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II.백두대간·정맥·기맥/금북정맥 종주기

금북정맥 종주기20(최종회:옥정재-칠장산3정맥분기점)

시인마뇽 2007. 1. 3. 22:50
                                          금북정맥 종주기 20 (최종회)


                          *정맥구간:옥정재-무이산-덕성산-칠현산-3정맥분기점

                          *산행일자:2006. 8. 20일

                          *소재지  :경기 안성/충북 진천

                          *산높이  :덕성산519미터/칠현산516미터/칠장산492미터/

                                         무이산462미터

                          *산행코스:옥정재-무이산-덕성산-칠현산-3정맥분기점

                                          -칠장산-칠장사정류장

                          *산행시간:10시15분-16시20분(6시간5분)

                          *동행      :나홀로

 


    먼 길을 걷고 또 걸어 장장 260여키로의 금북정맥 길을 모두 밟았습니다.

지난 3월1일 충남 태안의 안흥진을 출발한지 거의 반년이 다지나 어제 경기 안성의 칠장산 3정맥분기점에서 종주산행을 마무리하기까지 총 20회를 출산했습니다. 다른 분들은 거의 다가 14-5회로 끝냈는데 발걸음이 재지 못한 저는 5-6회를 더 나서야했지만 덕분에 이제껏 생경했던 충남의 명산들과 보다 가까워졌다는 생각입니다. 종주산행을 무사히 마치고 나면 아름다운 이 산하를 마음껏 걸을 수 있도록 건각을 제게 주신 돌아가신 두 분께 감사하는 마음이 절로 일곤 합니다. 또 마루금을 밟아가며 이어온 선을 뒤돌아  보노라면 제가 만들어온 선이 저토록 장대하고 아름다운가 하고 감탄하게 됩니다. 그래서 힘들었던 산행기억을 말끔히 지워버리고 또 다시 새로운 종주 길에 나설 채비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침10시15분 옥정재 고개마루에서 금북정맥 마지막구간의 종주산행을 시작했습니다.

새벽부터 서둘러 미사를 올린 후 동서울터미널로 나가 8시40분 발 진천행 버스를 탔습니다. 10시가 조금 못되어 이월에 도착해 택시로 옥정재를 올랐습니다. 택시비가 7천원으로 안성에서 타는 것보다 8천원이 쌌고 시간도 단축돼 이월로 오기를 잘했다 싶었습니다. 옥정재에서 철조망을 넘어 들머리로 들어선 후 7-8분 동안 다섯 번을 더 철조망을 넘어야 했습니다. 길 한가운데 철조망을 이토록 촘촘히 쳐 가는 길을 가로막은 것은 이제껏 보지를 못했으며 아무리 사유림이라 해도 좀 심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옥정재 출발 21분 후에 도착한 해발400미터의 고라니봉에서 얼마고 내려섰다가 평평한 길을 따라 한참을 걸은 후 다시 봉우리 하나를 넘어 부부돌탑이 세워진 안부로 내려섰습니다.


  11시21분 해발462미터의 무이산을 올랐습니다.

부부돌탑의 안부를 지나자 비가 뿌리기 시작했습니다. 안부에서 12분을 걸어올라 무이산 갈림길에 도착했습니다. 잠시 마루금에서 벗어나 오른 쪽으로 5분가량 전진해 무이산에 오르자 저 멀리 북쪽으로 덕성산봉우리가 눈에 잡혔습니다.  갈림길로 되돌아가 3-4분간 짧게 쉰 후 덕성산으로 향했습니다. 밤새 내린 비가 내려앉은 풀숲을 스쳐 지나오느라 옷이 많이 젖어버린 데다가 비가 뿌리기 시작하자 오싹할 정도로 한기가 느껴졌습니다. 사장골정상이라는 돌판이 세워진 400봉에 오르자 오른쪽 아래로 산허리를 휘도는 임도가 보였습니다. 400봉에서 조금 더 걸어 식사를 하고 있는 젊은이들을 만났습니다. 이 젊은이들이 아침9시에 칠장사를 출발했다 하니 저도 잘하면 3시간 후인 오후 3시경이면 칠장산의 3정맥 분기점에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15분 후 부부돌탑보다 큰 돌탑이 자리한 안부에 내려서자 개구리 한 마리가 팔짝 뛰어 어디론가 달아나버렸습니다. 이 세상에 정말 알 수 없는 것은 여자의 마음과 개구리 뛰는 방향이라는데 “사랑은 3분의 믿음과 7분의 불안”이라는 한마디도 개구리가 어느 쪽으로 뛸지 모르듯이 사랑하는 여인의 마음이 어떻게 변할 줄 몰라 불안해하는데서 연유했을 것으로 짐작됐습니다.


  12시40분 471봉에서 점심을 들면서 12분을 쉬었습니다.

320미터대의 안부에서 471봉으로 오르는 길은 경사가 급하겠다는 예상과는 달리 여러 봉우리를 오르내리면서 서서히 고도가 높아져 산 오름이 그리 힘들지 않았습니다. 5년간의 준비 끝에 맞이한 이 여름이 이렇게 끝나가는 것이 아쉬워서인지 매미들이 한껏 목청을 높였습니다. 참나무 줄기에 붙어사는 것은 하늘로 치솟은 이 나무를 휘감고 올라가는 넝쿨만이 아니었습니다. 나무 밑 둥에서 자라고 있는 이끼들도 초록색 넝쿨 잎과 함께 칙칙한 참나무 수피를 밝게 했습니다. 안부에서 34분을 걸어 471봉에 올라서서 삼각점을 확인했습니다. 471봉 출발 21분이 지나 덕성산이 바로 앞에 보이는 440봉에 다다랐습니다. 극성스레 울어대던 매미들의 합창이 끝나자 새들도 숨을 죽여 얼마간 산속이 조용했다가 다시 목청을 높이기를 몇 번이나 반복된 것은 비올 낌새를 미리 알아채서였을 것입니다.


  13시42분 해발519미터의 덕성산에 올라섰습니다.

440봉에서 덕성산으로 오르는 길은 길섶의 잡목들을 베어내어 시원했습니다. 베어낸 그루터기에서 다시 솟아난 새 잎이 띠고 있는 연두색은 4-5월에 가지에서 돋아난 나이 먹은 나뭇잎들의 칙칙한 초록색보다 훨씬 밝아 보여 앳됨의 아름다움을 재현했습니다. 440봉을 지난 지 22분이 되어 마루금에서 약간 오른 쪽으로 비껴 나있는 덕성산에 다다랐습니다. 남쪽으로 시야가 탁 트여 이제껏 걸어온 능선과 능선 길을 안내한 빨간 송전탑들이 한눈에 들어왔습니다. 마침 햇빛이 잠깐 들어 며칠 전 허겁지겁 내달렸던 옥정재 너머 산줄기도 확연하게 잡혔습니다.


  “생거진천”에서 세운 표지목과 돌탑위에 세워진 정상석을 카메라에 담은 후 나무의자에 걸터앉아 포도를 들며 8분을 쉬었습니다. 예부터 전해 내려온 “생거진천 사거용인” 한마디를 십분 활용하여 살기 좋은 진천을 널리 알리고자 자치단체에서 여기저기 표시물에 “생거진천”을 써넣고 있었습니다. 전해 내려오는 얘기인 즉 진천에 살고 있던 한 사나이가 용인에 살고 있는 동명이인으로 오인 받아 저승사자에 잡혀갔다 풀려나와 용인의 동명이인에게 달려가 간신히 되살아난 후 이런저런 우여곡절 끝에 고을원님으로부터 “생거진천 사거용인”의 판정을 받고나서 진천에서 살다가  죽어서는 용인에 묻혔다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 어디에도 진천이 살기 좋다는 내용이 나오지 않는데 진천군에서 “생거진천”을 살기 좋은 진천으로 해석해 잘 활용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3시53분 덕성산을 출발했습니다.

덕성산에서 칠장산까지 5.3키로의 산길은 2003년 6월에 한번 걸은 길이어서 눈에 익었습니다. 자연 발걸음이 가벼워졌고, 휘파람 노래소리가 절로 났습니다. 덕성산에서 갈림길로 되돌아와 오른 쪽으로 방향을 틀어 칠장산으로 향했습니다. 벌레들이 나무 가지를 잘라내어 산행 중에 새파란 도토리가 열려있는 참나무가지가 툭툭 땅으로 떨어지는 것을 여러 번 보았습니다. 야트막한 봉우리를 몇 개 넘고 커다란 바위를 비껴가 해발 513미터의 곰림 정상에 다다른 것은 덕성산 출발 반시간이 다 되어서였습니다. 이봉우리에서 왼쪽으로 방향을 확 바꾸어 칠현산으로 향했습니다. 헬기장을 지나 풀 숲길로 들어서자 노랑꽃의 키가 훤칠한 마타리가 눈에 띄어 카메라에 남겼습니다.


  14시33분 해발516미터의 칠현산에 다다랐습니다.

오른 쪽으로 내려서면 명적암 가는 길로 경사가 가파른 것으로 기억됐습니다. 10분 후 칠순비부부탑이 서 있는 안부로 내려섰습니다. 어느 분이 이 탑을 세웠는지 이름을 밝히지 않아 궁금했지만 차라리 잘되었다고 생각한 것은 표지기와는 달리 넓은 공간을 차지한 돌탑이 어느 누구의 전유물이 되어서는 안 될 것 같아서였습니다. 안부를 지나 봉우리로 오르는 중 뒤따라오는 한 남자분이 큰 소리로 휴대폰을 걸고 있어 신경이 쓰였습니다. 산에 들어서면 아예 휴대폰을 꺼버려 산행시간 만이라도 휴대폰에서 자유롭고자 하는 제게는 그 새를 못 참아 온 산이 들썩대도록 고함을 치며 통화를 하는 것이 잘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헬기장을 지나자 얼마 안가서 둥굴레군락지가 나타나 시원스러웠습니다.


  15시20분 칠장산의 3정맥분기점에 다다라 총 20회의 금북정맥 종주를 모두 마쳤습니다.

두 손을 모아 주님께 감사기도를 올린 후 바로 칠장산 정상으로 향했습니다. 해발 491미터의 칠장산에 올라 삼각점을 확인한 후 정상석이 서 있는 헬기장으로 내려와 남쪽으로 뻗어간 금북정맥 산줄기를 조망했습니다. 바로 3정맥 분기점으로 돌아와 십 수분을 쉬면서 차분하게 금북정맥 종주를 되새겨보았습니다.


  16시15분 칠장사 버스정류장으로 내려와  맥주 한 캔을 사들어 6시간 남짓한 하루산행을 마무리했습니다. 작년12월 한남정맥 종주를 마쳤을 때에는 한 겨울이어서 칠장사를 그냥 스쳐 지나갔는데 이번에는 제대로 둘러보았습니다. 고찰에서 느껴지는 역사의 체취를 이 절에서도 같이 느꼈습니다. 창건과 소실, 그리고 중건의 역정을 밟아온 자그마한 대웅전이 이절의 역사를 말해주는 듯 했습니다.  


  금북정맥 종주길이 결코 편하지 않았습니다.

길도 여러 번 잃어버리고 풀 숲길을 헤쳐 나가느라 힘도 들었습니다. 가도 가도 끝이 나타나지 않는 종주길이 마냥 편하지는 않았지만 고된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미지의 길을 걸어 선을 이어가는 것이 제게는 가슴 벅찬 감동이었습니다. 횟수를 거듭할수록 더해지는 선의 길이가 제 삶의 업적처럼 느껴졌고 또 그 선의 휘어진 자취들이 제 삶의 발자취처럼 보였습니다. 제 삶이 계속되는 한 새로운 정맥 길을 다시 밟아 계속 선을 늘려갈 생각입니다. 그래서 조만간 이 분기점을 다시 찾아와 백두대간의 속리산 천황봉으로 이어지는 한남금북정맥 종주를 시작할 뜻입니다.


  이 길을 먼저 밟은 성봉현님과 진혁진님의 산행기와 개념도 덕분에 무사히 산행을 마칠 수 있었습니다. 고맙습니다. 땡볕 더위에 천안의 태조산을 함께 오르며 격려해 주신 봉봉님 부부 두 분과 요물 황명옥님도 고맙습니다. 그동안 저의 종주를 격려해주신 송백산악회의 산님들과 졸고를 끝까지 읽어주신 “한국의 산하”산님들에도 감사말씀 드립니다. 그리고 홀로 산길을 걷고 있는 저와 묵언의 대화를 함께 나눈 나무, 바람, 버섯, 야생화, 바위, 산짐승, 산새, 구름과 햇살 등의 금북정맥 가족들 모두에도 고마운 뜻을 전합니다. 

 

 

                                                             <산행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