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II.백두대간·정맥·기맥/호남정맥 종주기

호남정맥 종주기 1 (외망-망덕산-탄치재)

시인마뇽 2007. 5. 6. 08:25

                                         호남정맥 종주기 1


                 *정맥구간:외항-망덕산-탄치재

                 *산행일자:2007. 5. 3일

                 *소재지  :전남 광양

                 *산높이  :망덕산196미터/천왕산228미터/국사봉445미터

                 *산행코스:외망-망덕산-천왕산-배암재-국사봉-탄치재

                 *산행시간:9시13분-17시30분(8시간17분)

                 *동행    :나홀로

 

 

  한반도 남단의 최고의 명산들인 지리산과 덕유산을 오른 것만으로 호남의 산들이 어떠하다고 쉽게 말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정작 내장산, 무등산, 조계산과 백운산 등 호남의 명산들을 굴비 엮듯이 한 줄로 꿰차서 호남 땅을 남으로 또 동으로 관통하는 산줄기가 따로 있습니다. 이름 해서 호남정맥이라 하는데, 백두대간의 영취산에서 북서쪽으로 뻗어올라가는 금남호남정맥으로부터 전주/진안을 경계 짓는 모래재 바로 위의 3정맥분기점인 565봉에서 바통을 이어받아 이 산 저산을 엮어가며 섬진강을 따라 남쪽으로 내달리다가 전남장흥의 사자산에서 방향을 동쪽으로 확 바꾸어 마지막으로 망덕산을 일군 후 섬진강이 끝나는 외망포구로 내려서는 장장 430Km의 거대한 산줄기가 따로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 4월2일 3정맥분기점인 565봉에서 금남정맥 종주를 마치고 딱 한달을 쉬었습니다.

집에서 가까운 한강기맥을 종주할까, 좀 멀더라도 호남정맥에 발을 들여 6번째 정맥의 종주 길에 나설까, 이도 저도 아니면 한북정맥에서 가지 친 경기도의 지맥 길을 밟아볼까 요리조리 재는 동안 그 새 한달이 흘렀습니다. 나머지 4정맥을 마저 밟아 남한 땅 9정맥을 모두 종주하겠다는 욕심에 더하여 남도예술을 빚어낸 호남의 산수와 이에 서린 선조들의 체취를 직접 보고 느끼고 싶어서 호남정맥을 종주하기로 매듭짓고 5월2일 밤 11시15분에 수원역을 지나는 전라선 열차에 몸을 실었습니다. 호남정맥은 이미 종주를 마친 5개 정맥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들머리가 멀어 왔다 갔다 하는 데 드는 교통비와 시간을 절약하고자 가까운 찜질 방에서 하루를 묵으며 이틀 연속 산행을 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산행계획을 짰습니다. 이틀 밤이나 집을 비우는 원거리산행이어서 자연 짐도 늘고 긴장됐습니다만, 또 다시 새로운 산줄기에 발을 들인다는 설렘으로 밤을 달리는 열차에서 도저히 잠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조선일보사에서 발행한 “실전 호남정맥/낙동정맥 종주산행”에 실린 산행기와 지도, 그리고 이 책보다 훨씬 상세하고 생생한 정보를 담고 있는 성봉현 님의 산행기로 종주산행에 필요한 정보는 충분하다는 판단에서, 밤새도록 야간열차를 타고 가 이른 아침에 산행을 시작해 이틀 연속 8-9시간을 걸을 수 있는 체력을 확보하는 것이 완주의 관건이라 생각되어 그동안 주 2회를 산행하며 나름대로 몸 관리를 해왔습니다. 그래서인지 새벽 3시40분에 순천역에서 하차하여 날이 새기를 기다리는 동안에도 피곤한 줄 전혀 몰랐습니다. 혼자서 부천 집을 나서 조계산을 오를 계획이라며 선암사 행 첫 버스를 기다리시는 올해 70세의 할아버지 한 분을 뵈었는데 10년 후의 저를 미리 보는 것 같아 저도 모르게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아침9시13분 섬진강의 하구인 외망포구에서 호남정맥 종주를 시작했습니다.

아침6시10분에 순천을 출발한다는 망덕행 버스는 “종주산행”책자의 내용과는 달리 노선이 폐쇄되어 7시30분에 순천시외버스터미널을 출발하는 시내버스를 타고 광양으로 옮긴 다음 8시17분에 광양터미널을 출발하는 망덕행 시내버스에 올랐습니다. 성봉현 님의 산행기대로 밤9시30분에 용산을 출발하는 경전선 열차를 타고 광양으로 가서 아침6시10분에 출발하는 망덕행 버스를 타는 것이 정석인 것을 기차역에서 맥없이 기다리는 시간을 줄이고자 전라선을 탄 것이 실책이었는데 발간된 지 오래된 책자에 실린 내용만을 믿고 더 이상 점검하지 않은 게으름이 잘못이었음을 첫 구간 산행에서 깨달은 것이 그나마 다행이다 싶었습니다. 호남정맥의 첫 들머리는 망덕산 산자락에 자리한 자그마한 사찰 덕선사 바로 아래 있었습니다. 번듯한 건물로는 대웅전이 유일한 덕선사를 지나서 풀 숲길을 치고 올라가 오른 쪽에서 올라오는 제대로 된 산길을 만났습니다.  왼쪽으로 꺾어 오르다가 만난 능선 길에서 오른 쪽으로 다시 꺾어 얼마고 걸어올라 팔각정에 다다랐고 잠시 숨을 고르며 섬진강을 조망한 후 묘지 옆에 삼각점이 박혀 있는 해발 196미터의 망덕산 정상에 올라섰습니다.


  10시32분 2번 국도를 건넜습니다.

망덕산에서 2번 국도로 내려서서 길 건너 194봉에 오르기까지가 생각지도 않게 힘들었습니다. 급경사 길을 내려서기도 조심스러웠지만 중간에 길이 사라져 한참을 헤매다가 왼쪽으로 꺾어 2번 국도로 내려서기가 쉽지 않은데다 채석장에 인접한 왕복4차선 길의 중앙분리대를 무단으로 넘어 횡단하는 것도 신경이 쓰였습니다. 차도를 건너 또 얼마간을 청가시에 찔려가며 194봉의 암봉에 올라선 다음 북쪽으로 뻗은 정맥 길을 따라 천왕산으로 향했습니다. 마치 섬진강이 망덕산을 에돌아 북으로 흐르는 것이 아닌가하는 착각을 일으킬 정도로 강폭이 꽤 넓은 물줄기가 서쪽으로 보였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수어천 하류였습니다.


11시48분 해발228미터의 천왕산을 올랐습니다.

194봉에서 천왕산에 이르기까지 37분간은 능선 길을 오르내리기가 힘들지 않아 모처럼 편안한 시간이었습니다. 암봉의 정상이 더 할 수없이 훌륭한 전망지여서 남쪽의 광양만과 포스코는 물론 북쪽으로 뻗어나가는 수어천 물줄기도 한눈에 잡혔습니다. 민들레꽃이 집단으로 피어있는 밤나무 밭을 지나 도로로 내려서는 동안 밭에서 일하는 한 부부의 곁을 등산복 차림으로 지나기가 조금은 민망했습니다. 오른 쪽의 지하도로 남해고속도로를 건너 대나무 숲 오른 쪽 옆길을 지나 다시 산길로 들어섰습니다. 밤나무 밭의 커다란 바위에서 노랑꽃들에 취해 오른 쪽으로 꺾어 한참을 가다가 느낌이 이상해 방향을 체크했더니 지도에 나와 있는 북향길이 아니고 그 반대방향으로 가고 있어 다시 방향을 잡아 되돌아오는 데 5-6분이 걸렸습니다. 나지막한 구릉에 이름모를 노란 꽃들이 만개해 신록의 푸르름과 잘 어울러 보였으며 양 옆으로 밭떼기와 묘지가 들어선 구릉 길에는 햇빛을 갈릴만한 나무들이 그리 많지 않았기에 장송들이 가득히 들어선 짧은 길을 지나기가 아쉬웠습니다.


  12시53분 시멘트도로가 지나는 삼거리 고개건너 그늘진 곳에서 짐을 풀었습니다.

전날 밤 집 근처 산본에서 사온 김밥이라 날이 더워 쉬었을까 걱정을 했는데 다행히도 말짱해 포도를 후식으로 곁들이며 맛있게 점심을 들었습니다. 점심을 들면서 20분을 쉰 후 맞은편에 돌을 캐낸 채석장의 절개지가 흉물스럽게 보이는 삼거리안부를 떠나 정맥종주를 이어갔습니다. 여전히 낮은 구릉지대여서 길 아래 밭과 묘지가 계속해 눈에 띄었고 더러더러 소나무밭도 지났습니다. 해발117미터의 잼비산을 지나 2번국도가 지나는 배암재를 13시40분에 건넜습니다.


  14시 정각 해발167미터의 입암에 오르자 동그란 동판의 소삼각점이 보였습니다.

높다란 송전탑이 서있는 시멘트도로의 상도재 고개 마루에 내려서 10분을 쉰 후 시멘트 길을 따라 오르다가 이내 흙길로 들어섰습니다.  가팔라진 능선 길을 따라 올라 송전탑을 지난 후부터는 더 이상 밭이 보이지 않았고 얼마 후 만난 삼거리에서 왼쪽 길로 들어서 된비알 길을 올라 돌무더기가 있는 구릉 같은 270봉(?)에 다다랐습니다. 270봉을 지나자 아직도 지지 않은 꽃송이가 한 두 개만 남아 있는 낮은 키의 철쭉가지가 얼굴을 때렸고 청가시가 길을 막아 개활지 상단을 지나고 있음을 이내 알아차렸습니다.


  16시3분 해발445미터의 국사봉에 올랐습니다.         

270봉에서 국사봉가는 길은 멀었고 청가시의 극성도 심해 호남정맥 종주길이 백두대간 길보다 얼마나 더 까탈스러운 가를 맛보기로 보여주는 듯 했습니다. 고도가 높아지자 늦깎이 철쭉들이 화사하게 활짝 피어 동산 길이 훤했습니다. 입암 출발 시간 반이 지나 다다른 능선 길에서 소나무가 햇빛을 가리는 큰 바위에 걸터앉아 11분을 쉬는 동안 비를 몰아 올 듯한 시원한 바람을 맞아 땀을 식혔습니다. 7-8분을 더 걸어 개활지 상단 길과 함께 잡목 길도 끝나는 봉우리에 다다라 잠시 안부로 내려섰다가 가파른 길을 따라 올라 국사봉에 올라서자 삼각점과 돌무더기가 쌓인 성터가 저를 반겼습니다. 큰 바위에서 쉰지가 얼마 되지 않아 옛 성터만 카메라에 옮겨 담고 바로 탄치재로 향했습니다. 반시간을 넘게 걸어 다다른 능선에서 내려서면 바로 탄치재에 닿을 것 같아 너무 빠르다는 생각이 들었고 혹시 길을 잘 못 든 것이 아닌가하고 의심이 가서 몇 번이고 내려갔다 다시 올라서기를 반복하다가 녹이 잔뜩 슬은 철제의 커다란 사각 통 옆에서 쉬면서 먼저 오른 분의 산행기를 꺼내 보았습니다. 길은 맞았고 이 길이 바로 286봉 능선 길이었는데 한번 의심이 가면 쉽게 혼란에 빠지기에 이런 때는 가던 길을 멈추고 쉬면서 생각을 끊는 것이 중요합니다.


  17시30분 해발169미터의 탄치재에 내려서 8시간 남짓한 종주산행을 마쳤습니다.

286봉에서 급하게 내려가 왼쪽 아래로 밤나무 밭이 들어선 능선 길에 다다르자 249봉이 저만치에 우뚝 솟아 있어 그 너머 탄치재가 가깝지 않음을 직감했습니다. 249봉이라면 그리 높은 봉우리가 아닌데도 오르기가 힘든 것은 이미 힘을 다 소진한 후 올라서야 하는 마지막 봉우리라는 생각 때문 일 것입니다. 송전탑을 지나 헬기장이 들어선 249봉에 올라서자 바로 아래 탄치재를 지나는 2번 국도가 보여 호남정맥의 첫 구간도 무사히 해낸다 싶었습니다.  헬기장을 가로질러 내려선 임도를 따라 잠시 걷다가 오른 쪽 길로 들어서 성원레미콘 공장 안내석이 서 있는 탄치재에 다다랐습니다. 왕복 2차선의 2번국도가 지나는 탄치재에서 40분을 기다려 하동 가는 버스에 올랐습니다. 하동에는 찜질 방이 없음을 버스기사 분에게서 확인하고 일단 내려서 하동 땅을 밟아 본 후 다시 이 버스를 타고 반대 방향의 광양으로 돌아갔습니다. 


  이번 종주산행으로 저의 산행속도가 “실전 호남정맥/낙동정맥 종주”책에 실린 시간과 거의 100% 일치함을 확인해 앞으로 산행계획을 짜기가 한결 쉬워졌습니다. 다만 발간된 지 몇 년이 지난 책이라서 들머리를 들고 날머리를 나는데 필요한 교통정보는 그새 변동이 있을 수 있기에 사전 점검이 꼭 필요하다는 것도 경험을 통해 익혔습니다. 산길로 들어선 후 필요한 구체적인 산행정보는 성봉현님의 산행기에 세세하게 적혀있어 호남정맥 종주도 무난하게 해낼 수 있으리라는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광양의 찜질방에다 짐을 풀기 전에 생맥주 집을 먼저 들러 500cc를 시켜들며 저 혼자서 호남정맥 첫 구간 종주를 자축했습니다. 아직도 가보지 못한 길에 발을 들인다는 설렘 속에 종주를 시작해 아무 탈 없이 첫 구간을 마치고 마시는 맥주는 단순한 알콜 음료가 아니고 생명수임을 깨닫는 시간이 제게는 더 할 수 없이 행복한 시간이라고 기록해둡니다.  

 

 

                                                          <산행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