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북정맥 종주기 2
*정맥구간:도황3거리-매봉산-유득재-차도고개
*산행일자:2006. 3. 11일
*소재지 :충남 태안
*산높이 :매봉산 102미터
*산행코스:도황삼거리-115봉-근흥중학교-후동고개-매봉산
-장재-유득재-차도고개
*산행시간:10시 20분-17시20분(7시간)
*동행 :나홀로
어제는 한 반도가 서해안에서 새끼 친 꼬마반도 태안반도를 찾아 금북정맥을 종주했습니다.
충남 서산에서 서쪽으로 빠져나와 북에서 남으로 곧게 뻗은 태안반도와 신진도, 가의도, 안면도 등 수 십 개의 섬들을 어우르는 태안군에는 리아시스식 해안을 따라 천리포 만리포 등 30개소의 해수욕장이 있고 유난히도 반도의 폭이 좁아 좌 우 양쪽방향으로 바다가 보이는 그래서 일출과 일몰을 한 곳에서 모두 지켜볼 수 있는 구릉과 산봉우리가 꽤 여러 곳 있어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다 합니다. 지난 달 전국에서 처음으로 안내원을 태운 군내버스를 선 보인 것도 그 만큼 외지에서 관광객이 많이 찾아와서일 것입니다.
결혼 그 이듬해인 1978년 1월 겨울방학 때 집사람과 같이 만리포를 찾아 하루 밤을 묵었습니다. 한 여름 풍요로웠던 해수욕장이 맞는 겨울은 철 지난 옷을 입은 것처럼 어색하리라 생각했던 저희 두 사람이 만리포를 찾은 것은 겨울바다의 썰렁함이 어느 정도일까 궁금했고 그 썰렁함 만큼이나 텅 빈 겨울바다를 저희들만의 따뜻한 추억으로 꽉 채우고 싶어서였습니다. 과연 썰렁했습니다. 썰렁한 바닷가를 걸으며 우리는 이렇게 썰렁하게 살지 말고 따뜻하게 살아가자고 다짐했습니다. 따뜻하게 사는 길은 서로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열심히 사랑했습니다. 혹한의 겨울에 강원도의 백두대간을 밟을 수 있는 것도 그 때부터 따뜻하게 사는 길을 배우고 익힌 덕분입니다.
이번에는 강남터미널에서 태안 가는 고속버스를 탔습니다.
집 떠난 지 3시간 만에 태안 읍에 도착해 지난 번 천안으로 돌아 갈 때보다 2시간 이상을 벌었습니다. 태안에서 9시50분에 신진도 행 버스를 타자 지난 번 만났던 그 안내원이 저를 반겼습니다. 연포를 거쳐 도황3거리에서 하차해 일단 모래기재를 목적지로 정하고 산행을 시작했습니다.
아침 10시20분 도황삼거리에서 우두커니 서있는 장승을 뒤로하고 임도로 들어섰습니다. 곳곳에 세워진 산책로 표지판의 화살표 방향과는 역 방향으로 진행하며 봉우리에 올라서자 좌우 양옆으로 바다가 내려다보여 신기했습니다. 금북정맥이 폭이 좁은 태안반도의 한 가운데를 지나기에 볼 수 있는 진풍경으로 동쪽의 바다에서 떠오른 아침 해가 낮 시간 내내 겨우 산 능선 하나를 넘어 서쪽 바다로 진다고 생각하니 이곳 태안반도에서 가장 느긋하게 움직이는 것은 태양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나일론 줄이 늘여진 산길을 따라 오른 110봉을 지나 십 수분 후 124봉에 올랐다가 안부로 내려선 다음 삼각점이 세워진 115봉에 다다르기 까지 50분이 걸렸습니다. 115봉에서 4-5분을 내려서 우측으로 난 길을 따라 내려와 산소에 이르자 소나무에 가려 제대로 볼 수 없었던 동쪽의 바다가 확 눈에 들어와 가슴이 탁 트였습니다. 산소에서 밭을 지나 만난 시멘트포장도로에서 오른 쪽으로 꺾어 3-4분을 걸어 620번 도로와 만나는 용천리의 삼거리에 다다른 시각은 11시 31분이었습니다.
태안반도는 이렇다하게 높은 산이 전혀 없는 전형적인 비산비야의 저산성 구릉지대여서 마루금을 피해 찻길을 내기가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삼거리에서 602번 도로를 따라 용산1리 다목적회관을 거쳐 603번 도로와 만나는 신대삼거리에 닿기까지 17분간 마루금위로 난 차도를 걸으며 이 고장의 이것저것들을 눈여겨보았습니다. 길 양옆의 황토밭에 심은 마늘은 생강과 더불어 이 고장의 주산물이고 태안반도가 온대남부와 온대중부가 만나는 지역이어서 잘 자라고 있는 대나무를 곳곳에서 쉽게 볼 수 있었습니다. 전남의 해제반도도 양파와 마늘의 주산지라는데 반도의 어떤 풍토와 기후조건이 마늘재배에 특별히 적합한 가 궁금했습니다.
11시50분 근흥중학교와 태흥맨션 사이로 난 길을 따라 산속으로 들어섰습니다.
작은 봉우리를 지나 오른쪽으로 난 임도를 따라 조금 내려서 마금리-면사무소 갈림길을 알리는 표지목이 세워진 쉼터에서 처음으로 따끈한 커피를 마시면서 10분가량 쉬었습니다. 열흘 전 1차 종주 시와는 달리 서해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드셌고 눈보라가 날릴 정도로 기온도 떨어져 그 때처럼 목이 타지는 않았으나 긴 시간 배낭이 짓눌러서인지 양 어깨가 아파와 산행시작 1시간 반 만에 짐을 벗고 쉬었습니다. 얼마 후 임도를 따라 걸으며 침목으로 만든 나무계단을 지나 다다른 90봉에서 나무의자가 있는 103봉에 이르는 마루금을 밟는 동안 봄을 시샘하는 마지막 동장군이 동원한 바닷바람과 간헐적으로 흩뿌리는 눈보라의 냉기에 시달렸습니다. 103봉에서 시멘트길이 난 후동고개로 내려섰다 바로 산길로 다시 들어서 얼마 후부터 마루금 양 옆으로 크고 작은 산소들이 줄을 대고 나타나 백두대간 길에 산소가 집중적으로 들어선 지기재-화령재 구간을 다시 걷는 것 같았습니다. 마루금 양방향으로 바다가 있어 어느 쪽으로든 배산임수의 지리여서 능선 길 양 밑으로 산소자리를 잡는 것이 가능하겠다 싶었습니다.
12시44분 창녕성공지묘 앞에서 점심을 들었습니다.
후동고개를 출발하여 산마루의 삼거리에 도착해 왼쪽으로 지근거리에 위치한 해발 89미터의 남산을 들르지 못하고 바로 오른 쪽으로 방향을 틀어 10분간 더 걸어 돌무더기의 산소가 있는 무명봉에 이르렀습니다. 이 봉우리에서 오른 쪽으로 조금 내려선 곳의 이 묘지는 바람이 막히고 햇살이 따사로워 식사를 끝내고 잠시 쉬자 이내 사르르 눈이 감겨왔습니다. 몇 기의 묘지를 더 지나 산 속을 빠져 나오기 얼마 전 68봉에서 북동쪽을 바라다보니 태안 읍의 백화산이 비교적 가깝게 보여 반가웠습니다. 빨간 지붕의 민가 옆으로 난 시멘트 길을 건너 밭을 지나 산속으로 들어서자 스티로폴이 천막으로 덮어 놓은 것 외에도 여기저기 널려져 있어 흉물스러웠습니다. 십분 남짓 산길을 걸어 다시 시멘트길의 밤고개로 내려서자 한 부부가 포도밭에다 지주를 박고 있었고, 이 농부들처럼 모두 일손이 바빠서인지 이른 봄 입맛을 돋우는 냉이들이 밭가에 온전히 남아 있었습니다.
13시45분 해발125미터의 매봉산에 올랐습니다.
밤고개에서 밭을 가로질러 묘지를 지나 산길로 들어섰습니다. 매봉에 오르기 얼마 전 시야가 탁 트인 능선 길에서 뒤돌아보자 오른 쪽으로 드넓은 염전 밭이 한눈에 들어왔습니다. 누군가에 의해 베어져 길을 가로 막은 몇 그루의 소나무들을 피해 옆으로 지나며 오른 매봉산은 표지석도 세워져 있지 않은 그저 그런 또 하나의 봉우리였습니다. 매봉산에서 내려서 시멘트 도로를 건넌 다음 초지로 조성된 축사 옆의 풀밭을 지나 아스팔트 포장도로에 이르기까지 약 10분이 걸렸고 여기서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 아스팔트 차도를 따라 20분을 걷다가 다시 산길로 들어섰습니다. 오른 쪽의 저수지 가에 갈색 지붕의 그림 같은 건물 몇 채가 들어서 있는 마금1리 버스정류장에서 수분을 더 걸어 다다른 마을회관에서 잠시 왼쪽으로 길을 잘못 들었다가 이내 제 길로 되돌아와 적색벽돌집 오른 쪽으로 난 길을 따라 다시 산으로 들어섰습니다. 몇 개의 나지막한 봉을 지나 32번 국도와 만나는 장재에 닿기 까지 산길을 걸은 것은 고작 35분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벽돌집에서 묘지를 지나 능선에 오르면 임도를 만나고 이 임도에서 왼쪽으로 꺾어 무명봉에 오른 다음 다시 오른 쪽으로 틀어몇 곳의 갈림길과 봉우리를 지났습니다. 평지로 내려서서 길 왼쪽의 SK텔레컴 기지국을 거쳐 32번 국도상의 장재에 이르기 까지 35분 동안 밟은 마루금은 임도를 따라 걷는 편안한 길이었음에도 날씨만은 눈보라가 치고 냉기서린 바닷바람이 가슴팍을 파고들어 종주산행이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14시50분 장재에 도착해 길 건너 슈퍼에서 생맥주 1캔을 사 들었습니다.
오른 쪽으로 1-2분을 걸어 오른 쪽으로 603번 도로가 갈리는 삼거리 쉰재에서 32번 도로를 버리고 왼쪽으로 꺾어 2차선을 내어도 충분할만한 자갈길의 비포장도로로 들어섰습니다. 쉰재에서 15분가량 걸어 왼쪽의 우렁각시탑 안내판을 지나서 조금 후에 왼쪽 묘지 뒤의 산으로 올라 한 봉우리에 올랐습니다. 이 봉우리에서 절개지의 안부로 내려섰다 다시 오르다가 104봉에 못 미쳐 있는 갈림길에서 조금 더 오르자 그 밑으로 산소와 밭이 나타나 앞이 탁 트여보였습니다. 산 밑으로 내려서서 만난 길에서 오른 쪽으로 꺾어 수 분후에 얼마 전 걸었던 비포장도로를 다시 만났습니다. 이 길을 따라 걸으며 불그스레한 속살을 내보인 황토밭을 훔쳐보고 한 하운님이 읊은 형극의 길 “전라도 길”을 떠올린 것은 황토의 효능이 널리 알려져 각광을 받기 훨씬 전에 흙벽 속의 황토를 긁어 먹으며 배를 채우기도 한 배고프고 힘든 어린시절이 기억나서였습니다.
전라도 길
-소록도 가는 길
가도 가도 붉은 황톳길
숨막히는 더위뿐이더라.
낯선 친구 만나면
우리들 문둥이끼리 반갑다.
천안(天安) 삼거리를 지나도
수세미 같은 해는 서산(西山)에 남는데
가도 가도 붉은 황톳길
숨막히는 더위 속으로 절름거리며
가는 길.
신을 벗으면
버드나무 밑에서 지까다비를 벗으면
발가락이 또 한 개 없어졌다.
앞으로 남은 두 개의 발가락이 잘릴 때까지
가도 가도 천리(千里), 먼 전라도 길.
15시45분 장대1리(삼곳말)버스정류장의 도루개사거리에 도착하자 금북정맥을 종주하는 일맥산악회의 관광버스 1대가 서있어 그 산악회의 회원들은 귀가길이 편하겠다 싶어 부러웠습니다. 먼저 분은 목적지인 모래기재까지 2시간 40분이 걸린 것으로 나와 있어 바로 옆의 송문사 사당과 사적비를 들르지 못하고 아스팔트 도로를 따라 쉼 없이 산행을 이어갔습니다. 이 도로를 따라 반시간만 쭉 걸으면 32번 도로와 만나는 유득재에 닿게 되는데 장대1리 장살미 버스정류장 못 미쳐서 왼쪽의 묘지로 들어서는 바람에 산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느라 한 시간 가까이 걸려 16시 38분에 도착했습니다. 산속에서 더 이상 길을 찾지 못해 한참 후 왼쪽의 밭으로 내려서자 도랑이 나타나 길을 잘 못 들었음을 확인했을 때 모래기재까지 진출하겠다는 애당초 계획을 수정해 유득재까지만 진출하겠다고 마음을 고쳐먹었습니다. 도랑을 건너 버스정류장을 향해 웬만큼 진행하다 이렇게 산행을 접기가 아쉬워 온 길을 다시 밟아 묘지를 지나 찻길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눈 딱 감고 마루금상의 잔잔한 봉우리들은 다 잊고 오로지 찻길만 따라 걷기로 하고 부지런히 유득재로 내닫는 동안 매몰차게 불어대는 바닷바람은 여전히 황토밭의 온기와 수분을 뺏어갔고 제가 마치 이 겨울의 마지막 눈을 환송하고자 태안반도를 걷는 듯한 기분이 들 정도로 눈보라가 거세게 휘날려 장갑을 낀 손끝이 아렸습니다.
16시38분 유득재의 사목1리 버스정류장에 도착했습니다.
32번 도로를 건너 일맥산악회원인 듯한 한 분에 모래기재까지 가는 길에 차도를 또 만나는 가와 해 안으로 다다를 수 있는 가를 물었더니 오른 편의 구수산 능선 길을 생략하고 바로 차도를 따라 걸어 서해산업에서 왼쪽으로 붙으면 모래기재까지 갈 수 있다고 답을 해왔습니 만, 모래기재까지 가는 것보다 마루금을 놓치지 않고 밟는 것이 더 중요하기에 주유소 오른 쪽으로 난 들머리에서 구수산 능선 길로 들어섰습니다. 이번 산행에서 가장 가파른 오름길을 걸어 무명봉에 오른 시각이 17시 정각이었습니다. 20분여 알바를 해가면서 2시간 남짓 쉬지 않고 걸어 이 봉우리에 오르자 배가 고파왔고 양 어깨가 뻐쩍 지근해 짐을 벗어 놓고 나머지 귤을 모두 꺼내 들었습니다. 모래기재까지 진출하는 것은 이미 알바로 물 건너 간 것이기에 서해산업 고개마루에서 산행을 마무리하기로 마음먹고 모처럼 느긋하게 쉬었더니 피로가 조금은 회복된 듯 했습니다.
15시20분 서해산업 맞은편의 고개마루에 내려서 7시간 동안의 두 번째 금북정맥 종주산행을 마쳤습니다. 무명봉에서 귤을 꺼내들고 왼쪽으로 내려섰다 다시 150봉으로 올라섰고 또 다시 구수산 갈림길인 또 다른 150봉에 올라섰다가 다시 왼쪽으로 확 꺾어 도로 건너편에 “노을 그리고 바다/소원면”의 글귀가 새겨진 화강암의 표지석이 세워진 32번 도로상의 고개마루에 내려서 다음에 오를 맞은편의 서해산업 쪽으로 난 정맥 길을 확인해두었습니다. 사목1리 버스정류장으로 되돌아가 태안행 버스에 올라타자 버스안의 온기로 얼었던 몸이 서서히 풀렸고 이내 온 몸이 나른해지면서 이것이 바로 행복이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길쭉한 새끼 반도, 이 반도를 가르는 산길에 무성한 숲을 이루고 있는 소나무, 이 소나무와 푸르름을 견줄만한 대나무 숲, 이 푸르름과 대비되는 불그스레한 속살이 헤벌려진 황토밭, 낮은 구릉지대를 지나는 마루금과 겹쳐지는 차도와 비포장 도로, 숱한 임도 양옆으로 자리 잡은 크고 작은 묘지들이 이번 종주 산행에서 눈길을 멈춘 풍경들이라면 태안반도만의 또 하나의 풍물은 지난날의 추억을 실어 나르는 안내원이 동승한 군내버스입니다. 안내원의 친절한 서비스로 기분이 좋아지면 절로절로 태안반도의 여러 풍경들이 넉넉하게 가슴에 와 닿을 것이기에 말입니다. 금북정맥 종주 덕에 비산비야의 태안반도를 걸으며 그 풍경과 풍물을 만나 볼 수 있어서 혼자 하는 종주 길이 행복했습니다.
<산행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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