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간구간:문장대-밤티재-늘재
*산행일자:2004.10.17일
*소재지 :충북괴산/보은, 경북 상주
*산높이 :속리산 문장대 1,032미터
*산행코스:대흥동-속사치-관음봉-문장대-밤티재-늘재
*산행시간:10시7분-16시53분(6시간46분)
*동행 :송백산악회
전편만한 후편의 영화가 없고 본 편만한 속편의 드라마가 없다는 것이 통설인 듯싶습니다. 혼신의 힘을 기울여 작품 한편을 만들고 나면 창의력은 거의 동이 나 비슷한 주제로 후편을 만들어 내는 일이 더할 수 없이 고통스러운 일이기에 그러합니다. 그러나 하느님이 창조하신 자연은 다릅니다. 하느님은 언제라도 창조에너지가 충만하시기에 그 분이 만드신 이 자연의 산들은 어느 하나라도 나무랄 데 없는 최고의 작품이어서 전 후편의 차이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2주전 올랐던 갈령-문장대의 속리산이나 어제 오른 속사치-늘재의 속리산 모두가 하느님이 빚어낸 것이기에 어느 산이 전편이고 어느 산이 후편이냐를 따지는 것은 쓸데없는 일이라 생각되었습니다.
두 주 만에 다시 찾은 속리산에도 그새 가을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붉은 색의 안토시아닌이나 노란 색의 캐로틴 및 크산토필의 색소가 초록의 엽록소를 밀어내어 붉게 물들기 시작한 나뭇잎의 단풍라인이 어느새 산허리로 내려섰고 맞바람에 시달려 온 능선의 나뭇잎들은 제대로 이 가을의 단풍 세레모니를 치러내지 못한 채 벌써 가지에서 떨어져 땅바닥에 나뒹굴고 있었습니다. 이 모든 변화가 기온이 떨어져 빚어낸 자연의 로고스로 제가 걱정할 일이 아니어서 그저 조용히 지켜볼 뿐입니다.
어제는 안내산악회를 따라 속리산을 다시 찾았습니다.
두 주전에 갈령-문수봉-법주사 코스를 밟아 남북으로 오르내렸고, 어제 또다시 한적한 암릉 길인 대흥동-속사치-문장대-눌재 코스를 서에서 동으로 걸어 종주를 마치고 나니 오래 밀린 숙제를 해낸 것 같아 뿌듯했습니다. 특히 문장대-밤티재의 대간 길은 험하기로 소문난 길이어서 과연 해낼 수 있을 까 잔뜩 겁을 집어먹고 있었는데 같이 오른 분들의 도움으로 무사히 마칠 수 있어 더욱 뿌듯했습니다.
아침 10시 7분 경북 상주시 화북면의 대흥리에서 산행을 시작했습니다.
버스 3대를 꽉 채운 대원들이 일렬로 길게 종대를 만들어 산행을 시작한지 몇 분 후에 대흥리 마을을 완전히 통과하여 산 속으로 들어서자 어느새 선두가 사라져 보이지 않았습니다. 계곡에 들어서기 직전 오랜만에 콩밭을 지났습니다. 어릴 적에는 비료를 주지 않고도 뿌리혹박테리아의 도움으로 아무 데서나 잘 자라는 콩을 여기 저기 많이 심었는데 요즈음은 일손이 부족해서인지 제대로 된 콩밭을 보기가 쉽지 않아 콩밭 매는 아낙네의 여심을 헤아리기가 더욱 더 어려워졌습니다.
박달댕이골의 초입에 대흥리 마을에서 송이버섯의 무단 채취를 막고자 계곡을 따라 줄을 쳐놓고 입산금지와 송이버섯 입찰을 알려주는 안내기를 걸어놓았습니다. 송이버섯이 귀한 터라 이런 시골에서는 주 수입원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자 같이 산에 오른 어느 분의 말씀처럼 몇 년 전의 큰 불로 산들이 황폐해진 강원도 양양에서는 한해 30억 원의 송이버섯 시장이 3억 원으로 격감했다는데 그 곳에 살고 있는 주민들이 겪고 있을 어려움이 얼마나 크겠는가 짐작이 갔습니다.
11시 24분 700미터대의 속사치 고개에 올라서자 냉랭한 바람이 세차게 불어댔습니다.
짐을 풀고 목을 추긴 후 이번 산행의 첫 번째 피사체로 안부 바로 옆에 우뚝 서 속사치 고개를 지켜온 잘 생긴 바위를 골라잡아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산 오름 길이 계곡을 따라 산 죽 사이를 가르고 나있어 내내 산죽의 싱그러움에 취해 걷기에 좋았습니다. 산 밑에서 보다 산 중턱의 산죽들이 키가 커 제 키를 넘었는데 산등성이로 올라서자 대부분의 산죽들이 제 허리에 닿을 정도로 키가 다시 낮아졌습니다.
속사치에서 왼쪽 능선을 타고 문장대로 향했습니다.
이번 산행에는 2미터 가량의 수직의 침니 길도 있고 간신히 몸이 빠져나가는 통천문 길도 있으니 조심하라는 회장 분의 안내대로 속사치-문장대의 암릉 길도 두 주전에 오른 갈령-문수봉의 능선 길보다 훨씬 어렵고 위험해 산행이 아주 더뎠습니다. 법주사의 얼굴이라는 관음봉을 올라타기에는 죄스럽고 힘들어 트레파스하여 전진하는 중 다른 분이 손을 잡아주어 바위에 올라서기도 했습니다.. 속사치를 출발해서 1시간 남짓 걸어 다다른 987봉에서 안부건너 문장대를 바라보며 두 번째 휴식을 취했습니다. 두 주전에 오른 먼발치의 천황봉이 눈에 들어와 반가웠고 맞은 편에 절애를 이루고 있는 문장대 서북면 암벽의 빼어난 자태에 감탄하고 있었는데 지난 번 귀로의 버스에서 긴 시간 대화를 나눈 분이 이를 배경 삼아 제 모습을 찍어 주었습니다.
12시 50분 백두대간 길로 이어지는 송신탑 고개에 올라섰습니다.
코앞의 문장대는 수많은 인파로 붐벼 오르내리기에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릴 것 같아 포기하고 저 혼자 점심을 들었습니다. 식사를 끝내자 그 많은 일행들이 보이지 않아 서둘러 헬기장으로 내려섰습니다. 회장 분 및 대부분의 대원들이 이곳 헬기장에서 식사를 하고 있어 짐을 내려놓고 느긋하게 사방을 둘러보고 보이는 모든 것을 카메라에 옮겨 담았습니다.
13시 18분 드디어 점심식사를 끝낸 몇 분들이 먼저 밤티재로 출발하기에 저도 바짝 뒤를 따랐습니다. 대학시절 잠시 록 크라이밍을 했던 제가 허리수술을 받은 후 불암산에 오르는 것도 겁낼 정도로 바위 길을 두려워했는데 올 들어 불암산과 수락산을 서너 번 오르내리고 도봉의 포대능선과 설악의 공룡능선을 밟고 나서는 어느 정도 자신이 붙어 이번 대간 길에 따라 나섰습니다. 상주산악회에서 암릉 길 곳곳에 로프를 걸어 놓아 이제는 위험하지는 않다지만 그래도 저 혼자 해내기는 벅찰 것 같아 기다렸다 다른 분들을 뒤따른 것입니다. 예상했던 대로 길이 험했습니다. 로프가 없었다면 오르내리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곳곳의 바위 길을 오르내리기가 힘들었습니다.
14시 22분 620미터대의 능선 길에서 사과로 원기를 보충했습니다.
위험한 길은 이제 끝난 것 같아 사과 맛이 꿀맛이었습니다. 제게 작은 귤을 건네 준 한 팀의 몇 분들은 쉬는 시간을 쪼개어 사과보다 훨씬 꿀맛이 나는 그것을 숨어 즐기고 있었습니다. 저 역시 2년 전까지는 몰래 숨어 그것을 즐기느라 산행 중 엄청 신경을 썼기에 그 분들에 조심하라는 말만 전했는데 다음에 만나면 목 디스크 수술을 계기로 딱 끊고 난 후 심신이 얼마나 좋아졌는지를 전해줄 뜻입니다.
14시 34분 밤티재로 출발했습니다. 바위 길을 오르내리기에 거추장스러울 것 같아 그동안 사용하지 않은 스틱을 꺼내들어 하산 길에 대비했습니다. 바위 길을 끝내고 만난 능선의 흙 길이 그리도 편안했기에 주위의 적송들이 제대로 눈에 들어 왔습니다. 40분 후 공사중인 밤티재에 내려섰다 절개면을 따라 다시 산등성이로 올라섰습니다. 밤티재에서 산허리를 동강내 큰 길을 내는 공사가 진행 중인데 굴 모양의 공사를 하고 있는 것이 이상해 보였습니다. 혹시나 동물의 통로를 만들기 위해 인공 터널을 만드는 것이 아닌가 싶은데 그렇다면 만시지탄의 감은 있어도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동물도 동물이려니와 사람들도 절개면을 오르내리는 것이 짜증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15시 34분 688봉 중턱에서 마지막 쉼을 가졌습니다.
남은 사과를 까먹고자 칼을 찾고 있는 중 옆자리의 부부 한 쌍이 시원한 배를 까서 건네주어 들고나니 뱃속이 시원해졌습니다. 배 맛이 이리도 시원한 것은 벌써 기온이 떨어져 냉기가 감도는 가을 한가운데 와있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오름 길 끝자락에 마무리 바위 오름을 무사히 해낸 후 16시 2분에 백악산 남봉인 688봉에 올라섰습니다. 두 번에 걸친 속리산의 풀코스종주를 기념하고자 천황봉과 관음봉을 잇는 주 능선을 카메라에 옮겨 실었습니다. 그리고 저처럼 걸음이 늦은 한 분을 만나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눌재로 하산했습니다.
16시 53분 눌재에 도착, 약 7시간 동안의 하루 산행을 마쳤습니다.
산악회에서 준비한 찌개에 밥을 말아 한 그릇을 들고나니 시장기가 가셨습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데 저희들은 속리산을 먼저 둘러보고 요기를 했으니 순서가 뒤바뀐 셈입니다만, 아무려면 어떻습니까? 뜻을 같이하는 분들과 어울려 산을 오르고 그 뒤풀이로 반주를 곁들인 소찬을 같이하는 일이 순서가 좀 바뀐들 어찌 즐겁지 아니하겠습니까? 여성 산행대장분과 첫인사를 나누고 이 산악회 카페회원 분들과 닉네임을 통성명하고 나자 카페문화와 산악문화의 퓨전에 빠져 든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늘재에서 이어지는 대간 길은 청화산으로 바로 이어지는데 다 제가 살고 있는 과천시의 산악연맹에서 청화산과 조항산을 연이어 오를 계획이어서 다음 주 일요일에 다시 눌재를 찾게 됩니다. 이리하면 뜻하지 않게 백두대간 종주 길에 나선 셈이 되겠는데 내친김에 본격적으로 시작해볼까 하는 유혹을 강하게 느끼면서 산행기를 정리했습니다.
<산행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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