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방구간 : 일로하수종말처리장-주룡나루-영산강하구둑
*탐방일자 : 2021. 4. 5일(월)
*탐방구간 : 일로하수종말처리장-소댕이나루-무영대교-주룡나루-못난이미술관
-남창대교-영산강하구둑
*탐방시간 : 8시12분-15시18분(7시간6분)
*동행 : 나홀로
시인 박인환(朴寅煥, 1926-1956)은 그의 시 「목마와 숙녀」에서 “-등대에-/ 불이 보이지 않아도/거저 간직한 페시미즘의 미래를 위하여 /우리는 처량한 목마소리를 기억하여야 한다”라며 애절한 목소리로 불 꺼진 등대의 절망스런 모습을 읊었습니다. 이번에 저는 영산강의 마지막 구간인 구정리둑방길을 따라 걸으며 먼발치에서 오랫동안 불을 껐다가 다시 불을 지핀 자그마한 등대를 조망하면서 “얼어붙은 달그림자 물결 위에 차고/한 겨울의 거센 파도 모으는 작은 섬/생각하라 저 등대를 지키는 사람의/거룩하고 아름다운 사랑의 마음을”라는 가사의 아일랜드 민요 「등대지기」를 노래 부르면서 희망을 속삭였습니다.
사전적 정의에 따르면 등대란 “항로표지의 하나로, 바닷가나 섬 같은 곳에 탑 모양으로 높이 세워 밤에 다니는 배에 목표, 뱃길, 위험한 곳 따위를 알려주려고 불을 켜 비추는 시설”을 이릅니다. 제가 영산강 한 가운데 서 있는 등대를 보고 저게 뭐지 하고 궁금해 한 것은 등대가 바닷가가 아닌 강 한가운데에 세워졌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해서였습니다. 이 등대는 우리나라 최초로 내수면에 세워진 몽탄진등대로 멍수등대로 불리기도 합니다.
이 등대가 눈길을 끈 것은 바닷가나 섬 같은 곳에 자리한 여타 등대와 달리 강 한가운데 자리하고 있어서입니다. 알고 보니 이 등대는 1938년 영산포로 항해하는 서남해 일원의 홍어잡이 등 각종 어선들의 뱃길을 밝히고자 전남무안군일로읍의산리 앞 내해(內海)에 설치했던 국내 최초의 내수면(內水面) 등대입니다. 내해에 자리한 이 등대가 내수면의 등대로 바뀐 것은 영산강하구둑이 축조된 1981년 이후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 전에는 목포항에서 영산강 뱃길로 20여㎞를 거슬러 올라가 주룡협곡을 벗어나면 드넓은 내해(內海)가 펼쳐졌는데 이 내해의 북쪽에 남해만이, 동쪽에 덕진만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두 갈래 수로 중 남해만 초입에 암초가 있었으며 그 바위 위에 세운 것이 바로 멍수등대라고 불린 몽탄진등표로, 이 등대가 처음 세워졌을 때 위치는 내수면이 아니었고 내해였다고 생각합니다. 1981년 영산강댐의 축조로 바닷물의 유입이 막힌 남해만과 덕진만은 내수면으로 바뀌었고 제방을 쌓아 만(灣)의 상당부분이 옥토로 일궈졌습니다.
1981년 영산강하구둑 건설로 기능을 상실한 몽탄진등표를 복원해 재점화한 것은 2009년1월1일의 일입니다. 타원형철근콘크리트(7.6미터)구조에 등명기를 설치해 복원한 이 등표를 재 점화한 것은 국내최초의 내수면등대의 복원이라는 역사적 가치뿐만 아니라 이 지역의 내수면에서 운항하고 있는 소형어선들이 6마일(11.1Km)이상의 거리에서도 이용할 수 있게 된 점에서 그 의의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바라건대 재점화로 다시 살아난 몽탄진등표의 재생스토리가 코로나로 가게 문을 닫고 힘들게 살아가는 우리의 이웃들에 희망의 메시지가 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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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8시12분 일로하수종말처리장을 출발했습니다. 안개가 자욱한 일로역에서 하차해 영산강 따라 걷기의 마지막 9구간의 출발점인 일로하수종말처리장까지는 택시로 이동했습니다. 일로면의 의산리입구 삼거리에서 ‘영산강하구둑 18.7Km’ 표지판이 세워진 제방길로 들어서 복룡저수지쪽에서 흘러내려오는 영산강의 지천을 따라 동쪽으로 진행했습니다. 제방길은 안개가 가시고 햇살이 퍼진지 얼마 안 되어서인지 촉촉이 젖어 있었습니다. 20여분이 지나 다다른 영산강과의 합수점에서 오른 쪽으로 꺾어 몇 분을 더 걸어 ‘몽탐진등표’ 표지석 앞에 이르렀습니다. 굴뚝 모양의 원통에 빨간 색이 칠해진 이 등대가 눈을 끈 것은 바닷가 언덕이나 섬 꼭대기에 설치된 여타 등대와는 달리 강 한가운데 살짝 머리를 드러낸 암초 위에 세운 자그마한 등대라는 것입니다. 이 등대를 카메라에 옮겨 담고 나서 곧게 뻗어나간 제방 길을 따라 남진했습니다. 직선의 제방길은 걷기에는 조금 지루했지만 자전거를 타고 달리기에는 더할 수 없이 신나는 길이다 싶었습니다. 의산리 입구에서 시작된 제방 길은 의산배수장을 막지나 다다른 소댕이나루에 이르기까지 십리 넘게 이어졌습니다.
10시16분 주룡나루에 도착했습니다. 소댕이나루에서 주룡나루까지는 차도를 따라 진행했습니다. 소댕이나루에 이르기 얼마 전에 영암천의 물을 받아들인 영산강이 넓은 강폭을 가득히 채워 흘러내려가는 모습이 참으로 도도해 보였습니다. 소댕이나루 바로 아래 걀쭉한 모양의 작은 착섬이 영산강의 물 흐름을 두 줄기로 갈라놓아 강폭이 좁아 보였습니다. 앞에 보이는 트러스교는 영산강을 동서로 가로지르는 철교로 아직 개통이 되지 않아 이름이 정해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 다리 아래 길가에 수달보호지역 안내판이 세워진 것으로 보아 천연기념물인 수달이 여기 영산강하류에 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소댕이나루 출발 반시간 남짓 지나 도착한 주룡(朱龍)나루는 두령량(頭靈梁)광장으로 꾸며져 있어 쉬어가는 자전거꾼 몇 명이 보였습니다. 두량령으로도 불리는 주룡나루 앞의 물길은 동쪽 영암의 은적산과 서쪽 무안의 주룡산 상사바위 사이를 흐르는 협수로로, 영산강의 강폭이 438m에 불과해 물살이 매우 빨리 흐르는 위험한 뱃길이었다고 안내판에 적혀 있습니다. 이는 주룡협곡을 벗어나 만나는 내해의 북쪽에 남해만이, 동쪽에 덕진만이 포진하고 있을 때의 이야기이고, 각 만을 가로질러 제방을 쌓은 이후로는 위쪽보다 강폭이 그다지 좁지 않아 요즘도 여전히 주량협곡의 물살이 거센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주룡나루는 영산강하굿둑의 완공으로 나루터기능을 상실했지만, 향후 황포돛배 등 유람선 운항에 대비해 이 나루에 부진교를 설치해 놓은 것은 잘한 일이다 싶었습니다.
11시31분 영산석조(榮山夕照)의 전망처인 자전거쉼터에 이르렀습니다. 주룡나루에서 영산강을 막 벗어나 다다른 청호교차로에서 왼쪽으로 꺾어 왕복2차선의 지방도를 따라 걸었습니다. 우비를 지나 들른 곳은 '못난이미술관'으로, 길 건너 '난이네슈퍼'와는 건물의 외관과 하얀 색이 칠해진 것이 똑 같아 눈길을 끌었습니다. 미술관에 전시된 올망졸망한 조각물들을 보고 이 미술관이 어린이용으로 특화된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주룡나루 출발 50분이 다 되어 들어선 망월1방수제 초입에서 영산강을 다시 만났습니다. 남서쪽으로 이어지는 방수제를 따라 20분가량 더 걸어 영산강제1경인 영산석조(榮山夕照)를 조망하기 딱 좋은 자전거쉼터에 도착했습니다. 이 곳에서 점심식사를 하면서 모처럼 십 수분 간 마음 편히 쉬었습니다. 저녁노을에 물든 아름다운 영산호라는 의미로 풀이되는 영산석조의 진정한 아름다움은 영산호로 태양이 뉘엿뉘엿 넘어가는 저녁시간이 되어야 완상할 수 있는데, 아직 갈 길이 남아 있어 저녁 때까지 기다렸다가 보지를 못하고 바로 자리를 떠야해 못내 아쉬웠습니다. 샛노란 유채화가 눈길을 끄는 망월1방수제는 망월2방수제로 이어졌습니다.
13시20분 남창대교를 건넜습니다. 망월2방수제 역시 1방수제와 마찬가지로 바다가 내륙 쪽으로 움푹 들어가 생긴 만(灣)을 가로 막아 축조한 제방입니다. 굳이 다른 점을 들라면 1방수제 안쪽으로는 거의 다가 농지로 조성되어 있었는데
2방수제 안쪽에는 논과 갈대밭, 그리고 택지개발단지가 연이어 자리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2방수제의 오른 쪽 아래 택지개발단지에서 전라남도 도청이 들어선 남악신도시의 오룡지구택지개발사업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어서 덤프트럭들이 줄이어 들락날락했습니다. 북서쪽으로 이어지는 2방수제를 따라 걸어 만난 남창천을 바로 건너지 못한 것은 이 하천을 건너는 남창대교가 영산강과의 합수점으로부터 북쪽으로 한참 떨어져 있어서였습니다. 남창대교를 건너 남악신도시와 대불단지를 연결해주는 철교인 영산대교를 다리 밑으로 지나 남악방수제로 올라서자 영산강 따라 걷기의 끝점인 영산강하구둑이 선명하게 보였습니다.
15시18분 영산강하구둑배수갑문 앞에서 영산강 따라 걷기를 마무리했습니다. 남창천이 영산강과 만나는 합수점에서 시작해 영산강하구둑에서 끝나는 남악방수제는 영산강의 마지막 제방길로 서쪽으로 곧게 뻗어나갔습니다. 남악방수제 왼쪽에는 영산강하구댐의 축조로 만들어진 영산호가 넓게 펼쳐졌고, 오른 쪽으로는 지역주민들이 쉽게 접근해 산책을 즐길 수 있는 남악수변공원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무안군을 지나 목포시로 접어들면서 남악수변공원은 끝이 났지만 대표적인 염생식물인 갈대밭이 이 수변공원을 이어갔습니다. 4대강자전거길인증센터를 들러 안내팜플렛을 받아든 후 영산강하구둑으로 올라가 강 하구의 중간쯤에 자리한 영산강하구둑배수갑문으로 향했습니다. 하구둑의 서쪽 하늘을 낮게 날아다니는 기러기를 보자 비로소 영산강이 끝나고 바다가 시작되었음을 실감했습니다. 배수갑문 앞에 서자, 구조물의 규모에 압도되고, 외관의 선형미(線形美)에 매료되어 7시간 남짓 걸어 생긴 피곤이 싹 가시는 듯했습니다. 영산강 따라 걷기를 마무리하는 감격의 순간을 오래 기억하고자 날렵한 외관의 배수갑문을 카메라에 옮겨 담은 후, 목포역으로 이동해 귀가했습니다.
영산강은 간만의 차이가 커 나주부근까지 바닷물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합니다. 강안(江岸)의 농경지는 하천이 범람하고 농토가 침식되어 피해가 컸었는데, 영산강 하구의 양안(兩岸)인 목포시옥암동과 영암군삼호읍을 연결해 영산강하구둑을 축조함으로써 자연재해를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1978년에 착공해 1981년에 완공을 본 길이 4,350m, 최대높이 20m의 영산강하구둑의 축조된 후 저수량 250백만톤의 영산호(榮山湖)가 조성되어 충분한 농업용수가 확보되고, 농지가 확대되고, 강물의 범람을 막았지만, 점점 수질이 나빠지고 유입되는 토사의 증가로 강 수위가 높아지는 등 해결해야 할 현안과제도 새롭게 드러났습니다. 2010년대에 들어 퇴적된 토사물을 걷어내었고 승촌보와 죽산보를 설치했으며 영산강하구둑의 배수갑문도 240m에서 480m로 확장하는 등 여러 모로 노력해온 바, 이제는 그 효과를 점검해나가면서 보완책을 수립해 시행해나가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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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12월 담양의 가마골용소에서 시작한 ‘영산강 따라 걷기’는 여기 영산강하구둑의 배수갑문에 도착하는 것으로써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총9회에 걸쳐 약145Km를 걸었으니 매번 평균해서 16Km가량 걸은 셈으로, 작년 섬진강의 15Km와 별반 차이나지 않았습니다. 작년 상반기에 탐방한 섬진강과 크게 다른 점은 영산강은 강안에 드넓은 평야가 자리 잡고 있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영산강은 강폭이 섬진강보다 넓었고 수량(水量)도 더 많았으며, 물 흐름도 완만했습니다. 조선시대를 풍미한 송강 정철과 백호 임제의 문학적 자취를 보았습니다. 광주의 오랜 지우 양방현사장을 그의 고향 광주에서 만나 담소를 나눈 것도 기억할 만한 추억이 될 것입니다. 시골을 주로 지나는 섬진강에 비해 광주와 나주 등 큰 도시를 관통하는 영산강을 따라 걷는 길이 섬진강의 강변 길만큼 한갓지거나 고즈넉하지는 않았지만, 보를 가득 채운 잔잔한 강물을 바라보면서 잠시나마 시간의 흐름이 정지된 순간의 여유를 즐기곤 했습니다.
강줄기 따라 걷기를 이어가면서 얻은 큰 소득은 각종 지리서를 일독했다는 것입니다. 새로 만나는 경관에 대한 설렘과 궁금증은 상당부분을 여러 지리서(地理書)를 통해 풀었습니다. 자연지리, 인문지리, 우리나라 역사지리 등 각종 지리입문서를 접할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강줄기 따라 걷기에 힘입어서입니다. 아직은 관련 지리서들을 한 번 통독한 것이 전부여서 새로운 승경이나 지형에 대한 지식의 수준은 매우 미미합니다. 금강, 낙동강과 한강을 마저 따라 걸으면서 그때마다 지리에 대한 이해와 지식의 수준을 조금씩 높여간다면, 5대강 따라 걷기를 모두 마칠 즈음에는 상당한 수준에 이르러 웬만한 궁금증은 거의 다 풀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봅니다. 1960년대 후반에 고등학교에서 배운 지리과목을 반세기가 지나 다시 공부하게된 것은 이번 마지막 구간에서 보게된 몽탄진등표가 수 십 년간 불을 밝히지 못했다가 재 점화해 등대로서의 수명을 이어가는 것만큼이나 의미 있는 일이다 싶어 가슴 뿌듯합니다.
<탐방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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