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V.시인마뇽의 문학산책 70

47. 내장산 산행 단상 - 자기합리화

*산행일자:2008. 5. 4일(일) *소재지 :전남순창및 정읍/전남장성 *산높이 :백암산741m, 내장산764m *산행코스:월성리삼거리-곡두재-백암산-소둥근재-내장산-유군치-내장사 *산행시간:9시15분-18시5분(8시간50분) *동행 :나홀로 어제(2008. 5.4일)는 모처럼 흥건히 내리는 봄비를 맞으며 백암산-내장산 구간의 호남정맥을 종주했습니다. 입하(入夏)를 며칠 앞두고 내리는 봄비는 곡우(穀雨)임에 틀림없기에 웬만하면 고맙고 반가운 마음으로 비를 맞으며 끝까지 걷고자 했습니다. 처음 4-5분간은 지난주에 밀재-곡두재를 종주하며 만났던 봄비 정도려니 생각해 땀도 식힐 겸 오히려 잘됐다 했는데 이런 생각은 그리 오래 가지 못했습니다. 이내 바람이 거칠어지고 굵은 빗방울이 후드득 뿌리기 시작하자 곡..

46. 고마운 용문산

시인 서정주 님은 그의 시 「자화상」에서 “스물 세 해 동안 나를 키운 건 八 割이 바람이다”라고 했습니다. 첫 머리에 “애비는 종이었다”라고 밝혀 「자화상」에 그려진 그의 모습이 거짓이 아님을 못 박은 만큼, 바람이 젊은 시절의 시인을 키운 것 또한 사실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바람이 서정주 시인을 키웠다면 최근 10수년간 저를 지켜준 것은 六 割이 산이라 하겠습니다. 시인의 8할을 제가 6할로 줄여 말한 것은 일주일에 두 번씩 오르던 산을, 2010년 방송대에 들어가고 나서 반으로 줄인 저를 보고 8할은 과하다며 산신령께서 혼을 내실까 두려워서입니다. 저 또한 한 평생 내내 “애비는 농사꾼이었다”라고 밝혀 제 종주기의 진실 됨을 담보하고자 합니다. 경기도 양평의 용문산은 제게는 오래 기억될 산입니..

45. 호남정맥 종주 길에 떠 올린 소설 『태백산맥』

“언제 떠올랐는지 모를 그믐달이 동녘 하늘에 비스듬히 걸려 있었다. 밤마다 스스로의 몸을 조금씩 조금씩 깎아내고 있는 그믐 달빛은 스산하게 흐렸다. 달빛은 어둠을 제대로 사르지 못했고, 어둠은 달빛을 마음대로 물리치지 못하고 있었다. 달빛과 어둠은 서로를 반반씩 섞어 묽은 안개가 자욱히 퍼진 것 같은 미명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위 글로 시작되는 대하소설 “태백산맥”을 읽노라면 우리 말글을 이토록 아름답게 다듬은 작가 조정래 선생에 존경의 마음이 절로 입니다. 중학생 때 “吾等은 玆에 我 朝鮮의 獨立國임과 朝鮮人의 自主民임을 宣言하노라.”의 기미독립선언문을 배우며 도시 무슨 뜻인지 알 수가 없어 독립선언문과 공약 3장을 달달 외운 적이 있습니다. 아무리 유명한 육당 최남선 선생이 쓴 글이라 하더라도 우..

44. 개미와 소나무

정맥을 종주하며 개미들을 만나본 것은 꽤 오랜만입니다. 4년 전 호남정맥의 불재-경각산-슬치 구간을 종주할 때 에코브리지 길 위에서 개미떼들을 만난 일이 있습니다. 땡볕 더위에 새까맣게 모여들어 원형을 이룬 개미들을 보고 사진을 찍고 그들의 행태를 관찰한 소감을 산행기로 남기기도 했습니다. 이번(2012. 5. 10일) 낙동정맥의 주산재-먹구등-황장재 구간을 종주하며 만난 개미들은 눈으로 셀 수 있을 만큼 몇 마리 되지 않았습니다. 4년 전 길 위에 새까맣게 모여든 개미들을 보고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시위에 참여하려 시청 앞 광장에 모여든 군중들이 생각났는데, 이번에 만나본 몇 마리의 개미들은 시위를 끝내고 일터로 돌아가 열심히 자기 일을 하는 직장인들을 연상시켰습니다. 커다란 소나무의 두 줄기 밑동이 ..

43.시간의 미분과 적분

작년(2016년) 봄 강원대학교 대학원에 입학하고 나서 “전상국의 춘천산 이야기”를 사서 읽은 적이 있습니다. 소설 「아베의 가족」으로 한국문단에서 위치를 확고히 한 소설가 전상국님이 쓴 이 책에서 춘천을 둘러싸고 있는 산줄기를 어떻게 이어갈 수 있느냐에 대한 답을 얻고 나자, 제 머리를 맴돈 것은 언제부터 이 산줄기 종주할 것인 가였습니다. 춘천분지순환등반로는 춘천시를 둘러싸고 있는 산줄기를 이어가는 산길입니다. 의암댐에서 시작해 드름산, 금병산, 대룡 산, 오봉산, 수리봉, 삿갓봉, 가덕산, 북배산, 계관산을 거쳐 삼악산에 오른 다음 의암댐으로 내려가는 순환등반로인 이 산길은 그 전장이 83.2Km에 달합니다. 어제(2017년5월18일) 혼자서 드름산을 올라 춘천분지순환등반로에 첫 발을 내딛었습니다...

42. '오서산(烏棲山)' 산 이름의 변천 유감

언어란 생각, 느낌 따위를 나타내거나 전달하는데 쓰는 음성, 문자 따위의 수단 또는 그 음성이나 문자 따위의 사회 관습적인 체계로 정의됩니다. 시대가 바뀜에 따라 우리가 몸담고 있는 사회가 바뀌고, 음성이나 문자 따위의 사회 관습적인 체계를 일컫는 언어 또한 따라 변화하는 것은 불가피한 것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저처럼 나이든 사람들이라면 누구라도 '의'를 '에'로 잘 못 발음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나라 표준발음법에서 '의'를 '에'로 발음하는 것을 허용하고 있는 것은 그런 경우가 비일비재해서입니다. 표준발음법이 '서울의'로 쓰고 '서울에'로 읽어도 틀리지 않다고 해야 할 만큼 발음〔ㅢ〕가 〔ㅔ〕로 많이 변화해온 것입니다. 시대변화에 따른 언어의 변화는 발음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

41. 낙동정맥 종주 길에 화랑을 떠올리다

어제(2011. 9. 5일)는 신불산을 지나는 낙동정맥을 종주하면서 이산의 억새평전에서 훈련을 했을지도 모르는 신라의 화랑을 떠올렸습니다. 신라의 고도 서라벌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천 미터가 넘는 높은 산이 있고 그 위에 넓은 평전이 있는데 수려한 산천을 찾아 심신을 닦는 화랑이 이런 곳을 그냥 빼놓을 리가 없었을 것입니다. 아직 관련기록을 찾지 못해 이곳이 훈련장이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는 없지만 신라의 명승 원효대사가 머물렀다는 천성산이 그리 멀지 않기에 화랑들이 원효대사를 기리기위해서도 이 산길을 오르내렸을 것입니다. 삼국유사가 전하는 향가에 등장하는 화랑은 모죽지랑가의 죽지랑, 화랑일것으로 추정되는 찬기파랑가의 기파랑과 혜성가의 세 화랑입니다. 융천사가 지어 불길한 혜성을 퇴치했다는 혜성가(..

40. 화엄늪의 안개

낙동정맥 종주 길에 들른 화엄늪은 넓었습니다. 안개 속에 몸을 숨긴 화엄늪이 그 크기를 가늠하지 못할 정도로 굉장히 넓게 느껴졌습니다. 안개가 가셔 모든 것이 투명하게 보였다면 아무리 화엄늪이 넓다 해도 그 끝이 보일 것이 분명하기에 크기를 가늠하는 일이 그리 어렵지 않았을 것입니다. 제 아무리 광활하다 해도 영남알프스의 사자평전에 비할 바가 못 되는 원효산의 화엄늪이 끝없이 넓게 느껴진 것은 순전히 안개 덕분입니다. 빛이 전혀 비치지 않는 한 밤중에는 사방이 캄캄해 늪 자체가 아예 보이지 않기에 넓고 좁고를 이야기할 계제가 못됩니다. 태양이 세상을 밝히는 낮에는 십 수 분만 내달려도 한 끝에 다다를 수 있는 정도에 불과해 실제 크기가 한 눈에 잡힙니다. 화엄늪이 그 끝을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넓어질 ..

39. 지도 단상(斷想)

미국의 역사학자 조지프 A. 아마토가 지은 "걷기, 인간과 세상의 대화(On Foot)"에 따르면 우리 조상들이 직립보행을 시작한 지 약 6백만 년이 지났다고 합니다. 세계 최초로 바빌로니아지도가 만들어진 것이 약4,500년 전의 일이라 하니, 그 때의 우리조상들이 지금의 우리와 같지는 않겠지만 지도를 보고 걸은 기간은 그 때부터 계산하더라도 걷기 역사의 1%도 채 안 되는 아주 짧은 시간입니다. 다시 말해 인류는 직립보행 역사의 99% 이상을 지도 없이 걸은 것입니다. 우리나라 지형도가 처음 만들어진 것은 일제 때로 우리나라 산꾼들이 등고선을 보고 산위를 걷기 시작한 것 또한 아무리 길게 잡아도 100년이 못됩니다. 저 역시 어렸을 때 동네 뒷산을 지도 없이 잘도 오르내렸습니다. 칡뿌리도 캐먹고 버찌도..

38.소양강 댐을 조망하며 떠올린 국민애창곡 '소양강 처녀'

이번(2017년9월3일) 소양산 산행 길에 오른 빙산의 전망대에서 모처럼 여유롭게 소양강댐을 조망했습니다. 댐을 가득 채운 소양강의 수면이 잔잔해 보여, 먼발치에서도 안온함과 고즈넉함이 느껴졌습니다. 북한강에서 멀지 않은 춘천시 신북읍 천전리에 축조된 이 댐은 높이가 123m이고, 제방길이가 530m이며, 총 29억톤을 저수할 수 있는 다목적댐으로 1973년에 준공되었다 합니다. 이 댐의 축조로 생긴 소양호는 한국최대의 인공호수로 춘천시, 양구군과 인제군에 걸쳐 있습니다. 소양호 덕분에 소양강댐을 출발해 강원도 서북지역의 곳곳을 운항하는 관광선이 생겼고, 전에는 별로 알려지지 않은 오지 마을도 이 배로 찾아갈 수 있어, 주말이면 이 댐을 찾는 사람들이 꽤 많다 합니다. 이 소양강 댐에 물을 채우는 일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