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II.평화누리길 및 강화나들길/평화누리길 탐방기

평화누리길 탐방기25(임당2리삼거리-돌산령터널-해안면복지회관)

시인마뇽 2020. 12. 9. 12:16

*탐방구간: 임당2리삼거리-돌산령터널-해안면복지회관

*탐방일자: 2020. 10. 15()

*탐방코스: 임당2리삼거리-산양증식복원센터-돌산령터널 -펀치볼야생화공원-해안면복지회관)

*탐방시간: 1023-1721(6시간58)

*동행      : 문산중14회 황규직/황홍기 동문

 

 

 

  강원도 양구군의 해안(亥安)에서 하룻밤을 묵기는 이번이 처음입니다. 2007년 대암산에 올라 움푹 파진 해안면 일대를 조망했고, 작년 여름에는 시티버스를 타고 을지전망대로 가는 길에 지난 적은 있지만, 해안을 목적지로 정하고 길을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돼지의 편안함을 뜻하는 해안(亥安)이라는 지명은 습한 기후로 뱀이 많이 출현하는 이곳에 살면서 겪는 주민들의 불편이 한 승려가 권하는 대로 돼지를 키웠더니 감쪽같이 뱀이 사라져 해결됐다는 고사에서 유래되었다고 합니다.

 

 

  해안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펀치볼입니다. 펀치볼(Punch Bowl)이란 양구군의 해안면에 있는 침식분지로 해안분지(亥安盆地)로도 불립니다. 지형이 펀치를 담아내는 화채그릇(punchbowl)과 비슷하다하여 펀치볼(Punch Bowl)로 명명한 사람은 한국전쟁 당시 미국의 종군기자였다고 합니다. 이 기자가 해발1,242m의 가칠봉에 올라 해안면을 조망하면서 아름다운 정경에 감탄해 이름을 지었다는 펀치볼이 세상에 널리 알려진 것은 한국전쟁 당시 해안면 일대에서 벌어진 펀치볼전투 때문입니다.

 

 

  펀치볼 전투란 미 제1해병사단과 배속된 국군 해병 제1연대가 1951831일부터 920일까지 펀치볼(해안분지)을 공격하여 확보한 전투를 이릅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이 전투에 대해 국군 해병과 미 해병은 해안분지 북쪽과 동쪽의 고지군을 탈취하고 해안분지를 확보하였다. 그러나 많은 사상자를 내고 특히 이 전투에서 국군 해병은 지형의 특징상 기동로가 없어 정면으로는 공격하지 못하고 측방으로 우회하여 좁은 공간에서 목표를 공격, 해안분지 확보에 가장 중요한 고지인 1026고지(모택동고지)924고지(김일성고지)를 점령하였다.”고 상술하고 있습니다.  미 해병 제1사단은 195198일에 하달된 9월의 제한공격 지침에 따라 부여된 북측 간무봉에서 사단 정면을 뻗은 능선상의 749고지를 점령할 목적으로 공격작전을 재개하게 되었다.”고 적고 있습니다. 간무봉 일대의 적을 견제하고 해안분지에 대한 적의 공격을 사전에 차단하고자 1단계 작전을 끝낸 미 사단은 약 1주간의 부대정비를 한 다음 911일부터 공격작전을 펴 920일까지 격전과 격전 끝에 749고지를 점령하고 해안분지 북쪽 5km 812고지까지 탈취하여 해안분지를 완전히 확보해 작전목표를 달성한 후 펀치볼 작전을 종료하였다고 이 사전은 펀치볼전투가 얼마나 치열했었는가를 전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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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정했던 두타연 구간은 코로나로 출입이 금지되어 포기하고 12일로 그 다음의 두 구간을 탐방하는 것으로 탐방코스를 바꾸었습니다. 동서울터미널을 아침 630분에 출발하는 첫 버스를 타고 2시간 20분가량 달려 양구터미널에 도착한 것은 950분이 다 되어서입니다. 터미널 인근에서 아침식사를 한 후 택시를 타고 31번 금강로를 따라 이번 탐방의 출발점인 임당2리삼거리로 향했습니다.

 

 

  오전1023분 임당2리삼거리를 출발했습니다. 쾌청한 날씨에 동틀 무렵에 차가웠던 냉기도 완전히 가셔 걷기에는 최적의 날씨다 싶었습니다. 월운지 댐이 가까이보이는 동면교삼거리에서 북쪽으로 이어지는 31번 금강로와 헤어져 오른 쪽의 453번 펀치볼로로 들어서 동쪽으로 진행했습니다. 이내 팔랑보건진료소를 지나 몇 분간 더 걷자 해안성당동면공소가 눈에 띄어 정말 시골마을이다 했습니다. 어렸을 때 벽지였던 고향 마을에 천주교 공소가 있어 크리스마스를 즈음해 선물을 받으려 다닌 일이 기억났습니다. 탐방 시작 24분 후 포병대삼거리를 지나자 '해안12km' 표지판이 보였습니다. 오른쪽으로 숨골 길이 갈리는 삼거리에서 직진하여 다시 오른 쪽으로 산양증식복원센터/연구센터 길이 갈리는 삼거리에서 가게를 들르느라 뒤쳐진 두 친구를 기다렸습니다. 돌산령터널로 이어지는 평화로는 가팔라지기 시작했고, 산을 오르는 기분으로 발걸음을 천천히 옮겨놓으면서 도솔봉 능선을 올려다보자 단풍이 잘 들어 가을 색이 완연했습니다. 1129분에 도착한 산 중턱의 삼거리에서 월운저수지-돌산령평화누리길안내판을 보고 아차 싶었던 것은 이제껏 걸어온 길이 양구군에서 조성한 평화누리길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안내판에 따르면 동면교삼거리에서 31번도로를 따라 북쪽의 월운저수지로 가서 오른 쪽으로 난 전장 3.6Km의 자전거 길인 ‘31번도로-소나무쉼터-약수터쉼터-골짜기쉼터-453번 도로를 걸었어야 했는데 정보부족으로 보다 짧은 453번 펀치볼로를 걸은 것입니다.

 

 

  1359분 전장2.9Km의 돌산령터널을 통과했습니다. ‘월운저수지-돌산령평화누리길안내판에서 453번도로에 합류한 평화누리길은 펀치볼로를 따라 북쪽으로 이어졌습니다. 15분 남짓 걸어올라 해발500m 지점에 이르자 오른쪽 갓길을 데크길로 조성해 마음 편히 걸었습니다. 1157분 오른쪽으로 대암산용늪 가는 길이 갈리는 삼거리에서 잠시 고심한 것은 이 길로 들어서 옛길을 따라 낸 평화누리길로 우회할 것인가, 아니면 435번 도로를 따라 올라 돌산령터널을 통과하는 직진 길로 갈 것인 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목적지인 해안에 해떨어지기 전에 도착하려면 터널 길로 직진해야 가능할 것 같아 못내 아쉬웠지만 터널을 통과하기로 결정하고 돌산령터널을 향해 오름길을 이어갔습니다. 터널을 십 수m 앞에 둔 지점의 제설자재관리동 건물 옆 공터에서  점심식사를 한 후 전장 2,995m의 돌산령터널로 들어선 시각은 134분이었습니다. 이 터널이 이제껏 걸은 터널 중에서 가장 길다는 것을 인터넷에서 확인하고 귀마개를 준비해온 것이 크게 도움이 되어 1시간 가까이 터널 속을 걸었는데도 그다지 짜증스럽지 않았습니다. 터널 안에 서 너 곳의 대피소(?)마저 없었다면 단조롭기 이를 데 없는 갓길을 걸어 터널을 빠져나오자 답답한 가슴이 확 뚫렸습니다.

 

 

  1555분 펀치볼야생공원을 지났습니다. “또 오세요. 펀치볼 마을의 문구가 쓰인 돌산령터널을 뒤로하고 이번 탐방의 끝점인 해안을 향해 453번 펀치볼로를 따라 내려갔습니다. 얼마 후 왼쪽으로 도솔중대 길이 갈리는 삼거리에 이르렀는데 이 삼거리가 옛길에 조성한 평화누리길이 453번펀치볼로와 만나는 교차점인 것 같습니다. 이 삼거리에서 조금 내려가 대전차방어벽을 지나자 해안까지 남은 거리가 5Km임을 알려주는 표지판이 보였습니다. 조금 더 내려가 잠시 453번 펀치볼로를 벗어나 숲(?) 속에 낸 샛길을 따라 걷다가 왼쪽 철조망펜스에 부착한 지뢰(Mine)’의 표지물을 보고 사진을 찍은 후 다시 펀치볼로로 복귀했습니다. 오른 쪽으로 DMZ자생식물원 길이 갈리는 삼거리에서 북동쪽으로 직진하다가 가을걷이가 끝난 과수원을 들러 사과를 사먹으며 20분여 쉬었습니다. 아직 따지 않고 남아 있는 새빨간 사과들을 카메라에 옮겨 담은 후 탐방 길을 이어가다 들판을 가득 채운 들국화(?)가 활짝 핀 펀치볼야생공원에 이르렀습니다. 아스팔트길을 계속 걸어 힘들어하는 두 발을 쉬도록 안내판 앞에 머물러 아래의 안내문을 천천히, 그리고 꼼꼼히 읽었습니다.

 

  “펀치볼야생화단지는 강원도 양구군 해안면 오유리, 만대리 일원에 위치하고 있으며 기존의 지형을 이용하여 절상도를 최상화하여 자연스럽고 입체적인 경관을 연출하였습니다. 또한 토사유출방지와 비점오염원 저감시설로 대단위야생단지를 조성하여 유기농재배와 채종포운영으로 농가소득 향상과 일자리창출에 기여하고 관광자원화로 지역경제개발에 이바지하고자 조성하였습니다.”

 

  ‘절상도’, ‘비점오염원’, ‘채종포등 흔히 쓰지 않는 전문용어들로 사전을 찾지않고는 정확한 뜻을 알 수 없는 난해한 안내문과는 달리, 야생화단지 현장은 엄청 넓어 시원스러운 데다 단지 내 사람들이 다니는 길도 흙길로 만들어져 야생의 참뜻을 바로 새길 수 있었습니다. ‘대암산숲속가든’, ‘사계절야생화단지’, ‘창포원’, ‘채종포단지등으로 조성된 야생화단지는 대도시 근교에서는 땅값이 비싸 좀처럼 확보하기 힘든 광활한 야생의 땅에 조성됐는데, 야생의 본뜻을 살리기 위해서인지 사람들의 손이 덜 간 것 같아 좋아보였습니다.

 

 

  1721분 해안면복지회관에 도착해 평화누리길 25구간 탐방을 마무리했습니다.  시간이 넉넉하지 못해 공원을 한번 빙 둘러보지 못하는 것이 못내 아쉬웠습니다.  펀치볼야생공원을 출발해 사방이 산으로 빙 둘러싸여 아늑한 해안분지를 걸으면서 강원도 산골에서 이리 넓게 땅을 쓰는 곳이 어디에 있을까 싶었습니다. 길 양옆에 푸른색의 차양이 설치된 밭은 인삼밭이 아니고 시래기 덕장인 것 같았습니다. 넓은 뜰을 진초록으로 물들인 무밭을 지나 운천교를 건넜습니다. 오유리의 물레방아를 지나 해안 시내로 들어서자 도로변의 건물들이 한 두 채의 이층집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단층집들로 거리가 깨끗하고 집들도 깔끔했습니다. 외솔쉼터와 해안중학교를 차례로 지나 현리교를 건너자 바로 앞이 사거리로 오른 쪽에 꽤 커보이는 해안면복지회관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이 건물 바로 뒤의 펀치볼황토팬션민박집에 짐을 푼 후 시내로 나가 느긋하게 저녁 식사를 했습니다. 숙소로 돌아와 일행과 1960년대 초로 돌아가 중학교를 다닌 학창시절을 회상하면서  이야기꽃을 피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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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래기가 해안의 특산물이라는 것은 여기 와서 처음 알았습니다. 시래기란 식용을 위해 무청을 말린 것입니다. 시래기라는 이름이 쓰레기에서 유래되었다는 설이 그럴 듯하게 들리는 것은 김장 등을 끝내고 남은 무청을 이용하여 만들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배춧잎을 말린 것도 시래기로 불렀다고 하는데 제가 자란 파주에서는 따로 우거지라고 부릅니다. 시래기가 쓰레기에서 환골탈태하여 건강식품으로 자리매김한 것은 31년 전에 돌아가신 어머니가 아셨다면 경천동지하셨을 것입니다. 제가 어렸을 때 논을 사려고 온 식구들이 허리띠를 졸라매고 살았을 때 주로 먹은 것이 메밀수제비와 시래기 국이었습니다. 지질이도 가난해 어쩔 수 없이 먹어야 했던 시래기가 담백하고 고소한 맛과 연한 식감을 가지고 있으며, 영양 면에서는 섬유질과 비타민, 칼슘 등이 풍부하여 변비완화와 독소배출, 골다공증 예방 등에 효능이 있고,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추는 성분이 있어 고혈압에도 도움이 된다고 하니 참으로 놀랄 만한 일입니다. 이에다  값도 저렴하다니  가성비가 이만한 건강식품을 달리 찾기가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시래기가 각광을 받기 시작한 것은 육류섭취량이 충분해진 후가 아닌가 합니다. 요즘도 이밥에 고깃국을 실컷 먹는 것이 소원인 북한에서는 시래기가 기근을 면하게 해주는 먹걸이일 수는 있어도 남한에서처럼 건강식품으로 받아들여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한 마디로 시래기를 건강식품이라면서 다시 찾는 가장 큰 이유는 먹고 살만해서라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그렇습니다. 1960년대부터 시작된 대한민국의 근대화는 성공리에 추진되어 1980년대부터 그 결실을 거두어들일 수 있었습니다. 훌륭한 지도자와 근면한 국민들이 뜻을 모으고 힘을 합해 근대화에 박차를 가한 결과 시래기를 건강식품으로 재인식할 만큼 오늘의 국부를 이룩한 것입니다. 그 풍요로움 덕분에 70세를 넘긴 저희가 이렇게 펀치볼을 찾아와 팬션에 편히 묵으면서 이야기꽃을 피울 수 있다고 생각하니 대한민국이 더 할 수 없이 자랑스럽습니다.

 

 

 

<탐방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