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III.시인마뇽의 명소탐방 137

135. 화성명소 탐방기1(용주사, 융릉과 건릉)

탐방일자: 2023. 1. 1일(일) 탐방지 : 경기도 화성시소재 용주사 및 융건릉 동행 : 나 홀로 황구지천을 따라 걷는 길에 경기도 화성시에 소재한 명찰 용주사와 왕릉 융릉과 건릉을 탐방했습니다. 두 곳 모두 조선후기 비운의 왕세자인 사도세자를 기리는 화성의 명소입니다. 이번에 황구지천 따라 걷기를 조금 일찍 마치고 이들 명소를 다녀온 것은 사도세자는 과연 어떤 인물이었는가를 알고 싶어서였습니다. 사도세자(思悼世子) 이선(李愃, 1735-1762)은 영조와 영빈 이씨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 이듬해 세자로 책봉되었고, 10세에 동갑내기인 혜경궁 홍씨와 결혼했습니다. 15세인 1749년에 영조를 대신해 정사를 돌보기도 한 사도세자는 부왕과의 불화로 병을 얻었고 노론세력과 정치적 대립을 계속하다가 1762년..

134. 부여명소 탐방기2(정림사지, 수북정)

*탐방일자: 2023. 1월31일(화) *탐방지 : 충남부여소재 정림사지와 수북정 *동행 : 나 홀로 백제의 26대 성왕이 재위 16년(538)에 공주에서 부여로 천도했을 때는 여기 지명이 부여(扶餘)가 아니고 사비(泗沘)였습니다. 사비가 부여로 지명이 바뀐 것은 백제가 나당연합군에 멸망한 후의 일로 신라의 35대 경덕왕 때인 8세기에 들어서입니다. 그렇다고 부여라는 이름이 경덕왕 때 처음 쓰였다는 것은 아닙니다. 애당초 부여는 땅 이름이 아니고 나라 이름이었습니다. B.C 450년 동이족의 한 갈래인 맥족(貊族)이 백두산 북쪽의 송화강 상류의 기름진 땅에 터 잡아 나라를 세웠는데, 그 나라 이름이 부여(扶餘)였습니다. 김부식이 지은 『삼국사기』에 부여와 관련된 고구려와 백제의 건국 설화가 실려 있습니다..

133. 옥천명소 탐방기1(육영수생가, 옥천향교, 정지용문학관)

*탐방일자: 2022. 6. 11일 *탐방지 : 충북옥천 소재 육영수생가, 옥천향교 및 정지용문학관 *동행 : 나 홀로 금강을 따라 걸으며 자주 들른 지방도시는 전북의 무주, 충북의 영동과 옥천입니다. 세 도시 중에 가장 많이 들른 도시는 옥천으로 이번이 여섯 번째입니다. 다음번에는 대전역에서 하차해야해 금강을 따라 걷기 위해 옥천을 찾는 것은 이번이 마지막입니다. 웬만하면 강 따라 걷는 길에 지방도시의 인근 명소를 둘러보고자 하는 것은 우정 다시 찾아가는데 따른 시간과 비용을 절약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무주에서는 인근의 최북미술관/김환태문학관을 찾아갔고, 영동에서는 황간의 월류정을 다녀왔으며, 이번에는 옥천 구읍 지역의 육영수여사생가와 옥천향교, 그리고 시인 정지용문학관을 방문했습니다. ........

132. 공주명소 탐방기1(우금티전적지)

*탐방일자: 2022. 12. 11일 *탐방지 : 충남공주시소재 우금치전적지 *동행 : 나 홀로 공주시가 “백제의 숨결이 살아있는 세계유산도시”로 이름난 도시라는 것은 진작부터 알고 있었지만, “동학농민혁명의 큰 싸움터”였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3년 전 대학동창들과 함께 전북고창의 무장읍성을 들러 동학농민혁명의 유적지를 둘러본 것이 계기가 되어 동학농민혁명에 대해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게 되었고, 공주의 우금치가 1894년 수많은 동학군이 일본군에게 패해 전사한 전적지라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 1894년의 우금티전투는 동학농민군이 일본과 교전한 공주전투의 마지막 전투였습니다. 18일간 계속된 공주전투는 1892년 공주에서 시작된 동학의 교조신원운동에 힘입은 바 컸습니다..

131. 범허정 송광연 선생의 「삼한동기」 현장 답사기

답사일자: 2023. 4. 20일(목) 답사지 : 강원도 춘천시 삼학동 일대 답사코스: 용화산숲체원-이주선생생가마을-용연-법화사지-고탄령-배후령/수리봉갈림길 -652m봉/수리봉안부-삼화사지-남명선생부친묘지-구층대-구담-용화산숲체원 답사시간: 10시24분-18시16분(7시간52분) 이번에 답사한 춘천의 삼한계곡은 1686년 여름 범허정(泛虛亭) 송광연(宋光淵, 1638-1695)선생이 다녀온 곳으로 해발876m의 용화산에서 발원한 청정한 계곡입니다. 삼한계곡이 자리한 삼한동 일대는 맥국(貊國)의 도읍지가 들어선 곳으로 알고 있습니다. 범허정 선생은 「삼한동기」 에서 “양통고개를 넘으면서 맥왕(貊王)의 옛 도읍지를 애도하고 용화산으로 들어갔다”라고 적었습니다. 맥국에 대한 기록은 『삼국사기』 에 남아있지만,..

130. 권두문의 <호구일록>에 실린 역사현장 탐방기

탐방일자: 2021. 11. 22일((월), 2022. 1. 14일(금) 탐방지 : 1차 노성산성-약수역-정동굴-봉산지씨 묘역-절개산 2차 빙허루- 강원감영-강소사 정려각 - 춘수당 동행 : 서울 사대 안승렬 · 원영환 · 이상훈 동문 및 평창문인 정원대선생 조선왕조가 오백년 동안 치러낸 크고 작은 전쟁 중에서 가장 오래 끌은 전쟁은 임진왜란입니다. 1592년 일본군의 침략으로 시작된 이 전쟁은 1598년 주군 히데요시의 죽음으로 조선에서 철수하기까지 지속되어, 조선 땅은 이순신장군이 지켜낸 전라도를 제외한 거의 모든 곳에서 참혹한 전화(戰禍)를 피해가지 못했습니다. 이번 탐방의 주인공은 평창군수 권두문(權斗文, 1543~1617)입니다. 권두문은 이 분이 지은 임란실기 「호구일록(虎口日錄)」을 읽기 전..

129. 가평명소 탐방기1(자라섬)

탐방일자: 2022. 3. 8일(화) 탐방지 : 경기도가평군소재 자라섬 동행 : 나 홀로 경기도 가평의 자라섬은 북한강 한가운데 자리한 하중도(河中島)입니다. 1986년 가평군지명위원회에서 자라목(늪산)을 바라보는 섬이라는 의미에서 자라섬으로 명명한 이 섬은 자라섬캠핑장이 들어선 서도, 축제와 공연의 상징인 중도, 꽃 테마공원과 야간 공원이 일품인 남도 등 3개의 작은 섬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보납산 남쪽 끝 철교 밑에서 가평천을 받아들여 세를 불린 북한강이 이 섬을 넉넉하게 감싸고 있어 풍광이 수려한데다, 하중도 치고는 꽤 넓어 이 섬을 빙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심신을 힐링(healing)하기에 충분합니다. 2004년에 처음 열린 자라섬국제재즈페스티벌과 2008년에 시작된 캠핑캐라바닝대회가 2019년까..

128. 정선명소 탐방기2(오장폭포, 항골계곡, 나전역사)

탐방일자: 2022년10월24일(월) 탐방지 : 강원도정선군소재 오장폭포, 항골계곡, 나전역사 동행 : 오대천탐방대원 11명 (최돈형/부명숙 주관, 김종화 부부, 박인기, 오종실, 원영환,이규석 부부, 이규성 동행) 정선 땅이 낯설지 않은 것은 정선아리랑 때문만은 아닙니다. 산수를 워낙 좋아해 정선의 명산도 여러 산을 올랐고, 한강을 따라 걷는 길에 강변의 명소도 여러 곳 탐방했습니다. 함백산과 석병산은 백두대간 종주 길에 올랐고, 백운산, 백덕산과 가리왕산은 100대 명산 탐방 길에 등정했으며, 노추산과 두위봉은 따로 짬을 내어 등산했습니다. 국내에서 가장 높은 고개인 만항재와 5대 적멸보궁의 한 곳인 정암사는 함백산 등산 때 들렀고, 인공폭포인 백석폭포는 평창에서 태백을 오갈 때 보았습니다. 약 4억..

127. 손자와 함께 떠난 두 번째 여행(공주 및 세종시 명소)

탐방일자: 2022. 4. 9일(토)-10일(일) 탐방지 : 충남 공주시 공산성/국립공주박물관(4월9일) 세종직할시 금강수목원/산림박물관(4월10일) 동행 : 손자 및 큰아들며느리 제게는 막내아들이 낳은 초교3년생과 큰아들이 낳은 초교1년생 등 손자만 둘이 있습니다. 두 아들 며느리들이 금지옥엽으로 키우고 있는 두 손자들은 조상님들이 내려준 더할 수 없이 소중한 가보(家寶)입니다. 결혼이 필수가 아니고 선택이 되어버린 이 나라에서 떡두꺼비 같은 손자를 안겨준 두 아들며느리야말로 최고의 효자 효부가 아닐 수 없습니다. 욕심 같아서는 손녀를 하나씩 더 낳아 기른다면 금상첨화이겠지만, 자식들이 출가를 안 해 손주바보가 되고 싶어도 그러지 못하는 몇 몇 친구들을 생각하면 손녀 운운 하는 것은 복에 겨워하는 말이..

126. 영동명소 탐방기1(월류정/양산팔경)

탐방일자: 2022. 1. 22일(토요일) 탐방지 : 충북영동소재 월류정/양산팔경 동행 : 나 홀로 작년 여름 ‘금강 따라 걷기’를 시작하지 않았다면, 영동 땅을 이처럼 자주 걷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1969년 여름 방학 때 덕유산을 오르려고 영동역에서 하차해 인근의 천변에서 아침 식사를 지어 먹는 것으로써 영동 땅과 인연을 맺은 후, 이 땅을 다시 찾은 것은 천태산과 민주지산을 등산하고 백두대간을 종주할 때 지난 것이 전부였습니다. 다 합해도 다섯 번을 넘지 않은 영동 땅 탐방이 최근 몇 달 동안에 일곱 번이나 추가된 것은 금강을 따라 걷기 위해서였습니다. 제가 영동역을 거쳐 금강을 찾아 간 것은 충북의 영동 땅을 걸을 때만이 아니었습니다. 전북의 무주는 전북의 전주역보다 충북의 영동역에서 더 가깝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