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명소 탐방기1
*탐방일자:2006. 11. 19일
*탐방지 :제주시 소재 마라도
*동행 :이규성 동문
우리나라 헌법이 자랑스러운 것은 대한민국의 영토를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정했다는 점입니다. 실효적지배가 미치지 않는다고 언제고 헌법을 개정할 때 북한 땅을 제외할 것을 신중하게 검토해야 한다는 통일원장관이었던 모 정치인의 주장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은 그리했다가는 백두대간의 60% 가까이가 우리 영토에서 제외되기 때문입니다. 지난 4월 지리산 천왕봉에서 시작한 대간 길 종주산행을 백두산의 장군봉까지 이어가지 못하고 강원도의 진부령에서 멈춘 것만으로도 땅을 치고 통탄할 일인데, 아예 다른 나라 땅으로 만들어 놓고 꿈도 꾸지 말라는 것은 이 나라 등뼈 한 가운데를 분질러 놓고 말겠다는 심보가 아니고서야 어찌 그런 발상을 할 수 있을까 도저히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반 반도가 아닌 한반도로 규정한 현행 헌법에 또 고마워하는 점은 우리의 영토를 그 부속도서로 넓혔다는 것입니다. 35년간 일본의 지배를 받아온 우리나라도 국력만 키운다면 거꾸로 일본 열도를 한반도의 부속도서로 삼아볼 수 도 있지 않겠느냐는 야심 찬 생각을 해 볼 수 있기에 말입니다. 부속도서 중 가장 큰 섬인 제주도가 우리의 영토임에 분명하기에, 그제 우리나라 최남단의 마라도를 탐방할 수 있었고, 어제 남한 땅 최고봉인 한라산에 올라 북녘을 바라보며 한반도 최고봉인 백두산 등정을 꿈꿀 수 있었습니다.
제주도가 우리나라 역사에 처음으로 등장하는 것은 삼국시대입니다.
우리의 역사서가 아니어서 믿음이 덜 가기는 하지만 일본서기에 따르면 3세기 중엽 왜왕이 탐라국으로 보이는 침미다례를 정벌하여 백제의 근초고왕에 주었고, 백제에서는 이에 보답하고자 지금도 일본에서 더 할 수 없이 귀중한 보배로 여기는 칠지도를 왜왕에 보냈다고 합니다. 신라의 이사부가 우산국 울릉도를 정벌하기 250여 년 전의 일로 이 때부터 제주도는 우리의 영토였던 것입니다. 그 후 제주도가 한반도와 애환을 같이 하며 우리 땅으로 남아있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만에 하나 우리 땅에 제주도가 없었다면 이 나라는 먼 바다를 다스리는 지혜를 배우지 못해 아시아대륙의 변두리국가로 쳐져 오늘처럼 찬란한 해양국가로 자리 잡는 것이 절대로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 나라 최남단의 마라도를 찾아 일망무제의 태평양을 바라보며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를 우리의 영토로 삼은 대한민국 헌법에 감사하고 또 감사했습니다.
고교동창 이 규성 교수의 도움으로 3년 만에 나선 이틀 간의 제주도 나들이가 한껏 편했습니다. 카드사에서 한 장 받은 무료 왕복 티켓을 제게 할애해주었고 콘도까지 주선한데다 제주도에 살고 있는 그의 대학제자들이 여러모로 도움을 주어 모처럼 편안하게 몇 곳을 둘러보고 돌아왔습니다.
제주시내 한 성당을 찾아 주일미사를 올리는 것으로 첫 나들이를 시작했습니다.
오전 11시에 시작되는 미사에 참여해 주님의 은총에 감사했습니다. 시외버스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고 한 시간 남짓 서쪽으로 이동하여 대정읍의 모슬포에 도착했습니다. 제주도 토속음식인 칼치국으로 점심을 든 후 다시 택시로 송악산 승선장으로 가 오후 2시 반에 출발하는 마라도행 유람선에 오르자 망망대해의 태평양이 한 눈에 들어왔습니다. 하늘은 잔뜩 찌푸렸고 파도가 꽤 높게 일어 크지 않은 유람선이 앞뒤와 좌우로 심하게 흔들렸습니다. 가파도를 들르지 않고 직행하는 유람선이 마라도에 가까이 접근하자 섬모양이 마치 길쭉한 함대 같이 보였습니다.
오후 3시10분 마라도에 상륙했습니다.
2003년 백두산의 천지연을 에워싸고 있는 중국령의 서파능선을 종주하며 느꼈던 감흥이 마라도에서 되살아 난 것은 한 끄트머리에 서서 남은 한 끝을 애절하게 생각하며 그리워하는 것이 똑 같아서였습니다. 중국 땅 백운봉에서 백두산 최고봉인 장군봉을 바라보며 저 봉우리에서 시작되는 백두대간을 따라 지리산의 천왕봉까지 걸어가고 마지막으로 한라산에 오르는 꿈의 산행을 그려보았듯이 이번에는 우리나라 최남단의 마라도 섬을 걸으며 백두산 등정을 머릿속에 그렸습니다.
1시간 20분여 부지런히 걸어 마라도를 시계반대 방향으로 한바퀴 돌았습니다.
오토바이를 개조한 관광차들이 대기하고 있는 섬 초입에서 차도를 따라 얼마고 걸어 “자장면~시키신 분” 음식점 바로 뒤의 가파초교 마라분교에 도착해 아담한 학교정경을 카메라에 담아왔습니다. 1961년에 고향 땅 파주에서 조그마한 분교를 졸업한 저로서는 학생수가 적다는 이유로 폐교의 위기에 몰린 시골 분교들을 지켜보기가 안타까웠는데 이 학교는 최남단의 상징성 때문에 폐교는 되지 않을 것 같아 안심됐습니다. 기암절벽의 시꺼먼 바위 끝에서 낚시에 여념이 없는 낚시꾼들을 보자 그들에는 이 섬 만한 천국이 어디 있을까 싶었습니다.
서구풍의 산뜻한 쵸코렛 박물관을 지나 대한민국 최남단비가 세워진 땅 끝에 서자 일망무제의 태평양이 어서 오라고 손짓하는 듯 했습니다. 3년 전 백두산에 올랐을 때 눈앞에 펼쳐지는 광활한 장백임해를 보고 만주벌이 우리 땅이어야 했었는데 하며 아쉬워했는데 이번에는 끝이 없는 저 바다가 우리의 주 활동무대라고 생각하자 가슴이 벅차올랐습니다. 최남단비를 배경으로 몇 장의 기념사진을 찍고 나자 잠시 뿌렸던 굵은 빗발이 약해져 걷기를 계속했습니다. 천신이 지신을 만나기 위해 내려오는 길목으로 전해지는 장군바위를 카메라에 담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십 수평은 됨직한 이 섬 언저리에 자생하는 선인장 군락지를 만나 이 또한 카메라에 옮겨 실었습니다.
이 작은 섬에 교회와 불사 그리고 성당이 모두 보였습니다.
기원정사 입구에 스님 한분이 앉아 계셨는데, 천주교기도소는 문이 잠겨 전시용으로 지었다는 오해받을까 걱정됐습니다. 1883년에 발을 들인 주민들과 더불어 등대도 이 섬의 주인이라는 생각이 든 것은 1915년에 이 섬에 설치된 후 오랜 세월 빛으로 바다 길을 밝혀 왔을 뿐만 아니라 천신이 이 섬에 강림하는 길목인 장군바위도 비추어 왔을 것 같아서였습니다. 현세의 종교가 모두 모여 여기 주민들에 가르침을 준다 해도 아직 천신의 역할이 끝나지 않은 것은 외형적인 성장을 �는 현세의 종교에서 소외되는 사람들이 줄지 않아서입니다. 전시 중인 전 세계 꼬마등대와 더불어 저의 눈을 끈 것은 태양열을 모으는 등대의 집열판이었습니다. 고유가의 석유를 대체할 수 있는 태양에너지를 얻는데 가장 큰 문제는 각종 공해로 집열판이 쉽게 더러워져 효율이 떨어지는 것이라 하는데 청정지역인 마라도는 그런 걱정을 아니 해도 되는 최적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비가 그치고 구름이 가시자 한라산 정상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정상을 정점으로 동서로 내뻗은 능선이 깔끔하면서도 부드럽게 보여 카메라에 옮겨 담았습니다. 그럴 듯한 나무 한 그루 없는 이 섬에서 육지의 상록수 숲을 대신하는 것이 조금 전에 지난 초록색의 선인장 밭이라면 만추의 낙엽을 연상시키는 누런 억새밭은 벌써 가을이 끝나 감을 알려주었습니다. 자라덕 선착장으로 돌아와 시꺼먼 바위의 가파른 절벽과 절벽 아래 동굴을 눈여겨 본 후 저녁 4시 반에 송악산으로 떠나는 유람선에 몸을 실었습니다.
제주 시내에서 이교수의 제자인 김 두범 님이 저녁으로 낸 뚝배기국이 곁들인 고등어구이와 더불어 별미였습니다. 특히 오분작 맛이 배어 난 국물이 컬컬하고도 시원해 바닥까지 그릇을 모두 비웠습니다. 식사 후 그 분 차를 타고 한화리조트로 옮겨 마라도 탐방을 마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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