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II.백두대간·정맥·기맥/금북정맥 종주기

금북정맥 종주기18(유왕골고개-엽돈재)

시인마뇽 2007. 1. 3. 22:47
                                            금북정맥 종주기 18


                         *정맥구간:유왕골고개-성거산-위례산-엽돈재

                         *산행일자:2006. 8. 13일

                         *소재지  :충남천안/충북진천

                         *산높이  :성거산579미터/위례산524미터

                         *산행코스:각원사 -유왕골고개-성거산-우물목고개

                                         -위례산-부수문이고개-엽돈재

                         *산행시간:10시45분-17시45분(7시간)

                         *동행      :나홀로

 


  찜통더위에 생고생을 하면서 바다로 산으로 피서여행을 떠나는 것은 밖에서 맞는 더위가 집안에서 보내는 더위보다 훨씬 견딜 만해서일 것입니다. 에어컨을 틀어놓고 찬 바람을 쬘 때는 시원하다 싶지만 잠시라도 끄고 나면 곱빼기로 더워지는 것은 에어컨 공기가 우리에게서 더위를 이겨내는 극서능력을 뺏어가서 입니다. 한 겨울에 집안에 쳐 박혀 있으면 극한능력이 떨어져 밖에서 활동할 때보다 훨씬 춥게 느껴지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기온이란 우리 몸을 에워싸고 있는 공기의 온도로 우리 몸의 온도는 아닙니다.

저는 아직까지 체온보다 더 높은 기온의 여름을 맞은 적이 없어 소위 살인적인 더위가 어느 정도인지 계량되지 않습니다만 지구의 온난화로 우리나라에서도 체온보다 더 높은 기온을 기록할 날이 멀지 않을 것 같습니다. 더위를 피해볼 뜻으로 에어컨 등 다량의 에너지를 들여야 작동되는 냉방기구를 사용하게 되면 지구의 온난화가 더욱 빨라질 것이기에 앞으로는 더위를 이겨내는 극서에 사람들의 지혜가 모아져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그동안 몸무게가 많이 나가는 저는 추위는 잘 견뎠지만 더위에는 상당히 약한 편이었는데 최근 한 3년을 한 여름에 대간과 정맥을 종주한 덕분에 이제는 웬만한 더위는 끄떡없을 정도로 극서능력이 제고되었습니다. 


  어제는 충남 천안의 성거산과 위례산을 오르내렸습니다.

북회귀선 가까이에 머물면서 머리 위로 남중한 태양이 쨍쨍 내리쬐는 한낮에다 여름 내내 데워진 지구가 내뿜는 복사열이 더해져 가만히 앉아있어도 땀이 줄줄 흘러내리는 찜통더위에 저는 이 여름을 이겨내고자 금북정맥 종주 길에 나섰습니다. 물을 만나면 실패하는 종주산행은  계곡에서 냉탕을 하는 것으로 하루 산행을 마감하는 통상의 여름산행과는 달리 능선 길만 이어가므로 극서로는 이보다 더 좋은 방법이 없을 듯싶어서였습니다.


  아침10시45분 동양최대의 좌불상을 자랑하는 각원사에서 하루산행을 시작했습니다.

전날 밤 과음으로 제 때 일어나지 못해 10시20분이 넘어서 천안 역에 도착해 6천원을 넘겨 들여 택시를 타고 각원사로 이동했습니다. 안성의 배티고개까지 가겠다는 애당초 계획을 훨씬 당겨 엽돈재에서 산행을 마치기로 하고 각원사를 일별했습니다. 대웅전 툇돌 바로 아래 마당에 서있는 적송 6그루가 그동안 들어온 설법을 나이테에 차곡차곡 간직해왔다면 웬만한 신도보다 불법에 더 익숙하겠다는 엉뚱한 생각을 했습니다. 절의 크기도 작지 않았지만 범종과 좌불상의 엄청난 규모가 이 절에 봉양하는 신도 분들이 엄청 많음을 일러주는 듯 했습니다. 각원사에서 유왕골고개로 오르는 임도가 대간 길이 아닌 접근로여서 더욱 힘들게 느껴졌습니다.


  11시40분 25분간의 휴식을 끝내고 유왕골 고개를 출발해 대간종주를 시작했습니다.

이곳에서 아침을 드느라 쉬는 시간이 길어졌습니다. 마루금이 태조산의 주등산로여서 성거산 가는 길은 대간길보다 더 넓은 대로였습니다. 반짝이는 운모 몇 조각을 주워 주머니에 넣고 17분간 대로를 걸어 왼쪽으로 국민은행연수원으로 내려서는 안부사거리인 갈뫼고개를 지났습니다. 다시 24분을 걸어 400봉을 거쳐 왼쪽의 만일사로 갈라지는 만일고개로 내려서 돌무더기를 사진 찍었습니다. 1.7키로 남은 성거산까지 플라스틱계단을 오르는 된비알의 오름길이 계속되었습니다.


  12시51분 성거산 정상석 옆에서 10분을 쉬었습니다.

공군부대가 자리한 해발579미터의 성거산 정상에 서야할 표지석이 해발557미터의 이곳에 세운 것은 정상을 우회해 종주해야하는  산객들을 배려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고마웠습니다. 태조산에 오른 고려태조 왕건이 이 산을 바라보자 오색구름이 끼었다는 성거산의 한 기슭에  병인박해때 순교한 천주교 신자들의 시신이 묻혀있음을 보고 오색구름의 상서로움이  현세의 영화를 뜻하는 것이 아니고 내세의 올바른 길을 의미하는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표지목 옆으로 난 길을 따라 진입금지구역을 조금 걷다가 오른 쪽으로 조금 내려서자 표토가 다 사라져 속살이 훤히 내보이는 맨땅이 지난 큰비에 쓸려나가 움푹 파인 모습이 몰골사나워 보였습니다. 바가지가 놓여있는 샘물도 물이 지저분해 떠먹지 못하고 그냥 지나쳤습니다. 33분 동안 성거산 정상을 옆 지르는 동안 중간의 삼거리에서 잠시 알바를 했을 뿐 이내 제 길을 찾아 군 도로로 들어서 마루금을 이어갔습니다.


  마루금 오른 쪽으로 난 도로를 따라 내려가는 동안 해를 가릴 나무가 없어 8월 한낮의 땡볕 더위가 이런 것임을 체감했습니다. 도로를 따라 웃물목으로 내려서는 동안 성거산 순교성지인 제2줄무덤과 제1줄무덤을 지났습니다. 1866년 병인박해 때 종교적 믿음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내던진 5분의 순교자가 묻혀있는 성지를 들러보지 못하고 그냥 지나치기가 죄송해 제2줄무덤 안내석 앞에 서서 오늘날의 한국교회가 있게 한 그분들의 순교를 기리는 기도를 올렸습니다.


  14시10분 차도를 따라 걸어 입장과 북면으로 갈리는 웃물목고개 삼거리로 내려서서 목을 축이며 15분을 쉬었습니다. 땡볕 길을 따라 40분 가까이 걷는 동안 차를 몰고 올라와 나무그늘에서 웃통을 벗고 고기를 구워먹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 더욱 덥게 느껴졌습니다. 웃물목에서 송전탑쪽으로 올라서 위례산을 오르는 중 안부사거리를 지났는데 나무에 오색 줄을 매어 놓은 성황당이 이채로워 카메라에 옮겨 실었습니다. 이 찜통더위에 중력의 작용방향과 반대로 산 오름을 하는 생명행위가 아름다운 것인지 아니면 처절한 것인지 쉽게 분별되지 않았는데 위례산 0.9키로 전방의 480봉에 올라서 지나온 길을 뒤돌아보자 산 오름의 생명행위가 저 능선 길처럼 아름답겠다 싶었습니다. 왼쪽 산 아래에 위치한 시장저수지가 시원스레 보였습니다.


  15시31분 해발 530미터의 위례산에서 짐을 풀고 10분을 쉬었습니다.

잡초가 우거진 평평한 정상에 정상석과 태극기가 세워져 있었고 한 편으로 둘레가 950미터가 된다는 퇴뫼식 석성의 위례산성안내판이 서있었습니다. 정상을 출발하자 별안간 짐승이 길을 가로 질러 숲 속으로 뛰어 들어가는 소리가 크게 나 혹시 멧돼지가 아닌 가  해서 잠시 제자리에 서있었습니다. 12분을 걸어 다다른 삼거리에서 입장 길로 직진하지 않고 오른 쪽으로 확 틀어 1.9키로 남아 있는 부수문이고개로 내달렸습니다. 산소를 막 지나 임도를 만나기까지 이 십 여분 계속된 오솔길은 넓은 나무들이 햇빛을 잘 가려주었고 오르내림이 거의 없는 평탄한 길이어서 이번 산행 중 가장 편안한 길을 걸었습니다.


  16시30분 57번 국도가 지나는 부수문이 고개를 건넜습니다.

산불감시 초소 옆에 차도와 나란히 세워진 여러 나라 국기들을 카메라에 옮겨 담은 후 입산금지 플래카드가 쳐진 산등성이로 올라서 마지막으로 18분을 쉬면서 찹쌀떡과 포도로 시장기를 달랬습니다. 이번 산행의 종착지인  엽돈재로 향하는 길은 희미하고 거미줄이 많이 쳐져 금북정맥을 종주하는 산객들만 이 길을 지난 듯싶었습니다. 30분을 걸어 459봉에 오르는데 그리 힘든 줄 몰랐습니다.


  17시45분 34번 국도가 지나는 엽돈재로 내려서 7시간 동안의 하루산행을 마쳤습니다.

충북 땅 진천시내가 멀지 않은 듯 생거진천 표지석이 세워진 엽돈재에서 차도를 건너 입장 방향의 차를 세워보자 했으나 탈자리가 없어 미안해하는 화물차 한대만 잠시 멈춰 섰을 뿐 다른 차들은 모두 그냥 지나가버렸습니다. 공짜 차를 타겠다는 욕심을 접고 택시를 불러 만원을 냈습니다. 석양에 그늘 져 시원해 보이는 청룡저수지를 지나 입장에 다다랐고  버스로 갈아타 천안 역으로 나갔습니다.


  이번 산행에서는 이렇다하게 알바를 하지 않아 운행도 생각만큼 빨랐고 더위도 생각보다 잘 견뎌 냈습니다. 기왕에 시작한 한 여름 종주산행이 더위를 이겨내는 성공적인 극서로 매듭질 수 있도록 이 더위가 가시기 전에 남은 두 번을 출산하여 금북정맥 종주를 마치고자 합니다. 피하는 것보다는 맞서 이겨내는 것이 더욱 보람 있음을 오랜 세월 산을 오르내리며 터득했기 때문입니다.

 

 

                                                             <산행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