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북정맥 종주기 19
*정맥구간:엽돈재-서운산-배티재-옥정재 *산행일자:2006. 8. 15일 *소재지 :경기안성,충남천안/충북진천 *산높이 :서운산547미터 *산행코스:엽돈재-서운산-배티재-471봉-옥정재 *산행시간:11시12분-18시56분(7시간44분) *동행 :나홀로
차들이 뜸하게 지나다니는 고개마루에 자리를 펴고 앉아 고개를 넘나드는 바람을 쐬며 시원해 하는 60대 초반의 부부를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행복해 하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았습니다. 고도가 4백미터 가까이 되는 높다란 고개마루로 차를 몰고 와 산바람을 맞으며 즐거워하는 이 분들의 피서법은 에어컨이 잘 가동되는 시원한 집안에 쿡 박혀 있는 것이 아니라 시원한 곳을 직접 찾아 나서 자연의 바람을 맞는 것이어서 조금은 별나 보였습니다. 한 지방에서 오래 머물며 살아온 덕에 어느 곳이 시원한가를 훤히 꿰뚫고 있는 이분들이 말씀하시기를 이 지역에서는 단연 여기 옥정재를 넘나드는 산바람이 가장 시원하다고 했습니다. 탁 트인 밖으로 나와 함께 시간을 보내다보면 이제껏 힘들었던 두 분사이의 이런저런 애환들을 바람에 실어 고개 너머 저 멀리로 날려 보낼 수도 있겠다 싶었습니다. 8시간 가까이 산봉우리를 오르내리다 경기안성의 금광과 충북진천의 이월을 어우르는 해발 390미터의 옥정재로 내려선 시각이 오후 6시56분이었습니다. 이번산행의 목적지인 이 고개에 저녁 7시안에 대고자 배티재를 지나서부터는 죽자 살자 내달린 덕에 어둡기 전에 산속에서 빠져나오는 것까지 성공했으나 이 고개를 지나는 노선버스가 한 대도 없어 만 오천원이 넘는 택시비를 들여 안성으로 나가야한다고 생각하자 속이 쓰렸습니다. 마침 고개마루 한 편에 승합차가 주차하고 있어 잘하면 얻어 탈수도 있다는 생각에서 이분들에 다가가 안성 가는 차편을 물어본 것이 주효했습니다. 한 시간 동안 이야기를 나눈 뒤 이분들의 차로 금과면옥정리로 나가 밤8시10분 발 안성행 버스에 올라 비용도 절감했고 속 쓰림도 면했습니다. 남들의 작은 어려움을 챙겨주는 배품의 아름다움은 스스로가 행복하게 사는 법을 알고 행하는데서 비롯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전11시12분 엽돈재를 출발해 서운산으로 향했습니다. 천안에서 시내버스로 입장으로 옮겨 10시50분에 출발하는 진천행 버스를 타고 가다 엽돈재에서 하차했습니다. 하루에 두 대밖에 없는 버스시간에 맞추다보니 출발이 늦어져 이번산행의 목적지인 옥정재까지 저녁7시안에 닿기 위해서는 산행을 서둘러야 했습니다. 절개면 오른 쪽 끝자리에서 사면을 타고 올라 꼭지 점에 다다르기까지 7-8분 동안이 경사가 가파르고 발이 풀에 걸려 힘들었지만 꼭지 점에 오르자 길섶의 잡목들을 쳐주어 종주 길이 마치 임도처럼 시원스레 열렸습니다. 엽돈재 출발 반시간 후에 올라선 380봉에서 오른 쪽으로 꺾어 걷던 중 뻐꾸기소리가 크게 들렸습니다. 봄철에 그토록 구성지게 울어대던 뻐꾸기가 한 여름이 되자 매미들에 자리물림을 했는가 생각될 정도로 좀처럼 소리를 내지 않아 궁금했었습니다. 검은등뻐꾸기의 “홀딱 벗고” 울음소리도 같이 들려 왔으면 더 반가웠을 텐데 그렇지 못해 아쉬웠습니다. 12시46분 440봉에서 첫 쉼을 가졌습니다. 날씨는 후덥지근했지만 잡풀을 베어내 길이 넓었고 간간히 바람도 시원하게 불어와 걸을 만 해서 쉬지 않고 400미터 안팎의 높고 낮은 봉우리를 연속해서 오르내렸습니다. 12시를 막 지나 다다른 400봉에서 잘못 내려가 원위치 하느라 7-8분간 치른 알바는 그 후 한 시간이 지나 20분 넘게 헤맨 본격적인 알바의 예비신호였습니다. 400봉에서 두 번째 산소를 지나 다다른 무명봉에서 먼저 와 식사를 하고 있는 부부 분들에 청룡사로 내려서는 갈림길이 멀지 않았음을 확인하고 조금 더 걸어 440봉 삼거리에 올라 숨을 골랐습니다. 땀 흘리고 난 뒤 먹는 포도 맛이 꿀맛이었습니다. 12분간의 편안한 쉼을 끝내고 왼쪽으로 한참을 내려섰는데 표지기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나침판을 꺼내 진행방향을 확인해보니 북쪽이 아닌 서쪽이었습니다. 이 더위에 440봉으로 다시 올라가 오른쪽 길로 내려갈 생각을 하자 눈앞이 캄캄해졌고 기운이 쪽 빠졌습니다. 마침 오른 쪽으로 440봉을 옆 지르는 좁은 길이 보여 그 길을 따라 얼마만큼 나아 가다가 나무가 뽑혀나가고 허연 속살이 내보여진 급경사의 흙 밭을 만나 발걸음을 멈췄습니다. 자칫 잘못해 지나가는 중 미끄러지면 저 산 밑까지 떨어질 것 같아 횡단을 포기하고 나무를 붙잡고 된비알의 비탈면을 바로 올라갔습니다. 440봉 출발 22분 후에 마루금을 다시 밟은 다음 다시 19분을 걸어 청룡사 갈림길 표지목이 서있는 안부에 도착했습니다. 13시39분 청룡사 갈림길 안부에서 0.9키로 남겨놓은 서운산을 바로 오르지 못하고 다시 쉬었습니다. 저와 발걸음이 비슷한 분이 엽돈재 출발 1시간 47분 만에 이 곳에 다다랐는데 크고 작은 두 번의 알바로 40분이 더 걸려 도착했기에 많이 지쳐 이곳에서 점심을 들면서 11분을 쉬었습니다. 이런 속도라면 해지기 전에 옥정재에 도착하는 것이 무리라는 생각이 들자 불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정상에 오르는 길은 생각보다 비탈지지 않았습니다. 안부출발 22분 후인 14시12분에 해발547미터의 서운산 정수리에 올라섰으나 갈 길이 급해 바로 배티재로 내달렸습니다. 2003년 겨울에 새벽같이 내려와 석남사에서 올라왔던 산이어서 눈에 익었고 반가웠습니다. 그날도 저녁에 과천성당에서 견진세례를 받게 되어 이번처럼 쉬지 않고 바로 청룡사로 하산했었습니다. 15시7분 해발320미터의 배티재에 다다랐습니다. 표지목에 서운산 정상에서 배티재까지 거리가 1.9키로로 적혀있어 빨리 도착하겠다 싶었는데 쉬지 않고 내달렸는데도 55분이 걸렸습니다. 정상출발 12분 후 석남사로 갈리는 배티재1.3키로 전방의 갈림길을 지나자 조금 떨어져 있는 오른 쪽 비탈면이 훤해 보였습니다. 오래전에 소나무만 남겨 놓고 벌목을 한 듯 비탈면에 나무는 몇 그루 보이지 않고 숲만 무성했습니다. 갈길 바쁜 저를 잠시 멈추게 한 것은 제 앞을 뒤뚱거리며 10여미터를 바쁘게 뛰어가는 비둘기만한 산새 한 마리였습니다. 배티고개 도착 14분전에 무명순교자 여섯 분을 모시는 묘지를 들러 그분들의 순교를 기리고자 기도했습니다. 8월15일은 성모승천대축일이어서 아침6시에 새벽미사가 있었던 인근 성당을 찾아갔으나 문이 닫혀 미사를 드리지 못하고 종주 길에 나선 데다 배티성지가 그리 멀지 않은데도 들르지 못해 용서를 비는 기도도 함께 올렸습니다. 15시17분 배티재를 건너 중앙CC진입로를 따라 걷다가 왼쪽 능선으로 올라 10분을 쉬었습니다. 엽돈재 출발 3시간 55분이 걸려 이곳 배티재에 도착했는데 더 멀리 있는 옥정재까지 이런 걸음으로 걷다가는 8시가 다 되어야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아 더욱 불안했습니다. 제게는 이제껏 불안의식이 산행속도를 높여주는 가속기였습니다. 헤드랜턴을 준비했어도 길이 분명치 않는 정맥종주에서 야간산행을 하는 것은 정말 불가피한 경우가 아니면 피하고 싶어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습니다. 엽돈재-배티재 구간과는 달리 잡목들이 앞을 가로 막고 거미줄이 얼굴에 달라붙어 짜증스러웠지만 장고개까지 죽어라고 내달렸습니다. 무명봉에서 배수로를 따라 내려가다 계단 길로 내려선 시멘트길이 장고개로 오른 쪽 아래로 골프장 아파트가 있었고 바로 위에 호화로운 납골묘가 자리했습니다. 납골묘 윗 쪽의 산길로 들어가 산 오름을 계속하다 송전탑2기를 지나 무명봉 삼거리에 다다랐습니다. 16시25분 무명봉 삼거리에서 10분을 쉬었습니다. 뛰느라고 땀을 많이 흘려 정신이 혼미해졌는지 자리에서 일어나 방금 전에 올라온 길을 다시 걷고 있었습니다. 조금 후 잘 못 가고 있음을 알아챘기 망정이지 또 다시 결정적 실수를 할 뻔 했습니다. 임도안부사거리를 지나자 고도가 다시 높아져 헐떡이며 무명봉을 올라섰습니다. 오른쪽으로 거의 시뻘건 속살이 그대로 보이는 벌목지가 보여 산사태가 나지 않을까 염려되었습니다. 좀처럼 고도가 낮아지지 않는 봉우리들을 계속해서 오르내리는 것이 정말 힘들었습니다. 지도상의 헬기장이 나타난 것은 눈앞의 봉우리에 헬기장이 없더라도 쉬어가자고 마음먹을 정도로 한껏 지쳐있을 때였습니다. 17시35분 해발471미터의 헬기장에 도착했습니다. 꽤 넓은 평지를 철판으로 덮은 헬기장에 올라서자 그동안 걸어온 길이 한눈에 들어왔습니다. 저 먼 길을 잘도 걸어왔다 생각하자 얼마 남지 않은 갈 길이 그리 멀지 않게 보였습니다. 10분을 쉰 후 또다시 바람 가르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뛰었습니다. 헬기장 출발 10분 이 지나서 안부에 도착한 다음 맞은 편 봉우리로 오르는 길이 제게는 마지막 깔딱 길이었습니다. 악이 받쳐 이 봉우리를 후닥닥 올라서자 독수리 한 마리가 바로 눈앞에서 하늘로 날아올랐습니다. 바로 눈앞에서 저공비행을 하는 큰 덩치의 독수리를 만나자 겁이 덜컥 났습니다. 저 덩치의 독수리가 위에서 공격해온다면 당해낼 길이 보이지 않아서였습니다. 송전철탑을 지나 조그마한 헬기장에 도착한 것은 철판헬기장 출발 한 시간이 지나서였습니다. 많이 지쳤지만 차 소리가 들려와 옥정재가 멀지 않겠다 싶어 그냥 내달렸습니다. 18시56분 해지기 전에 해발390미터의 옥정재에 도착했습니다. 헬기장 출발 7분 후 산속에서 완전히 빠져나와 넓은 임도로 내려섰습니다. 3분을 더 걸어 옥정재에 도착하자 몇 분들이 고개마루에서 자리를 깔고 쉬고 있었습니다. 혹시나 이 고개를 넘나드는 노선버스가 있나 해서 그분들에 물어보았으나 예상했던 대로 없다고 답을 해왔습니다. 수인사를 하고나서 어디 택시를 불러야 싼 가를 다시 물었더니 한 부부께서 시간이 있으면 한 시간 쯤 쉬었다가 옥정리까지 차로 같이 내려가 버스를 갈아타는 것이 어떠냐고 제의해와 두말 않고 좋다고 습니다. 다음에 이 고개를 올 때에는 진천의 이월에서 택시를 타는 것이 안성보다 훨씬 싸다고 알려왔습니다. 이분들의 배려로 금북정맥 마지막구간의 출발점인 옥정재에 쉽게 다다를 수 있게 되어 고맙고 또 고마웠습니다.
<산행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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