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간구간:늘재-청화산-조항산
*산행일자:2004.11.14일
*소재지 :충북 괴산/경북 상주
*산높이 :청화산 984미터/ 조항산 951미터
*산행코스:늘재-청화산-갓바위재-조항산-의상저수지-입석리주차장
*산행시간:10시2분-16시8분(6시간6분소요)
*동행 :과천시산악연맹
어제는 늘재의 잠룡이 승천을 했다는 청화산을 찾았습니다.
속리산 북단의 끝자락인 고개마루 늘재의 잠룡이 동북방에 치솟은 청화산에 이르러 날개를 달고 승천을 했다는 풍수이야기를 쫓아 과천시 산악연맹의 103차 산행을 경북 상주의 늘재에서 시작했습니다.
잠룡이 승천할 필요충분조건이 무엇일까 궁금했습니다.
오랜 세월을 갈고 닦으며 때를 기다리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보는 것은 요즈음 잠룡으로 지칭되는 소위 유망한 정치인들의 속 보이는 처신의 가벼움 때문입니다. 국리민복을 위하여 애쓰는 잠룡들을 그렇지 못한 잠룡들과 식별할 줄 아는 민초들의 헤아림을 가볍게 여기고 기회만 닿으면 매스콤에 올라 승천을 시도하다 이무기가 되어버리는 잠룡들의 어리석음을 보아왔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전통음식에는 발효식품이 많습니다. 발효식품의 진수는 삭힘이라는 과정의 기다림에 있습니다. 패스트푸드의 부작용에 시달리는 서양인들에 세월의 효험이 농축되어 있는 우리의 슬로우 푸드인 발효식품은 더 할 수 없이 훌륭한 대안식품으로 자리 잡을 것으로 확신하는 저는 한국의 잠룡들이 이제라도 우리의 발효식품을 애용해 기다림의 지혜를 배울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는 바입니다.
아침 8시 51분 증평에서 고속도로를 빠져 나온 버스가 1시간 여 지방도로를 달려 10시에 경북 상주 화북의 늘재에 도착했습니다. 지난 10월 백두대간을 따라 갈령에서 시작한 속리산 종주를 천황봉-문장대-밤티재를 거쳐 이곳 늘재에서 마쳤으며, 어제 산행으로 백두대간 종주를 다시 이어갔습니다. 버스 1대를 거의 채운 40여명의 대원이 함께 산행 길에 나섰는데 그들 중 지난 5월 사자산을 함께 오른 분도 있어 반가웠습니다.
10시2분 해발 380미터의 늘재를 출발, 해발 984미터의 청화산에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3.5키로의 산행으로 600미터의 표고를 높여야 하는 늘재-청화산의 등산로는 대부분 경사가 급한 오르막길이어서 산 오름이 쉽지 않았습니다. 잔솔밭을 지나 “정국 기원단”이라는 한자비문의 백두대간 기원단이 세워진 작은 암봉에서 잠시 숨을 골랐습니다.
11시 15분 청화산 정상에 올라섰습니다.
쾌청한 날씨 덕에 늘재 건너편으로 지난 10월에 오르내린 속리산의 연봉들이 한눈에 들어 왔고 동쪽으로 쭉 뻗은 능선에 자리잡은 시루봉도 시원스레 잘 보였습니다. 늘재 3.5Km, 조항산 8.3Km 라고 표시된 안내판에는 청화산의 고도가 지도와 똑 같이 984미터로 적혀 있는데 , 정상의 표지석에는 970미터로 표기되어 있어 혼란스러웠습니다. 잠시 짐을 풀고 목을 추긴 후 승천한 용의 흔적을 찾을 수 있을 까 해서 사진 몇 커트를 찍는 동안 같이 오른 여성 대원 두 분이 먼저 조항산으로 떠났기에 저 역시 서둘러 출발했습니다.
정상에서 조금 내려가자 왼쪽으로 거의 90도 꺾은 방향으로 백두대간 길이 나있어 표지기를 제대로 보지 않으면 직진하여 시루봉으로 가는 길로 잘 못 들기 쉽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능선길로 몇 개의 봉을 오르내리는 중 먼저 떠난 두 여성대원들이 암만해도 시루봉으로 길을 잘못 든 것 같다며 그들을 찾아 나선 회장 분을 만났습니다. 산행 중 온 길을 되짚어 갔다가 다시 돌아온다는 것이 정말 힘든 일인데 이를 마다 않고 솔선수범을 하는 회장 분에 전적으로 신뢰가 갔습니다.
12시30분 해발 820미터의 암봉에 걸터앉아 사과를 꺼내 들었습니다. 시야가 탁 트여 전망이 일품이었기에 이 암봉을 전망봉으로 불러도 전혀 손색이 없을 듯 싶습니다. 왼쪽 산밑에 자리잡은 의상저수지가 한 폭의 수채화처럼 깔끔해 보여 카메라에 그 전경을 옮겨 담았고, 오른 편에 자리한 궁기리의 굽이진 산길이 골짜기를 빠져나가 어디로 연결될까 궁금해졌습니다. 청화산 정상에서 이곳 전망봉에 이르기까지 길섶에 펼쳐있는 산죽과 소나무가 그 푸르름으로 청화산의 이름 값을 더해주었기에 가까이의 소나무를 카메라에 옮겨 담았습니다.
경사가 급한 내리막길을 20분 가까이 걸어 내려와 고도가 100여미터 낮아진 갓바위재를 지나자 바로 헬기장이 나타났습니다. 갓바위재에서 왼쪽으로 의상저수지 행 탈출로가 나 있는데 저희 팀원 대부분이 이 길로 하산하고 선두의 몇 명만이 조항산을 올랐습니다. 헬기장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펼쳐진 조항산의 암봉 들이 수려하고 어서 빨리 정상에 오르겠다는 욕심에서 쉬지 않고 산 오름을 계속했습니다.
13시 40분 해발 951미터의 조항산 정상에 다다랐습니다.
“과천“, ”과천“ 하는 제 연호소리를 들은 이 강로 산행대장과 양 금숙 대원이 가던 길을 멈추고 되돌아와 정상에서 저를 기다려주어 고맙기 이를 데 없었습니다. 어진 이들이 산을 좋아한다는데 제 생각에는 산 또한 산에 들인 모든 이를 어질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정상 도착 20분전에 만난 문경 분들이 건네준 김밥 몇 톨로 기운을 회복해 어렵지 않게 정상을 올랐습니다. 내년 여름 한 3-4일간 휴가를 내어 문경일원의 고산들을 섭렵할 뜻이라는 저의 얘기를 듣고 전화번호를 알려준 가안강산 산악회의 김경식님에 고마워 할 따름입니다.
재빨리 점심을 해치우고 정상의 표지석 옆에 서있는 제 모습을 찍은 후, 14시 3분 정상을 출발하여 그 7분 후에 다다른 삼거리에서 백두대간 종주를 마무리 짓고 왼쪽의 삼송리로 하산하는 능선 길로 접어들었습니다. 하산 길이 백두대간 길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곳곳에 표지기가 걸려있어 길을 찾는데 별 어려움이 없었습니다만, 삼거리에서 조금 내려와 잠시 방심한 결과 오랜만에 미끄러져 바지를 더럽혔습니다. 지난 7월 용화산 산행을 끝내고 돌아오는 중 들른 등선폭포의 철계단에서 찧은 엉덩방아로 한 동안 의자에 앉아 있기가 엄청 불편하였는데 이번에는 엉덩이대신 팔꿈치의 살갗이 벗겨져 다행이었습니다.
동행한 산행대장의 표현처럼 어제는 하루 종일 산 밑 저수지의 용마루를 타고 산행을 했습니다. 삼송리의 의상저수지를 왼쪽으로 끼고 도는 능선 길은 곳곳에 바위가 자리하고 있어 단조롭지 않았습니다. 정상을 출발한지 40분이 지나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 의상저수지 길로 내려섰습니다. 급경사의 내리막길을 10여분 걸어 내려와, 14시 54분 짐을 내려놓고 잠시 쉬면서 숨을 골랐습니다. 길 양옆에 들어 선 적송들의 꼿꼿한 자태가 보기 좋았고 그 사이로 난 평탄한 오솔길을 걸은 두 분과 함께 평안함을 누렸습니다. 그리고 소복하게 쌓인 낙엽을 밟으며 만추의 애잔함을 가슴으로 새기는 가을 여인의 여심을 훔쳐 카메라에 옮겼습니다.
15시 30분 조항산을 완전히 빠져 나와 의상저수지 상류에 닿았습니다.
잔잔한 물결이 햇빛에 조사되어 찰랑이는 모습이 정겹게 느껴지는 저수지 변을 걷는 동안 마음의 평화를 얻었습니다. 댐을 건너 일행들과 주섬주섬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가을 길을 걸었습니다. 6백년의 수령을 자랑하는 용송 세 그루가 자랐다는 삼송리에는 이제는 천연기념물 290호로 지정된 적송의 왕송 한 그루만 남아 있어 보는 이를 안타깝게 했습니다.
16시8분 괴산 땅의 삼송리 옥양교를 건너서 경북 상주 땅인 입석리에 발을 들여, 약 6시간의 하루 산행을 전부 마쳤습니다. 어제 하루는 삼송리에 자리잡은 의상저수지를 끼고 그 용마루인 눌재-청화산-조항산-삼송리의 능선을 한바퀴 삥 도는 독특한 산행을 했습니다. 가을의 끝자락에 서서 겨울을 맞고자 찾아 오른 청화산-조항산 가을나들이는 그 산마루에서 내려다본 저수지가 마음의 고향처럼 포근하게 느껴져 오래 잊혀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함께 오른 모든 이들에 시인 김 현승님의 “가을의 기도”를 전하며 산행기를 맺습니다.
가을의 기도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낙엽들이 때를 기다려 내게 주신
겸허한 모국어로 나를 채우소서
가을에는
사랑하게 하소서...
오직 한 사람을 택하게 하소서.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위하여 이 비옥한
시간을 가꾸게 하소서
가을에는
호올로 있게 하소서...
나의 영혼,
굽이치는 바다와
백합의 골짜기를 지나
마른 나뭇가지 위에 다다른 까마귀같이
<산행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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