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릉도
*탐방기간:2006년 9월14일-17일(3박4일)
*탐방지 :경북 울릉도/강원 정동진
*탐방인원:1980년대 쌍용제지 직장동료 등 총 7명
(손병운 대장, 서상원/신영희 부부, 이성현/정미경 부부, 하철수님 및 우명길)
*탐방일정:
-9월14일: 11시30분 강남터미널 출발
-9월15일: 3시 동해시 도착
9시-13시 묵호항 -울릉도 도동
14시20분-18시30분 울릉도 해안 육로관광
대아레조트에서 일박
-9월16일: 7시20분-12시30분 봉래폭포, 독도전망대, 저동항 관광 /성인봉 산행
13시-15시 울릉도-묵호
정동진으로 옮겨 모텔에서 일박
-9시17일 8시50분 정동진 출발
9시45분 강릉터미널 출발
12시20분 강남터미널 도착
중식후 해산
우리나라 최동단의 섬 독도를 87키로 앞에 둔 울릉도로 가는 길은 멀고도 험했습니다.
신라 말 청해진을 거점으로 해상왕국을 세운 거상 장보고를 “해신”으로 불러 온 이 나라 사람들에 바다의 신 포세이돈이 단단히 노했음이 틀림없습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1980년대에 쌍용제지(주)에서 같이 일했던 동료 및 부인 등 총 7명으로 나들이 팀을 만들어 난생 처음으로 울릉도를 다녀오겠다고 집을 나선 저희 일행들의 소박한 섬 나들이 꿈을 산산이 박살내겠다고 포세이돈 신이 13호 태풍 산산을 하필 이때 태평양에서 이 먼 곳까지 불러올릴 일이 뭐 있겠느냐 싶었습니다. 묵호를 출발한 시플라워 여객선이 높은 파도를 뚫고 항해를 하느라 앞뒤로 흔들리는 피칭이 엄청 심했습니다. 4시간 가까운 긴 항해 끝에 울릉도 도동항에 도착한 승객들은 초죽음이 다 되어 하선했는데 이들이 처음 접한 소식은 태풍 산산의 북상으로 다음 날 출항하는 배를 못타면 3-4일을 이 섬에서 묶여 있어야 한다는 여행사 안내원의 통보였습니다. 이틀 밤을 묵으면서 독도도 다녀오고 울릉도 곳곳을 제대로 찾아보겠다는 꿈을 접고 하루를 당겨 이 섬을 빠져나가도록 등을 떠민 것이 바로 바다의 신 포세이돈의 심술이었습니다.
*9월15일 금요일: 오전 흐림/오후 흐림
전날 밤 11시 반에 서울의 강남고속터미널에서 동해 행 심야우등버스에 올랐습니다.
1980년대에 쌍용제지에서 같이 일한 인연을 오늘까지 이어 온 저희들 5명이 이 모임을 가진 후 처음으로 동부인하여 원거리 여행길에 나선 것은 적극적이고 유연한 성격으로 어떤 일이든 깔끔하게 매듭짓는 손병운 대장이 도맡아 주선한 덕분이었습니다. 서울출발 3시간 반이 지난 새벽 3시에 동해시에 도착하여 인근 찜질방을 찾아들어가 몇 시간동안 눈을 붙였습니다. 아침식사로 이곳 특별매뉴인 곰치국을 든 후 묵호항으로 옮겨 울릉도로 떠나는 여객선 시플라워호에 승선했습니다.
아침9시 묵호항을 출발하여 섬 하나 보이지 않는 망망대해 한가운데로 나섰습니다.
하늘은 잔뜩 찌푸렸고 태풍의 북상으로 파고가 높은 곳에서는 4미터에 이른다는 기상예보가 발해졌으나 모처럼의 바닷길 여행으로 들떠서인지 어느 누구도 날씨에 아랑곳 하지 않았습니다. 161키로의 거리에 승선료를 44,000원이나 받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비쌌습니다. 해운이 가장 저렴한 교통수단인데 동일거리의 우등고속버스보다 3배 이상 비싼 차비를 물리는 것은 비수기의 손실을 보전하기 위해서일 것입니다. 동해시가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질 즈음해서 승객 몇 분들이 배 멀미로 토하기 시작한 것은 파고가 높아 배가 앞뒤로 심하게 요동쳐서인데 승무원들이 비닐주머니를 나누어주는 것을 빼고는 별 도움을 주지 못해 배 멀미의 고통은 고스란히 승객들의 몫이었습니다. 다행히 좌우로 흔들리는 로우링은 별로 없고 앞뒤로 요동치는 피칭 현상만 나타나서 저는 그런대로 참아냈습니다만 일행 중 반이 넘게 토하기 시작했고 한 명은 유난히도 괴로워해 계획대로 독도를 다녀올 수 있을지 걱정됐습니다. 바다의 신 포세이돈이 조금 심술을 부렸다고 큰 배에서도 이 난리를 치르는데 까마득한 옛날인 신라의 지증왕 13년(512년)에 나무사자를 가득 실은 목선으로 풍랑을 헤치고 군사들을 이끌고 가 우산국 울릉도를 정벌한 이사부 장군이 새삼 존경스러웠습니다. 울릉도가 시야에 들어오고 나서도 반시간 이상을 더 운항해 오후 1시경에 울릉도 도동항에 기착했는데 거칠게 이는 파도를 거스르며 나가느라 다른 때보다 50분이 더 걸렸습니다.
난생 처음으로 울릉도 땅을 밟았습니다.
4시간 가까이 멀미로 시달리다 간신히 울릉도에 첫발을 내디딘 저희들에 여행사 안내원이 태풍의 북상으로 내일 오후 2시 배로 이 섬을 빠져나가야 한다고 알려주었습니다. 이틀 밤을 묵으면서 독도를 다녀오고 울릉도 해안가를 차로 돌고 배로 돈후 해발 985미터의 성인봉을 오르며 알차게 보내고자했으나 25시간 이상 이 섬에 머물 수 없어 독도관광을 포기해야 했기에 바다의 신 포세이돈의 도를 넘는 심술에 짜증이 났습니다. 여행사 직원이 안내하는 한 음식점에 들러 점심을 드는 중 서비스가 하도 엉망이어서 목소리를 높여야 했습니다. 옛날 같지 않고 도시음식점의 친절한 서비스에 길들여진 요즈음 관광지 특유의 바가지요금이나 불친절에 많은 사람들이 참지 못하고 분노한다는 사실을 빨리 깨닫고 대처해야 이 섬에서 외국의 관광객을 끌어 모을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14시20분 승합차로 섬 일주 관광길에 나섰습니다.
전국에서 7번째로 큰 섬인 울릉도의 섬 둘레는 56.5키로이나 지금부터 1만 년 전 마지막으로 분출된 용암이 급하게 식느라 해안가가 제주도처럼 완만한 것이 아니고 경사가 급해 아직도 일주 길이 다 나있지 않았습니다. 긴 시간 안내를 맡은 35세의 젊은 남자 기사가 이 섬에서 유일한 대학이 노인대학이라고 익살을 떨어가며 구수하게 길안내를 잘 해주어 점심시간의 불쾌했던 기분이 이내 풀렸습니다. 차도변의 마가자 나무는 빨간 열매와 잎들이 장수무병에 약효가 있음이 알려진 후 무단 채취를 금하고 있는 소중한 유실수이지만, 정작 이 섬을 상징하는 울릉군 군목은 바늘잎 모양의 상록수 후박나무라 합니다.
도동항에서 팔자교를 지나는 고개를 넘어 시계방향으로 해안선을 따라 돌며 남서쪽으로 이동을 했습니다. 사동항을 거쳐 이 섬의 최남단에 위치한 가루등 등대에서 북서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송곳봉 앞 성불사까지 진행하는데 2시간이 걸렸습니다. 이 섬의 명동이라는 도동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신호등이 터널 앞에 설치된 것은 통구미, 남양 그리고 남통터널 등이 모두 외길로 되어있어서였습니다. 길지 않은 차도를 내기위해 산을 뚫기도 하고 산사태방지용으로 만들기도 해 이 길 끝 지점의 섬목도선장까지 모두 8개의 터널이 나 있는 것으로 지도상에 적혀있었습니다. 통구미와 남양의 몽돌해변은 이 섬에 모래가 얼마나 귀한가를 짐작케 했으며 거북바위, 사자암, 곰바위, 악어바위, 상황버섯바위등은 바위의 기기묘묘한 형태를 따서 지은 이름으로 이렇다할 전설이 덧대지지 않아 상상력이 그리 풍부하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곰바위 오른 쪽으로 난 수층교 길로 올라가 수층터널, 산막터널 그리고 태하터널을 차례로 지나 현포령을 넘었습니다. 바닷가 현포리에 도착해 아담한 규모의 해양박물관을 들러 다양한 조개류는 물론 박제된 물개와 표범 등을 관찰했습니다. 용천수로 발전을 한다는 작다란 수력발전소를 지나자 바다 속에 자리 잡은 코끼리바위가 눈을 끌었습니다.
16시20분 구멍이 네 개 뚫린 송곳봉 바로 아래에 위치한 성불사에 도착하기까지 2시간이 지났습니다. 바다를 내려다보고 있는 희멀건 좌불석상과 곧추서있는 송곳봉을 배경으로 일행들에 기념사진을 찍어 준 후 막힘없이 시원스레 펼쳐진 잔잔한 앞 바다를 여유롭게 내려다보자 며칠 후에 저 바다로 앙칼진 태풍이 지날 것이라고는 전혀 상상되지 않았습니다. 옛날부터 부자들이 살아왔다는 천부동을 지나 구불구불한 아리랑고개를 넘어서자 산으로 빙 둘러싸인 드넓은 나리분지가 눈앞에 펼쳐졌습니다. 여기가 바로 화산활동으로 이 섬이 생성될 때에 용암이 분출된 해발 400미터대의 분화구였으며 넓이가 60만평이나 되는 울릉도 유일의 평지지대여서 가파르게 바위들이 곧추 서있는 해안가에서는 느껴보지 못한 안온함이 저희 일행을 편안하게 해주었습니다.
18시30분 대아리조트에 도착해 관광일정을 마치고 배정된 방을 찾아 짐을 풀었습니다.
도동으로 나가 저녁 식사를 하는 중에도 오전의 배 멀미로 되게 시달린 일행 한명이 아직도 몸이 제대로 회복이 되지 않아 몹시 힘들어했습니다.
*9월16일 토요일: 오전 비/오후 흐림
사동항이 내려다보이는 대아리조트 주변을 한 바퀴 돌면서 아직은 고요하지만 전운이 감도는 아침 바다를 카메라에 옮겨 담은 후 한식 부페로 아침을 들었습니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저 혼자 성인봉에 오르고 나머지 6명은 여행사의 봉래폭포 등 몇 곳을 더 관광하기로 스케쥴을 확정한 후 아침 7시경에 일단은 헤어졌습니다.
(이하 후첨 산행기 참조)
12시40분이 다되어 도동선착장에서 다시 만났습니다.
일행들이 봉래폭포와 독도전망대 및 저동항을 들러 즐거운 시간을 가진데다 만약에 저를 따라 모두 성인봉에 올랐다면 한 시간 당겨진 배의 출항시간에 대기가 힘들었을 것 같아 따로 스케쥴을 잡은 것이 천만다행이다 싶었습니다. 13시10분 경 도동항을 출발해 24시간을 체류했던 울릉도에 작별인사를 고했습니다. 올 때와는 달리 로우링과 피칭을 거의 느끼지 못해 출발부터 바닥에 누운 일행도 일어나 제자리로 돌아갔습니다. 파도는 전날과 비슷했지만 파도를 타고 순방향으로 항해하는 것이어서 흔들림이 거의 없었습니다. 운항시간은 울릉도로 갈 때와 비슷하게 걸렸지만 토해내는 승객들이 한 사람도 없어 배안에 생기가 돌았습니다.
쉬지 않고 틀어대는 테레비존 소리에 읽던 책을 덮어버리고 파도가 넘실대는 창밖의 바다로 눈을 돌렸습니다. 넓고 깊기로 말한다면 어머니 가슴을 빼 놓고는 단연 바다가 으뜸입니다. 그러고 보니 바다는 어머니를 많이 닮은 듯 합니다. 넓은 가슴으로 자식들을 감싸주는 어머니처럼 바다는 육지로부터 흘러들어오는 모든 물들을 싫다는 내색 한번하지 않고 말없이 받아들입니다. 이 땅의 어머니들이 자식들을 제대로 길러내고자 어떤 아픔도 드러내지 않고 가슴속 깊이 꼭꼭 숨겨놓듯이 바다 또한 사람들이 아무리 못살게 굴어도 웬만해서는 분노하지 않고 그 깊은 속으로 삭이고 또 삭입니다. 그러나 이 바다도 분노할 때가 있습니다. 더 이상 참았다가는 자식들에 해가 된다고 판단된다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돌변하여 무섭게 덤벼드는 우리 어머니처럼 바다도 사람들이 더 이상 바다와의 공존을 거부하고 혼자 살겠다고 바다를 죽음으로 몰고 갈 때 이 바다의 저항은 치열합니다. 빙하를 녹여서 해안가 도시를 물속에 잠기도록 만드는가 하면, 적조현상을 일으키어 사람들이 싼 값으로 고급단백질을 취할 수 없도록 훼방을 놓기도 합니다. 스스로를 증발시켜 얻은 수증기를 바람의 도움을 받아 육지로 상륙시켜 물바다를 만드는 태풍은 분노한 바다가 사람들을 공격하는 가장 유효한 수단일 것입니다. 이 나라 아버지들이 우리의 어머니에 너무 심한 한을 남겨주어서는 안되듯이 사람들도 더 이상 바다를 괴롭혀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을 굳힌 것은 바다의 신 포세이돈의 작은 심술도 감당하기 힘들다는 것을 배우고 익혔기 때문입니다.
17시10분 경 묵호항으로 되돌아왔습니다.
택시 2대로 최고의 일출전망지로 알려진 정동진으로 옮겼습니다. 모텔에 짐을 푼 후 모래시계공원을 거닐었습니다. “모래시계” 드라마 덕을 단단히 본 정동진은 동해안의 다른 해수욕장보다 지나치게 상업화되어 드라마의 애틋한 분위기나 조용하게 편히 쉬어 갈만한 그런 분위기를 느낄 수는 없었습니다. 대신에 젊은이들이 많이 모여든 해변가는 역동감이 감돌았습니다. 생선회로 저녁을 포식하고 노래방에서 목청을 돋운 다음 다시 해변가를 찾았습니다. 수평선 가까이에 포진한 오징어 배 등불 빛이 캄캄한 밤하늘에 숨어버린 별빛을 대신했습니다. 폭죽의 폭명도 없는 다소곳한 오징어 배 불빛이 다정다감하게 다가왔습니다.
*9월17일 일요일: 오전 흐림/오후 흐림
해돋이를 가장 가까이서 볼 수 있는 정동진에서 해오름을 지켜보지 못해 아쉬웠습니다. 해넘이에 뒤이은 땅거미와 해돋이에 앞선 먼동을 제대로 볼 수 없었던 하늘에서 일출만은 제대로 볼 수 있겠다고 기대하지 않았지만 아침 일찍이 혹시나 하면서 해변 가를 찾은 사람들이 꽤 많았습니다. 손대장과 강릉행 기차시간을 확인하고자 해변 가 모래사장을 10분여 걸어 정동진역으로 나갔습니다. “모래시계”드라마 덕에 열연했던 여배우의 이름을 얻은 자그마한 소나무는 탈 없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데 그녀는 벌써 별리의 고통을 안으로 새기며 또 다른 드라마에 열중하는 것을 보고 미국의 시인 조이스 킬머의 시“나무들”의 “시는 나와 같은 바보가 짓지만, 나무를 만드는 건 하느님 뿐”이라는 구절이 참이다 싶었습니다. 아침7시차는 너무 이르고 10시차는 너무 늦어 기차여행을 포기하고 8시50분에 정동진을 출발하는 강릉행 좌석버스에 몸을 실었습니다. 강릉고속터미널에서 3시간 가까이 달려 강남터미널에 도착한 시각은 12시가 조금 넘어서였습니다. 터미널식당에 들러 점심을 들면서 해단식을 가지며 손대장의 노고에 감사했습니다.
청마 유치환 님의 시 “울릉도”를 올리며 3박4일간의 울릉도 여행기를 맺습니다.
울릉도
동쪽 먼 심해선 밖의
한 점 섬 울릉도 갈거나.
금수로 굽이쳐 내리던
장백의 멧부리 방울 뛰어,
애달픈 국토의 막내
너의 호젓한 모습이 되었으리니,
창망한 물굽이에
금시에 지워질 듯 근심스레 떠있기에
동해 쪽빛 바람에
항시 사념의 머리 곱게 씻기우고
지나 새나 뭍으로 뭍으로만
향하는 그리운 마음에
쉴 새 없이 출렁이는 풍랑 따라
밀리어 오는 듯도 하건만
멀리 조국의 사직의
어지러운 소식 들려올 적마다,
어린 마음 미칠 수 없음이
아아, 이렇게도 간절함이여!
동쪽 먼 심해선 밖의
한 점 섬 울릉도로 갈거나.
울릉도 A
*여행일자:2006. 9. 16일
*여행지 :정동진/북평항
*동행 :쌍용제지 동료들 총7명
(하철수, 손병운, 서상원부부, 이성현부부, 우명길)
울릉도 B
*여행지 :울릉도
*동행 :쌍용제지 동료 총7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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