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간구간:하늘재-포암산-부리기재
*산행일자:2005.1.16일
*소재지 :경북문경/충북충주
*산높이 :포암산 962미터
*산행코스:하늘재-포암산-관음재-부리기재-중평리
*산행시간:10시6분-16시50분(6시간 44분)
*동행 :송백산악회
이른 아침 집을 나서자 아파트 단지에 밤새 내린 새하얀 눈이 소복하게 쌓여 있었습니다. 올 겨울 들어 처음으로 많은 눈이 내려 오랜 가뭄에 목말라하는 우리의 산하가 이제 비로소 목을 축일 수 있을 것 같아 안심이 됐습니다. 그리고 이리도 많은 눈이 내려 본격적으로 백두대간 종주 길에 나서는 저를 축하해 주는 듯싶어 고맙고 기뻤습니다.
어제 드디어 그동안 벼르고 별러왔던 백두대간 종주를 감행했습니다.
백두산에서 지리산을 잇는 한반도의 등뼈인 백두대간은 그 전장이 1,507키로나 되는 거대한 산줄기로 영조 때 실학자 신경준의 노작 산경표에 의해 명명된 우리나라 최고의 산길입니다. 북녘의 백두대간은 오를 수가 없기에 남녘의 지리산-진부령의 약 640키로가 제가 밟을 수 있는 대간 길 전부인데 이 중 작년 한 해 160키로를 뛰어 1/4은 마친 셈입니다., 그러나 천황봉에서 시작하여 연이어 오른 것이 아니고 여기 저기 찔끔 찔끔한 것이기에 본격적으로 백두대간 길에 발을 들이고자 어제 경북 문경의 하늘재를 찾았습니다.
잠실을 출발한지 3시간 만에 해발 525미터의 하늘재에 도착했습니다.
하늘재는 문경의 관음리와 충주의 미륵리를 잇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고개 길입니다.신라 아달타왕 3년인 서기 159년에 길을 낸 하늘재는 죽령보다 2년을, 새재보다 400년을 앞선다하며, 관음세계에서 미륵세계로, 그래서 현세에서 내세로 넘어가는 고갯길로 널리 알려진 유서 깊은 곳입니다.
10시6분 하늘재를 출발했습니다.
150명이 넘는 대 군단이 포암산에 이르는 좁은 길로 들어서자 자연 대열은 길어졌고 산행이 더뎌졌습니다. 희뿌연 하늘에 눈이라도 펑펑 내려주면 산토끼처럼 뛸 듯이 걸어가겠는데 간헐적으로 찔끔 찔끔 눈이 내려 미끄럽기만 하고 감질만 났습니다. 잠시 잡념에 사로잡혀 산을 오르는 중 발이 엇갈려 넘어지는 바람에 왼쪽 무릎이 돌에 부딪혀 산행 내내 쑤시고 쓰렸습니다. 하늘재 출발 30분 후 주능에 올라 포암산으로 산 오름을 계속하는 중 2002년 여름 말레지아의 키나바루 봉을 함께 오른 한 분을 만나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그때 제게 송백산악회 이야기를 처음으로 들려준 이분은 이번이 백두대간의 두 번째 종주길이라고 합니다.
11시17분 해발 962미터의 포암산 정상에 올라섰습니다.
산세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전망이 좋지 않아 답답했지만 나뭇가지에 꽃핀 눈꽃이 장관이었습니다. 표지석 옆에 배낭을 세워 놓고 사진을 찍어 등정을 기록한 후 아이젠을 꺼내 하산 길에 대비했습니다.
11시22분 하늘재에서 된비알 길을 치고 올라와 정상에 다다르기까지 30분이면 족하다는데 이번 산행에서는 70분이나 걸려 올랐기에 서둘러 정상을 출발, 대미산을 향해 내달렸습니다. 봉우리 왼쪽의 북사면으로 돌아갈 때면 산 밑에서 불어오는 차가운 바람을 만나 얼굴이 시렸습니다. 2년 전 대관령-능경봉-고루포기 구간을 뛰고 난 후 얼굴에 동상이 심하게 걸려 고생한 일이 있어 .모자로 귀를 가렸지만 얼굴의 노출부분이 또 다시 얼지 않을 까 걱정되었습니다. 100여 미터를 내려서자 길 양옆의 산죽들이 하얀 눈을 뒤집어쓰고 있어 그 특유의 푸르름을 숨겨 놓았습니다.
12시20분 만수봉으로 갈라지는 갈림길에서 배낭을 내려놓고 잠시 숨을 돌렸습니다.
제 앞의 몇 분들이 2.2키로 떨어진 만수봉으로 향했는데 저는 대간 길이 아니어서 반대방향의 대미산쪽으로 전진해 937봉을 올랐다 몇 분을 더 걸어 하산하는 중 점심을 들고 있는 회원들을 만나 합류해 점심을 들었습니다.
12시 42분 떡을 들면서 취한 7-8분간의 달콤한 휴식을 끝낸 후 산행을 계속했습니다.
급경사의 길을 내려서자 경사가 완만한 고즈넉한 길이 오랫동안 계속되어 걷기에 편했고, 덕분에 주위의 눈꽃들을 마음껏 즐겼습니다. 이 아름다운 눈꽃들도 나뭇가지를 흔들어 대는 삭풍에 못 이겨 가지에 붙어 있지 못하고 땅위로 떨어져 그 일생을 마감하는 것을 보고 화무십일홍은 눈꽃에도 들어맞는 자연의 섭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3시 33분 길바닥에 B코스라 적혀있는 종이가 놓여있는 지점을 지났습니다.
본격적으로 백두대간 종주를 시작한 마당에 중도에 포기하고 B코스를 택할 수는 없기에 쉬지 않고 내달렸습니다. 844봉을 오른 쪽으로 트레파스하자 송백을 연호하는 소리가 들려왔고 조금 후 길을 잘못 들었다며 두레골 님이 내려선 길을 되돌아 올라왔습니다. 구두끈을 고쳐 매고 곧바로 제대로 된 길을 찾아 844봉을 완전히 트레파스 한 후 급경사의 내리막길을 로프의 도움을 받아 내려섰다 다시 838미터의 두바위봉으로 올라섰습니다.. 지도상에는 이 봉우리가 B코스의 갈림길인데 잠시 착오를 일으켜 길을 잘 못 든 것 같았습니다.
14시50분 1,032봉에 올라섰습니다.
이 봉우리에 오르는 길이 그리 심한 오르막길은 아니었지만, 20여 분간 오름 길만 계속되어 마지막 땀을 흘렸습니다. 30분을 더 걸어 1,062봉에 다다르기까지의 대간 길은 오르내림이 거의 없는 평탄한 능선 길로 환상적인 코스였습니다. 해발 1,000미터대의 능선에 쌓여 있는 눈을 밟으며 걷는 이 기쁨은 산악인이 아니고서는 맛볼 수 없는 소중한 것이기에 산행기에 남기고자 합니다. 1062봉에서 짐을 풀어 정신없이 걷느라 미처 들지 못한 귤을 몇 분들과 함께 나누어 들고 준비해간 빵으로 요기를 하고 나자 다시 기운이 났습니다.
15시46분 해발 870미터의 부리기재에서 대간 종주를 마무리 짓고 잠시 숨을 고르는 동안 연꽃님이 건네준 귤을 맛있게 들었습니다. 눈앞의 대미산 정상에 쌓인 흰눈이 저녁 햇살에 반사되어 아름다움을 더했기에 다음산행에 반드시 오르겠다고 자연스레 마음먹게 되었습니다. 중평리로 내려가는 하산 길에 들어서자 거짓말처럼 눈이 다 녹아 발걸음을 옮기는 대로 먼지가 일곤 했습니다. 태양이 자신을 태워 방출한 열로 남사면의 눈들을 모두 녹였기 때문입니다. 표면온도가 섭씨 6000도인 태양이 매초 방출하는 에너지는 20억 개의 핵폭탄이 터질 때 와 같은 것으로 지표상에 도달하는 에너지는 평균해서 매 제곱미터 당 0.9KW라 하니 양지바른 곳과 그렇지 못한 음지와는 기온 차가 크게 나 능선을 중심으로 이쪽과 저쪽에 눈 녹음이 다른 것은 당연하다 하겠습니다. 고도를 600미터대로 낮추자 하늘로 시원스레 치 솟은 낙엽송들이 숲을 이루어 보기에 좋았습니다. 그동안 하늘을 가렸던 구름이 완전히 가시고 햇살을 되찾은 대미산과 이제껏 걸어온 연봉들이 제 모습을 내보여주어 이 모두를 카메라에 옮겨 담았습니다.
16시50분 해발 350미터의 중평리에 도착했습니다.
7시간 가까운 종주를 마치고 마을회관의 따뜻한 방안에서 따끈한 닭죽을 맛있게 들고나자 이를 준비한 산악회 집행진의 수고가 새삼 고맙게 느껴졌습니다. 귀로의 버스에서 천자봉 님과 자리를 같이해 편하게 귀경을 했는데 한마디 불평 없이 보조의자에 앉아 고생하는 새벽안개님에 미안했습니다. 송백산악회의 강점은 바로 산악회 집행진과 회원들의 신뢰에 있음을 이번 산행으로 또 한번 느꼈습니다.
재는 산을 넘는 분에는 가장 높이 다다르는 고개이지만, 산줄기를 종주하는 분들에는 가장 낮은 곳에 자리 잡은 안부입니다. 현세에서 내세로 넘나든다는 하늘재 역시 고개이자 안부입니다. 서기 159년에 길을 낸 하늘재는 그 후 1,800여 년을 고개로만 역할을 해왔을 터인데 이제는 백두대간을 종주하는 산객들에 안부로서 쉼터이자 출발점이자 마침 점으로서 역할이 더욱 중요해지는 듯싶습니다. 재가 이러한데 제가 이번에 산을 오르며 해야 할 일이 분명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그 일은 무엇일가 화두로 떠올리며 백두대간의 첫 번째 산행기를 맺습니다.
<산행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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