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방구간: 양짓골휴게소-군간교-향산사리층석탑
탐방일자: 2025. 4. 29일(화)
탐방코스: 양짓골휴게소-활고개-북벽교-영춘교-단양소수력발전소
-군간교-동방아그로단양복지관 -향산리삼층석탑
탐방시간: 10시48분 –16시36분(5시간48분)
동행 : 서울사대 원영환, 이상훈, 최돈형 동문
이번 한강 탐방 길에 지난 곳은 충청북도 단양군입니다. 단양군청의 홈피에 따르면 단양(丹陽)은 연단조양(鍊丹調陽)의 가취(佳趣)에서 시작되었으며, 연단조양의 연단 (鍊丹)은 신선이 먹는 환약을 뜻하고, 조양(調陽) 은 빛이 골고루 따뜻하게 비춘다는 의미로 신선이 다스리는 살기 좋은 고장이란 뜻으로 풀이되고 있습니다.
저는 본관이 단양으로 고려시대 유학자인 역동(易東) 우탁(禹倬, 1262-1342) 선생의 후예입니다. 제가 단양을 처음 찾아간 것은 41년 전인 1984년 여름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충주댐의 담수로 단양읍의 시가지가 수몰되기 전에 둘러보는 것이 본관이 단양인 단양우씨의 도리라는 생각이 들어 집사람과 함께 단양을 방문했습니다. 그때 단양의 명소인 도담삼봉, 석문과 고수동굴을 탐방한 후 배를 타고 유람한 것은 분명한데 40여년 전의 일이어서 배를 타고 유람한 곳이 어디인지는 기억이 가물가물합니다. 그 후 몇 번 더 찾아가 이곳저곳 둘러보았지만, 한강을 따라 단양 땅을 긴 시간 걸어본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15년 전에 고교동문들과 같이 탐방했던 단양군 영춘면의 온달동굴과 온돌산성을 이번에는 시간이 넉넉지 못해 들르지 못하고 강 건너 데크길을 걸으며 바라만 보았습니다. 온달산성에 올라 멀게는 온달동굴의 지층이 생성된 4-5억년 전에서 가깝게는 온달산성을 축성한 고구려 시대에 이르기까지 오랜 세월 쉬지 않고 묵묵히 흘렀을 한강을 내려다보면서 언제고 저 강을 따라 걸어보겠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에야 비로소 그 생각을 실천에 옮긴 것입니다.
온달동굴은 천연기념물 제261호로 지정된 영춘남굴의 다른 이름으로 온달산성 밑에 위치해 있고 온달장군이 수양하던 곳이어서 그렇게 불려 왔다고 합니다. 총길이가 700m정도이고 입구의 높이가 2m 정도인 이 동굴은 450m만 개방되었습니다. 온달동굴이 발견된 지층은 4-5억년에 형성된 전고생대 대석회암층이며, 석회암이 지하수에 녹아 굴이 만들어진 것은 10만 년 전 이내의 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온달산성은 외곽 둘레가 682m인 반달 모양의 고구려 석성입니다. 성안에 우물터가 남아 있고 성벽 바깥 부분에 사다리꼴 모양의 배수구가 있으며 남서쪽문터의 형식과 동문의 돌출부는 우리나라 고대 성곽에서 드물게 보이는 양식으로 주목할 만하다고 안내 팜프렛에 적혀 있었습니다. 보존 상태가 양호한 산성을 한 바퀴를 빙 돌아 성곽 문을 나서면서 성곽의 길쭉한 돌들을 보았는데, 선조들이 참으로 정성들여 쌓았다는 느낌이 절로 들었습니다.
온달장군의 이름을 빌려 단양의 명소 두 곳의 이름을 지은 것이 흥미롭습니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여기 단양 지역이 한때 고구려가 점령했던 땅이라는 것을 기억해 내기는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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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7시35분 청량리역을 출발해 영월역으로 향했습니다. 양평과 제천을 거쳐 10시4분에 도착한 영월역에서 일행들을 만나 이상훈 교수 차로 이번 탐방의 출발지인 양짓골휴게소로 이동했습니다. 오사리다목적회관 주차장에 차를 주차시킨 후 20-30m 거리의 양짓골휴게소로 옮겨 15차 한강 따라 걷기를 시작했습니다.
10시48분 양짓골휴게소를 출발했습니다. 한 달 만에 다시 찾은 양짓골휴게소는 봄이 내려앉아 화단에 철쭉꽃이 활짝 피었습니다. 강변로를 따라 걸으며 왼쪽 아래에 유유히 흐르는 남한강을 부감(俯瞰)하면서 한 달 사이에 온 산하가 푸르러진 것을 확실하게 감지했습니다. 양짓골 휴게소를 츨발한 지 한 시간이 조금 못되어 고개 모양이 활을 닮았다는 활고개의 고갯마루에 올라섰습니다. 이 고개를 막 넘어 정자를 들른 것은 점심식사를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20분 남짓 함께 점심을 든 후 강변로를 따라 내려가다 잠시 대로에서 벗어나 왼쪽 아래 북벽로로 다가갔습니다. 단양북벽수석전시관을 관람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여유시간이 없어 날려버린 것이 못내 아쉬웠는데, 이 아쉬움은 남한강이 이 강 좌안의 깎아지른 암벽과 손잡고 빚어낸 북벽의 승경을 사진 찍는 것으로써 달랬습니다. 네 그루의 노거수들이 큰 그늘을 만들고 있는 북벽테마공원(?)을 지나 다시 강변도로에 합류했습니다.
12시45분 북벽교에 이르렀습니다. 다리를 건너며 바라본 한강은 비가 많이 내린 지 며칠 안 되어 물 흐름이 도도했고 물소리도 컸습니다.
북벽교를 건너는 중 다리 한가운데 설치한 수위관측소의 안내판을 보고 여기 북벽교에서 한강하구지점까지 거리가 297.2Km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한강하구에서 발원지인 검룡소까지의 거리가 514Km인데 이 강 하구까지 남은 거리가 297Km라고 하니 이제껏 따라 걸은 한강의 강줄기는 217Km가 됩니다. 한 번 길을 나서면 평균 15Km 가량 걸은 셈이니, 앞으로 줄잡아 스무 번은 더 걸어야 한강의 끝점인 유도에 다다를 것 같습니다.
북벽교를 건너 이어간 길은 영춘면 시가지 마을을 왼쪽으로 끼고 도는 남한강 좌안의 제방 길이었습니다. 시계반대방향으로 휘어지는 제방로를 따라 걷던 중 바로 아래 영춘초등학교에서 음악 소리가 나 반가웠습니다. 이 소리는 옛날에 한 교시의 수업이 끝났음을 알리는 학교 종소리를 대신해 울리는 차임벨 소리인 것 같은데, 과연 그런 것인지는 확인하지는 못했습니다. 영춘보건지소를 지나 영춘교를 건너자 강 건너 좌안의 온달테마공원이 잘 보였습니다. 남한강 우안의 영춘생활체육공원의 데크길을 걸으면서 강 건너 온달테마공원에 자리하고 있는 온달동굴과 온달산성에 대해 제가 아는 바를 일행들에게 설명했습니다.
14시58분 단양소수력발전소를 지났습니다. 농협주유소를 얼마 앞둔 곳에서 강물이 가득찬 것을 보고 멀지 않은 곳에 댐이나 보가 있을 것이라 했는데, 과연 작은 댐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이 댐이 바로 단양소수력발전댐으로 한때 영춘면 주민들과 발전업체가 갈등을 겪었던 곳이기도 합니다.
이 댐이 갈등의 중심에 서게 된 것은 2005년을 전후해 남한강변에 집중호우가 발생하면서부터였습니다. 이곳 영춘면 주민들은 이 지역의 남한강 범람이 여기 소수력발전댐 때문이라며 주민들이 피해보상과 댐 철거를 요구하면서 발전업체와의 갈등이 시작됐다고 합니다. 5년 간의 협상 끝에 발전업체는 재해대비지원금과 장학지원금 등으로 매년 3,500만원씩 마을에 지급하고, 마을에서는 발전소 철거 등 각종 민원을 철회하기로 합의함에 따라 단양소수력발전소는 2011년부터 정상적으로 발전하고 있다 합니다.
16시36분 향산리삼층석탑에 도착해 15차 한강 탐방을 마쳤습니다. 단양소수력발전댐을 지나 삼태산 골짜기에서 발원한 사이곡천이 남한강으로 흘러드는 군간교삼거리에 이르기까지 20분 남짓 걸렸습니다. 군간교(軍看橋)를 건너 남한강 좌안의 군간나루 정류장에 다다르자 군간나루 안내판이 보였습니다.
군간나루 안내문에 따르면, 이 나루는 옛 고구려와 신라의 접경을 양측 군인들이 보초를 선 곳이었습니다. 또 이 나루터는 “고구려의 장수 온달이 전사한 뒤 이곳 나루터에 관이 도착해서 꼼짝하지 않자 평강공주가 달려와 관을 쓰다듬은 후에야 비로소 움직였다."는 설화가 서려 있는 곳으로, “물골이 넓고 바닥 지형이 험해서 온갖 물고기 자원이 풍부한 계류낚시터” 였다고 합니다.
군간나루를 지나 향산리휴게소에 이르기까지 향기나무팬션, 풍경팬션, 공간팬션과 어린왕자 팬선 등과 포시즌카라반, 파인카라반캠핑장 등 팬션과 캬라반 캠핑장이 들어선 곳은 모두 강변으로 풍광이 빼어났습니다. 향산휴게소 삼거리에서 왼쪽으로 꺾어 마을 한 가운데 자리한 보물 제 405호의 향산리삼층석탑을 둘러보고 안내판에 적힌 아래 내용의 소개 글을 꼼꼼히 읽었습니다.
“향산리 삼층석탑은 2단으로 이루어진 기단 위에 탑신부 3층을 쌓은 전형적인 3층 석탑이다. 2층 몸돌의 높이가 충 몸돌의 3분의 1 정도라, 안정되고 날씬한 느낌을 준다. 형태와 비례, 석재의 맞춤이 단정하고 세련된 점으로 보아 9세기 무렵 통일 신라 후시에 만들어졌음을 알 수 있다. 1935년 도굴꾼이 훼손하여 쓰러졌었으나, 5년 후 마을 사람들이 다시 세운 것이라고 한다. 이 탑은 현재에는 밭 한 가운데에 있지만 원래 이곳은 향산사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곳이다. 향산사는 신라 눌지왕 때 묵호자가 이곳을 지나다가 부처님 꿈을 꾸고 나서 세웠다고 전해진다. 1972년 마을에 일어난 흥수로 마을 주민들이 석탑 주변으로 이주하면서 옛 절의 자취가 사라졌다. 1980년 작은 청동 불상이 출토되었고, 주변에 기와 조각 등이 있어서 절터였음을 알 수 있지만, 향산사와 관련된 기록이나 유물은 남아 있지 않다.”
단양택시를 불러 양짓골휴게소로 가서 이상훈 교수차로 갈아타 영월 시내로 이동했습니다. 저녁 식사를 함께 한 후 평창역으로 옮겨가 20시55분 발 KTX에 승차하는 것으로써 15번째 한강 따라 걷기를 깔끔하게 마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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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걸은 단양의 영춘 땅에서 만난 역사적 인물은 고구려의 온달(溫達, 미상-590) 장군입니다. 온달이 어떤 인물인가는 고려시대 김부식(金富軾, 1075-1151)이 지은 『삼국사기』에 잘 소개되어 있습니다.
“얼굴이 못생겨 남의 웃음거리가 되었지만, 마음씨는 밝았다. 집이 매우 가난하여 항상 밥을 빌어다 어머니를 봉양하였는데, 떨어진 옷을 입고 해어진 신을 신고 저잣거리를 왕래하니, 그때 사람들이 그를 가리켜 바보 온달로 불렀다.”
바보 온달이 고구려의 명장으로 다시 태어난 것은 평강공주를 만나 가능했다는 생각입니다. 온달의 모친이 평강공주를 만나 "내 자식은 지극히 못 나 귀인의 배필이 될 수 없고, 내 집은 지극히 가난하여 귀인의 거처할 곳이 못 되오." 라고 근심 어린 말을 하자, 평강공주는 "옛사람의 말에 한 말 곡식도 방아 찧을 수 있고, 한 자 베도 바느질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진실로 마음만 함께 한다면 어찌 반드시 부귀한 후에야 함께 지낼 수 있겠습니까?” 라고 답했습니다. 평강공주가 또 온달에게 "옛사람의 말에 한 말 곡식도 방아 찧을 수 있고, 한 자 베도 바느질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진실로 마음만 함께 한다면 어찌 반드시 부귀한 후에야 함께 지낼 수 있겠습니까?”라고 말한 후, 금팔찌를 팔아 농토와 집, 노비, 우마와 기물 등을 구매해 살림살이를 다 갖추었다고 『삼국사기』가 전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평강공주의 사람됨을 알 수 있습니다.
후주(後周)의 무제(武帝)가 군사를 보내 요동(遼東)을 치자, 평강왕은 군사를 거느리고 나가 이산(肄山)의 들에서 맞아 싸웠습니다. 이 전쟁에서 온달은 선봉장이 되어 날쌔게 싸워 수십여 명을 베었고, 이에 여러 군사가 승세를 타고 분발하여 쳐서 크게 이겼습니다. 이를 가상히 여긴 평강왕은 “나의 사위”라면서 작위를 주고 대형(大兄)을 삼았다고 합니다.
25대 평강왕에 이어 영양왕(嬰陽王)이 즉위하자, 온달은 "신라가 우리 한강 이북의 땅을 빼앗아 군현을 삼았으니 백성들이 심히 한탄하여 일찍이 부모의 나라를 잊은 적이 없습니다. 원컨대 대왕께서는 어리석은 이 신하를 불초하다 하지 마시고 군사를 주신다면 가서 반드시 우리 땅을 도로 찾아오겠습니다.“라고 요청해 왕의 허락을 받아냈습니다
온달은 "계립현(鷄立峴)과 죽령(竹嶺) 이서 (以西)의 땅을 우리에게 귀속시키지 않으면 돌아오지 않겠다!" 하고 맹세하고 전쟁터로 떠났습니다. 온달은 신라 군사들과 아단성(阿旦城) 아래에서 싸우다가 흐르는 화살인 유시(流矢)에 맞아 넘어져서 전사했습니다. 장사를 행하려 하였는데 상여가 움직이지 아니하므로 공주가 와서 관을 어루만지면서 말하기를 “죽고 사는 것이 이미 결정되었으니, 아아 돌아갑시다!" 라고 위로하자 드디어 관이 들려서 장사를 지냈다는 이야기는 『삼국사기』에 실려 오롯이 오늘에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만하면 단양군에서 온달장군의 라이프 스토리를 서사화하고자 애쓰는 까닭을 알 것 같니다,
<탐방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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