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간구간:부리기재-대미산-작은차갓재
*산행일자:2005. 5. 21일
*소재지 :경북문경/충북 단양
*산높이 ;대미산 1,115미터
*산행코스:안생달-작은찻갓재-981봉-1057봉-대미산-부리기재-중평리
*산행시간:10시57분-16시40분(5시간43분)
*동행 :나홀로
5월은 제게는 “백두대간의 달”입니다.
작년 10월 속리산 갈령에서 대간종주를 시작한 이래 지금까지 이런 저런 사정으로 여섯 구간을 건너뛰었고, 또 두 구간은 다 밟지 못하고 중간에 탈출로로 하산했습니다. 징검다리 식으로 건너 뛴 구간을 언제고 밟아야겠다고 생각만 해오다 이 달 들어 이 구간들의 종주 길에 나섰습니다. 1일에는 소백산 비로봉-상월봉-늦은목이재를, 14일에는 이화령-조령산-조령제3관문을, 21일인 어제는 부리기재-대미산-작은 차갓재 구간과 벌재-문복대-저수령 구간을 마쳤고, 가능하다면 오는 29일에도 저수령-묘적령 구간을 찾을 계획입니다. 이리하면 속리산 늘재에서 이화령까지 3구간이 남게 되고, 이화령에서 지난 주 마친 도래기재까지는 완벽하게 종주산행을 마치게 됩니다.
오전에 벌재-옥녀봉-저수령 구간을 역방향으로 마치고 벌재에서 택시를 불러 안생달로 옮겨 종주산행을 다시 시작했습니다. 안생달 마을은 지난 2월 황장산 구간을 종주하고자 찾았던 곳이어서 눈에 익어 반가웠는데 모내기로 한창 바쁠 시골마을이 너무 한가롭게 보였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대부분의 시골마을들은 한창 분주하게 나다닐 젊은이들이 다 떠난 뒤라 들에서 바쁘게 일하는 사람들을 만나기가 쉽지 않아서입니다.
10시57분 해발 548미터의 안생달 마을을 출발했습니다.
지난 2월 떼 지어 올랐던 길을 저 혼자 걸어 오르자 조금은 외롭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나홀로 산행”이 몸에 배어 산행 중 좀처럼 고독감이나 공포감을 별로 느끼지 못했던 제가 쓸쓸함을 느낀 것은 산악회의 많은 분들과 함께 오른 추억이 생각나서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추억은 생각을 이끌고 생각은 종종 외로움에서 머물기에 지금도 5년 전에 먼저 간 집사람과 즐겨 찾았던 곳을 다시 찾노라면 지독한 고독감에 빠지곤 합니다.
11시30분 해발816미터의 작은차갓재에 올라 점심을 들었습니다.
단양에서 아침식사를 일찍 해서인지 배가 출출해 12시도 안된 이른 시간이지만 김밥을 꺼내 들어 요기를 했습니다. 안생달에서 고개마루로 올라서기 까지 계곡을 흐르는 맑은 물과 신록의 싱그러움에 매료되어 30분 남짓한 산 오름을 가뿐히 해냈습니다. 지난 2월에 묏등바위 밑에서 추위에 벌벌 떨며 힘들게 올랐던 황장산 가는 길은 오른쪽으로 나있었고 이번에 오를 대미산은 왼쪽으로 난 길을 따라 2시간 40분 걸어야 다다른다고 표지판에 적혀 있었습니다. 고도가 그리 높지 않아서인지 왕파리들이 연신 김밥을 들고 있는 제 주위를 맴돌았습니다. 1971년 여름 지리산의 임걸령에서 한 낮에 취사를 하던 중 하도 왕파리들이 떼로 덤벼들어 찌게를 따로 퍼 놓아 분산시켰던 기억이 났습니다.
11시48분 작은찻갓재를 출발했습니다.
나무의 굵기가 거의 한 아름이나 되는 낙엽송 숲을 지나 출발 18분 만에 찻가재에 도착, 아침에 하늘재에서 산행을 시작했다는 젊은 대간 꾼을 만났습니다. 지난 1월 하늘재에서 시작하여 부리기재에서 하산한 제게는 이틀 몫의 거리를 하루에 끝내 시간과 비용을 모두 절약한 이 젊은이의 주력이 한없이 부러웠습니다. 분명 빠르다는 것은 현대전에서 최고의 병기입니다.
13시6분 981봉에서 두 번째 쉼을 가졌습니다.
송전탑을 지나자 큰 아들에게서 전화가 왔는데 휴대폰을 열자 이내 끊어졌습니다. 산객들의 왕래가 잦은 대간 길에서 만이라도 휴대폰이 제대로 터지면 좋으련만 아직도 신통치 않아 위급한 사고에 긴급히 대응하기가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송전탑에서 남쪽으로 얼마고 전진하다 다시 북쪽으로 포물선을 그리며 923봉으로 진행하던 중 이번에는 이십대로 보이는 젊은 여성분을 만나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건장한 남자도 혼자서 대간 길을 뛴다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어서 이 여성분이 다시 보였습니다. 981봉에 다다르기 7분전에 경기평택 여산회 백두대간구간 종주대에서 세워놓은 백두대간 중간지점 표시판을 지났습니다. 이 표시판에 의하면 대간 전장의 실측거리가 734.65키로라 합니다. 작은차갓재에서 이곳 981봉에 오르기 까지 바람이 거의 불지 않아 옷이 땀으로 흠뻑 젖었습니다. 더위를 식히고자 오렌지를 까먹으며 10분 남짓 편히 쉰 후 다시 고행 길에 나섰습니다.
14시30분 헬기장을 막지나 다다른 1051봉 갈림길에서 숨을 골랐습니다.
981봉에서 40분을 걸어 새목재의 안부에 이르기 까지 산행 중 그리 힘든 줄 몰랐습니다. 날이 흐려서인지 새소리가 더욱 크게 들렸습니다. 사흘 전 서점에서 “한국의 텃새”라는 책을 사 산속의 텃새를 일별했지만 나무에 앉아 울어대는 새들이 전신을 내보이지 않아 별 도움이 안 되어 부록으로 새소리를 녹음한 CD를 나누어주었다면 집에 돌아와서 확인해보겠는데 하는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안부에서 1051봉까지 반시간 남짓한 산 오름은 정말 힘들었습니다. 헬기장에서 시작된 오름길이 급경사 길은 아니었지만 대신에 길고 지루해 중간 중간에 발걸음을 멈추고 야생화들을 카메라에 옮겨 담으며 쉬곤 했습니다. 1051봉에서 정북으로 1.8키로 떨어진 곳에 해발 1,162미터의 문수봉이 자리 잡고 있었고 제가 오를 대미산 까지는 정남 방향으로 0.8키로가 남아 있었습니다.
15시 정각 작은찻갓재 출발한 지 3시간 13분 만에 해발1,115미터의 대미산에 올라섰습니다. 등로에서 70미터 떨어진 곳에 자리한 눈물샘을 들르지 않고 내쳐 발걸음을 옮겨 대미산을 오르자 산나물을 따러 올라온 한 여성분이 쉬고 있었습니다. 정동방향으로 소백산 천문대가 보였고, 그 뒤로 희미하게나마 비로봉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이제껏 밟아온 대간 길이 나뭇잎에 가려 제대로 조망할 수 없었지만 이제부터 하산 하는 일만 남아 있어 이번산행도 무사히 마칠 수 있다고 생각하자 가슴 뿌듯했습니다.
15시45분 대미산을 출발한지 27분 만에 해발 900미터의 부리기재로 내려섰습니다.
지난 1월 하늘재에서 시작하여 이곳에서 대간 종주를 마치고 중평리로 하산했는데 이번에도 똑 같은 코스로 하산했습니다. 급경사의 내리막길을 조심스레 하산해 중평리마을을 지나자 한 노인분이 제게 말을 걸어왔습니다. 지난 1월에도 말을 걸어온 약간은 치매기가 있는 듯싶은 그 노인네였습니다. 지나가는 사람이 누구든 가리지 않고 말을 거는 것으로 보아 이 노인네는 사람들이 몹시 그리운 가 봅니다.
16시40분 부리기재 출발 40분만에 중평리마을에 도착해 하루산행을 마쳤습니다.
인근 개천에서 탁족을 한 후 17시30분 시내버스를 타 문경 시내로 나갔습니다. 18시10분에 문경을 출발한 버스가 2시간 걸려 동서울터미널에 도착해 과천 집으로 되돌아 왔습니다.
사람은 싫어하면서 산만 좋아할 수 있을 까?
저 노인네를 보고 먼저 인사를 드리지 못한 제가 제 스스로에 던지는 질문이었습니다. 이 질문의 요체는 사람과 자연과의 관계설정입니다. 옛날처럼 자연에 순응해서 산다면 사람도 자연의 한 구성원이기에 사람도 산도 다 좋아할 수 있지만 제가 산을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자연과 인간에 위해를 가하는 고약한 사람들 모두를 좋아할 수는 없다는 생각입니다. 요즈음은 사람값을 못하는 사람들이 하도 많아 산을 사랑하는 내츄럴리스트들도 모든 사람들을 아끼는 휴머니스트가 되기는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도 산을 좋아 하는 사람들과 또 저 노인네처럼 사람들을 쉽게 믿고 자연밖에 모르는 순진한 시골 노인들을 좋아하고 존경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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