑시인 김삿갓으로 알려진 김병연(金炳淵, 1807-1863)이 아닌가 합니다.

 

  단종은 1452년에 조선의 제6대 왕으로 즉위해 1455년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상왕(上王)이 되었다가 1457년 노산군(魯山君)으로 강봉(降封)되어 영월에 안치되었습니다. 사육신들의 단종 복위 시도가 실패하면서 단종은 세조의 명을 받은 금부도사에 의하여 1024일 사사되어 시신이 청령포(淸泠浦)의 강물에 버려졌는데, 영월군의 호장 엄흥도가 단종의 시신을 수습하고 영월 북쪽의 동을지(冬乙旨)에 장사를 지냈다고 합니다. 김병연은 과거에서 논정가산충절사탄김익순죄통우천(論鄭嘉山忠節死嘆金益淳罪通于天)이라는 글로 장원 급제했습니다. 글의 내용이 조부 김익순을 조롱하는 것임을 나중에 알고 나서 죄책감에 시달린 김병연은 처자식을 남겨 두고 방랑길에 올랐습니다. 김병연이 김삿갓으로 불리는 것은 자기는 푸른 하늘을 볼 수 없는 죄인이라며 삿갓을 쓰고 다녀서라고 합니다. 영월군에서는 해마다  두 분을 기리는 문화제가 열리고 있는바,  4월에 열리는 단종문화제와 10월에 개최되는 김삿갓문화제가 그것입니다. 

 

  제가 영월군청 홈피에서 만난 의외의 인물은 조선 시대 최고의 여행가라 할만한 옥소(玉所) 권섭(權燮, 1671-1759)입니다. 한양에서 태어났고 관향이 안동인 권섭이 영월의 인물로 소개된 것은 강원도 영월을 출발하여 삼척에 이르는 동안 보고 겪은 것을 엮어 기행가사인 영삼별곡(寧三別曲)을  지어냈기 때문일 것입니다. 권섭은 시서화에 관심을 기울여 2,000여 수의 한시와 2편의 한글 가사, 75수의 시조, 그림 등 다양한 분야에 수많은 작품을 남긴 조선 후기의 이름난 문인입니다. 권섭은 14세에 부친을 잃은 후 백부인 권상하(權尙夏)의 각별한 보살핌을 받아 장래가 촉망되었으나, 19세 때 기사환국으로 여러 친척들이 참극을 당하자 현실정치에 환멸을 느껴 평생을 여행과 문필활동으로 일관하다 89세에 타계했습니다.

 

  제가 권섭을 알게 된 것은 문경새재박물관에서 옥소 권섭의 유행록을 번역해 엮어낸 삼천에 구백리 머나먼 여행길을 읽고나서입니다. 제가 이 책을 읽고 놀란 것은 권섭이 87세의 노구를 이끌고 함경도 여행을 떠난 것입니다. “내가 한평생 나라 안을 샅샅이 돌아다녔어도 유독 함경도 길만은 꿈속에 아른거려 생각이 그치지 않았다면서 기필코 함경도 여행길에 오른 권섭은 1757415일에 한천강 정자를 출발해 89일에 한청강 정자로 돌아오기까지 갈 때는 21일에 1,900리를 다녔고, 올 때는 23일에 1,190리를 여행해 총 113일에 2,280리를 여행하면서 203수의 한시, 38수의 글, 25수의 사()를 지었다고 합니다. 이는 평생을 술과 여자를 가까이하지 않은 자기 절제력과 치열한 기록 정신이 받쳐주어 가능했을 터인즉, 가히 조선 최고의 여행가로 불릴만한 분이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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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한강 따라 걷기는  두 대학동문과만 같이한 조촐한 나들이였습니다. 영월역에서 미리 와 기다리는 두 친구를 만나 이상훈교수 차로 이번 탐방의 출발지인 동강/서강 합수점으로 향했습니다. 합수점에서 가까운 영월드론전용비행시험장에 도착해 동강과 서강이 합류해 남한강이 시작되는 현장을 카메라에 옮겨담았습니다.

 

  오전1045분 영월드론전용비행시험장을 출발했습니다.  차를 주차한 영월상하수도사업소 바로 옆의 덕포회전교차로를 지나 강폭이 넓어진 남한강의 좌안길인 중앙로를 따라 걸어 영월빛드림본부 앞에 다다랐습니다.

 

  영월빛드림본부는 한국남부발전(주)  한 사업소로 영월화력발전소가 시대의 변화에 맞추어 탈바꿈한 대용량, 고성능 복합화력발전소입니다. 영월빛드림본부의 전신인 영월화력발전소가 준공된 것은 일제강점기인 1941년으로 발전설비용량은 10KW였습니다. 한국전쟁으로 파괴된 제1화력발전소를 복구해 전력생산을 재개한 것은 1963년이고, 10KW 용량의 제2화력발전소를 준공한 것은 1965년의 일입니다. 197910Kw를 증설해 설비용량이 30KW로 증강된 영월화력발전소는 2001년 발전을 종료하고 2007년 폭파, 해체되었습니다. 3년 후인 2010년 무연탄 대신 LNG를 사용하는 발전설비 848급 영월복합화력발전소가 준공되고 영월빛드림본부가 출범되었습니다. 국내 최초의 무연탄 발전소로서 65년간 우리나라 산업발전의 원동력이 되었던 영월화력발전소의 부지에 새롭게 태어난 영월발전본부는 청정에너지인 LNG를 사용하여 공해물질의 배출을 줄이고 최첨단·고효율 · 친환경 설비를 도입하는 한편, 발전소 주변의 유휴부지에 태양광 발전설비 가동, 자연채광을 이용한 탄소 제로화 건물 신축으로 저탄소 녹색성장 시대를 선도하는 신개념 발전소로 거듭나고 있다는 영월빛드림본부의 안내 글을 읽고나자 저도 모르게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영월빛드림본부를 지나 팔흥교 아래에 놓인 잠수교를 건넜습니다. 강 건너로 이어지는 태화산로를 따라 걸으며 소망교회를 지나 동강카누캠프에 이르자 카누들이 야적되어 있어 처음으로 실물 카누를 볼 수 있었습니다. 한적한 시골에서 좀처럼 볼 수 없는 복잡한 팔괴교차로를 지나 남한강 우안의 88번 국도로 들어섰습니다. 주민 한 분에 여쭈어 마을 뒤 높은 봉우리가 바로 산림청에서 명산100산으로 선정한 태화산임을 확인하자, 18년 전인 2007년 겨울에 태화산을 등산한 것이 생각났습니다. 당시 등산코스가 오그란이 마을을 출발해 태화산을 오른 후 흥월초교터로 하산하는 것으로 잡혀 있어 여기 팔괴리에서 하차해 산을 오르기 시작했었습니다. 

 

  1212분 팔괴교차로를 조금 지나 점심을 들었습니다. 팔괴2교를 건너 남한강 우안의 88번 도로인 영월동로를 따라걷다가 이내 왼쪽 강가로 조금 내려가 한갓진 공터에서 점심식사를 함께 했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다시 88번 도로인 영월동로를 따라 걷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정양교를 건너고 나서야 잠수교를 건너지 않고 직진해 남한강 좌안의 구도로로 찔러 올 수 있다는 것을 확실히 알았습니다. 정양교를 건너 88번도로를 따라 걷다가 고씨굴로 길이 갈리는 진별교차로 앞에서 국제슬로시티 영월의 광고판을 보았습니다. 영월군의  김삿갓면이 슬로시티로 지정된 것은 2012년이고, 영월군 전역이 지정된 것은 2018년입니다.  여기 김삿갓면이 슬로시티로 지정된 데는 방랑시인 김삿갓이   한 몫 단단히 했을 것 같습니다. 

 

  1430분 각동교를 건넜습니다. 진별교차로에서 각동교까지는 제가 길을 잘못 알아 조용한 강변길을 놔두고 시끄러운 88번도로를 따라 걸었습니다. 고씨동굴로 건너가는 다리가 연결되는 강변길을 걸었더라면 차량 소음을 피할 수 있었을 텐데 지도를 제대로 보지 않아 시끄러운 도로를 따라 걷게 해 두 친구에 미안했습니다. 팔괴교차로에서 따라 걷기 시작한 88번도로는 경북봉화군의 춘양으로 이어지는데, 이 길은 임진왜란 때 평창군수 권두문이 일본군의 포로로 잡혔다가 탈출하여 영주 본가로 귀향할 때 지났던 길로 알고 있습니다. 88번도로를 벗어나 오른쪽 아래 각동교를 건너자 각동리를 지나는 남한강 우안의 강변로가 시작되었습니다. 각동리로 들어서자 강 건너 옥동천과 남한강이 만나는 합류점의 기암 절경이 확 눈에 들어왔습니다. 영월군상동읍의 구운산에서 발원한 옥동천이 51Km를 흘러 여기 합류점에 다다른 것은 그동안 모아온 물들을 몽땅 남한강에 넘겨주기 위해서였을 것입니다. 각동교회를 지나 김삿갓 쉼터에 도착한 시각은 153분이었습니다. 김삿갓쉼터 아래 굽이져 흐르는 한강을 지켜보는 강변의 연초록 버드나무를 보자 저도 모르게 춘흥(春興)이 일었습니다. 유독 버드나무 사진 찍기를 좋아하는 고교 친구가 같이 보았더라면 사진을 물론 시() 한 수도 남겼을 텐데, 문필력이 달리는 저로서는 그저 보고 사진만 찍었습니다.

 

  1625분 양짓골휴게소에 도착해 14번째 한강 따라 걷기를 끝마쳤습니다. 김삿갓휴게소에서 이번 구간의 끝점인 양짓골휴게소까지 거리는 4Km 정도 되는데 오가는 차량들이 많지 않아 차도를 따라 걸을만 했습니다. 괴목정류장을 지나 문 닫은 지 오래된 주유소를 보자 을씨년스러웠는데, 그래도 길가에 잎보다 꽃송이를 먼저 피운 개나리들이 떼를 이루고 있어 찻길이 얼마간 화사해 보였습니다. 1550분에 도착한 강원도와 충청북도의 분계점에는 김삿갓의 입상이 세워져 있었습니다. 김삿갓이 방랑할 때 이 분계점에서 충청북도 단양 땅에 들어서지 않고 발을 돌린 것은 분명 아닐진 데, 단양 땅에 들어서자 김삿갓의 자취는 더 이상 보이지 않았습니다. 단양에서 회자되는 역사적 인물은 고구려의 명장인 온달장군이다 싶습니다. 단양래프팅장을 지나 양짓골휴게소에 이르렀는데 휴게소가 문을 닫아 밖에서 택시를 기다랴야 했습니다. 택시를 불러 영월읍으로 향하는 중 기사 분이 영월빛드림센터를 가리키며 사용연료가 무연탄에서 LNG로 바뀌어 다 좋은데 수증기가 많이 발생한다고 했습니다. 기사분은 발전소 건물 뒤편으로 보이는 터널이 옛날에 무연탄을 실어 나르는 철길이었다고 일러주었습니다.

 

  영월시내에서 저녁을 든 후 평창역으로 옮겨 청량리행 KTX에 오르는 것으로써 이번 한강나들이를 마무리지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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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섭 (權燮) 이 영월의 인물로 소개된 것은 그의 기행가사 영삼별곡을 지은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한글로 쓰인 기행가사   「영삼별곡」 은 1704(숙종 30) 권섭이 영월에서 삼척까지 여행한 후 지은 것으로 친필유고집인  옥소고(玉所稿)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차분히 같이 읽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조금 길고 몇 글자 빠져 있지만 여기에 원문을 올립니다. 

 

 

<영삼별곡(寧三別曲)

 

이 몸이 텬디간天地間젼혀 업서

삼십년三十年 광음光陰을 흐롱하롱 보내여다

풍졍風情이 호탕浩蕩여 믈외物外예 연업緣業으로

녹슈綠水 쳥산靑山의 분대로 니더

져근덧 병이 드러 님장林庄을 닷아시니

엇던 뒷졀 즁이 헌셰이고

쥬령을 느지 집고 날려 닐온 말이

네 병을 내 모랴 슈셕水石의 고황膏肓이라

츈풍春風이 완만緩晩百花거의 딘 제

산듕山中의 비 □□ 텬긔天氣을시고

어와 이 사아 쳘 업시 누어시랴

쳥녀靑藜杖 야 집고 갈 대로 가쟈스라

결의 니러 안자 창을 열고 라보니

쳥픙淸風이 건듯 블고 새 소지지괼 제

시냇방초芳草 길히 동협東峽의 니어셰라

죵 블너 내여 걸닌 여왼 

채직을 거더 쥐고 임의任意로 노하 가니

삼삼三三 가졀佳節 됴흘시

산동 야로들이 츈흥春興을 못내 계워

탁쥬병 두러메고 촌가村歌를 느초 블며

오락가락 양 한가閑暇토 한가閑暇

등의 느즌 을 셕양夕陽의 빗기 드러

쳔봉千峰 만학萬壑속의 디내치니

듀쳔酒泉 인 믈이 쳥녕포淸冷浦로 다하셰라

 四拜고 에에쳐 울온 말이

셕벽石壁은 참텬參天고 인젹人跡이 긋쳣

동쳥슈冬靑樹 녯 가지예 쵹蜀魄聲은 므일고

창오산蒼梧山 졈은 구름 갈 길도 깁흘시고 

동강東江을 건너리라 믈려오니

샤공沙工은 어가고 뷘 만 걸렷

사앗대 손조 잡아 거스리 올라가니

금강졍錦江亭 블근 난간欄干 표묘漂渺히 내

져근덧 올라안자 머리를 드러

蓬萊山 졔일봉第一峯彩雲이 어

션옹仙翁을 마조 보아 므일 뭇올 듯

믈 건너 석긘 □□ 취연翠烟겻고야

쳥산은 은은고 벽계슈碧溪水 둘럿

운리촌 뫼 밋 을 일홈도 됴흘시고

산가山家의 손이 업서 개와  이로라

귀오리 데친 밥의 픗마내여

포단蒲團 펴 안쳐 노코 슬토록 권슨다

어와 이 百姓들 긔특奇特져이고

머흔 내 스므 구건너고 여 간녀

십니 쟝곡의 졀벽絶壁은 됴커니와

서덝 길 머흔 곳의 냥협兩俠이 다하시니

머리 우 조각 하뵈락 말락 고야

밀거니 거니 곳 드르며 나간 말이

별이別異실 외  어이 쉬 넘거니

봉당封堂의 자리 보아 더 새고 가쟈스라

밤듕만 사립 밧긔 긴 람 니러나며

삿기 곰 큰 호랑虎狼이 목 라 우

의 울혀이셔 긔염氣焰도 홀난

혀 겻희 노코 이 밤을 계유 새와

압 내희 딘 오슬 쥡 셔 손의 쥐고

긴 별오 도로 라 벌야 닙고

적의 숨은 百姓 이제 와 보게 되면  

도원桃園이 여긔도곤 낫닷 말 못려니

텬변天邊진 뫼 대관녕大關嶺 니어시니

危殆코 놉흔 댓재 쵹도란蜀道難이 이러턴가

의 도든 별을 져기면 질노다

망망茫茫 대양大洋이 그 알픠 둘러 이셔

대디大地 산악山岳을 일야日夜의 흔드 

밋 업슨 큰 굴헝의 업시 힌 믈이

만고萬古 티 영튝盈縮이 잇돗던가

텬디간天地間 경계境界 남아 믈이로다

아마도 져 긔운氣運이 무어스로 삼겻

셩인聖人을 언제 만나 이 니를 뭇오리 

바회 길 닉은 듕의 대 남여藍輿 느초 메워

러진 험빙애砯崖   디내티여

쳥옥산靑玉山 한 속으로 쳡쳡疊疊이 도라드니

운모병雲母屛 금슈쟝錦繡帳이 자우左右로 펼쳐셰라

운교雲橋를 걸어 건너 솔 속의 쉬여 안자

나모  들아 디난 일 뭇쟛고야

암의 움즉인 돌 여젼 디 긔 몃

업슨 녯 셩문城門이 어적의 닷 말고

이 손님 뉘시완어이 들어와 계신고

기 메오 고 압 졀의 샹재上佐러니

나모섭 라 와셔 무심無心니오네

진관암眞觀庵 줄은 우리 다 알거니와

그 밧긔 몰을 일은 목젹牧笛의 부쳐셰라

뫼 밋희 설인뇽이 변화變化도 무궁無窮

음심陰深오랜 소희 굴窟宅을 삼아 이셔

층애層厓 百尺의 일필년一匹練 거러두고

百日 뇌졍雷霆이 동학洞壑자시니

구프려 보던 줄이 내일이 섬

명사明沙를 믄이 아 동東海려가셔

옥쥬白玉柱 벌은 곳의 헤혀고 안즌 말이

동셔東西를 모거니 원근遠近을 어이 알니

창파滄波 돗기 주줄이 펼텨이셔

엇그제 어디나 어로 간닷 말고

어촌漁村의 늙은 샤공沙工 손 헤여 블너내여

海上 쇼식消息을 슬장 믈은 후

홰블을 야 들고 셩문城門을 드러가니

오오嗚嗚 군각셩郡角聲海月이 도다셰라

금쇼졍琴嘯亭 도로 라 칠션七仙은 긔 뉘런고

金簪舊事나 되엿

소션蘇仙 젹벽赤壁의 학영鶴影은 그첫

셔셰단봉瑞世丹鳳을 헛되이 기일샤 

댱검長劍쳐 내여 손 속의 거더 쥐고

긴 노래 곡죠曲調를 목 노하 블은 말이

산호벽珊瑚碧 슈헌樹軒람의 비겨 안자

니젹션李謫仙 風彩를 다시 만나 볼 거이고

댱경셩長庚星 은 빗치 긔 아니 거롯던가

太白山 깁흔 속의 게나 아니 가 잇

리며 슬장 헤다히니

어와 헌샤 내 아니 허랑虛浪

뉴하쥬流霞酒 득 부어 빗츨 섯거 마셔

흉금胸襟이 황낭晃朗니 져기면 리로다

百年 텬디天地의 우락憂樂을 모거니

일몽진환一夢塵寰의 영욕榮辱을 내 아더냐

펴랑이 초메토리 다 이도록

산님山林 湖海긋 노니며셔

이렁셩 져렁셩 구다가 아므리나 리라

 

*위 원문은http://www.davincimap.co.kr/davBase/Source/(다빈치 원문/전문)에서 따왔습니다.  

 

<탐방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