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I.강줄기 따라걷기/금강 따라걷기

금강 따라걷기27(대학2리정류장-백제보-백제교)

시인마뇽 2023. 1. 20. 18:24

 

탐방구간: 대학2리정류장-백제보-백제교

탐방일자: 2023. 1. 17()

탐방코스: 대학2리정류장-창강서원-백제보-백마강교-백제교-부여시외버스터미널

탐방시간: 944-1650(7시간6)

동행 : 나 홀로

 

 

  이번에 금강을 따라 걷던 중 백마강 한 가운데를 내달리는 관광버스를 보았습니다. 신기하다 하면서도 그저 버스 모양을 한 유람선이려니 생각하고 사진을 찍었는데, 십 수분 후 이 버스가  육로를 달리는 것을 바로 옆에서 보았습니다. 뭍에 올라오자 물이 줄줄 흘러내리는 이 버스에서 광고문구 세계유산 도시부여 수륙양용 시티투어를 읽고 나서야 이 버스가 수륙양용 버스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백제문화단지를 출발한 이 버스가 수상(水上)에 진입하는 것은 백마강레저파크부터입니다. 고란사- 낙화암- 천정대를 차례로 지나 백마강레저파크에서 다시 육상으로 진입해 백제문화단지로 돌아오는 동안 수상관광시간은 40분이라고 합니다.

 

  수륙양용관광버스를 사진 찍으면서 언뜻 생각난 것은 수륙양쪽을 오가며 사는 개구리였습니다. 세 살 때 6 . 25전쟁을 맞았던 저는 전쟁이 끝나고도 몇 년간은 하루 세끼를 다 먹지 못했습니다. 어머니께서 몸이 많이 쇠약한 제게 개구리를 잡아다가 뒷다리를 고아먹이거나 구워주신 것은 그때였습니다. 덕분에 앙상한 몸에 살이 붙고 병 치례도 끝나 비교적 건강한 몸으로 초등학교를 다닐 수 있었습니다. 그때 어머니가 개구리를 잡아다 제게 먹이지 않으셨다면 성장에 필요한 최소한의 단백질도 섭취하지 못해 제대로 크지 못했을 것입니다.

 

  어머니는 개구리를 집근처 도랑이나 논에서 잡아오셨습니다. 사람들이 접근하면 논두렁에 서 물속으로 뛰어 들어가 숨는 개구리를 맨손으로는 도저히 잡을 수가 없어 긴 막대기를 가져가 후려쳐 잡곤 하신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개구리가 물과 뭍 양쪽을 왔다 갔다 하며 살고 있는 양서류에 속한다는 것은 이때 확실히 알았습니다.

 

  수륙양용관광버스를 양서류의 개구리에 비유하는 것은 좀 억지이다 싶기도 합니다. 우선 수륙양용관광버스는 생명이 없는 사물이지만, 개구리는 엄연한 생명체라는 것입니다. 둘째, 수륙양용관광버스를 타는 것은 먹는 문제가 해결된 후에 할 수 있는 것이지만, 개구리를 잡아먹는 일은 굶주림을 벗어나기 위한 원초적 삶의 한 행위라는 것입니다. 또 하나 강물은 배를 물위로 띄우는 일을 해냈다면, 도랑물은 개구리에게 피신처를 제공했다는 것 등을 차이점으로 들 수 있습니다.

 

  이런 차이에도 불구하고 수륙양용관광버스를 보고 개구리를 연상한 것은 둘 다 모두 물과 뭍 양쪽을 마음대로 오갈 수 있다는 공통점이 몇 가지 사소한 차이를 덮고도 남아서라고 생각합니다. 또 하나 어려서 배 곯린 일이 제 머릿속에 악몽이 아닌 추억으로 자리 잡을 만큼 고 이제는 풍요롭게 살고 있어서가 아닌가 합니다.

 

 

....................................................................................................................................

 

 

  공주시외버스터미널에서 지난번에 탐방을 마친 공주시탄천면의 대학2리버스정류장까지 22천원을 들여 택시로 이동했습니다. 기온은 영하에 머물러 여전히 쌀쌀했지만 강변의 자전거 길에는 눈이 전혀 남아 있지 않아 걷기에 좋았습니다.

 

  944분 대학2리 정류장을 출발했습니다. 백제큰길에서 금강좌안의 자전거길로 내려가 부여를 향해 남진했습니다. 강변의 잔 나무들이 시야를 막아 금강의 물 흐름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금강하구둑기점(종주노선) 72Km지점을 지나 자전거쉼터에 이른 것은 대학2리 정류장 출발 40분이 지나서였습니다. 마침 물가로 접근하는 길이 희미하게 나 있어, 이 길을 따라 강가로 다가갔습니다. 두 손으로 강물을 떠 손을 씻는 퍼포먼스로 금강과 인사를 나눈 후 저 멀리 훤히 보이는 강줄기를 사진 찍었습니다. 이내 자전거길로 복귀해 남진을 계속하다 부여읍을 10Km 남겨놓은 지점에서 백제큰길로 올라가 차도를 따라 걸었습니다. 오른 쪽 아래 분창나루 앞 강물에서 유영하는 오리들에 눈길을 주었다가 왕진교가 가깝게 보이는 분강교를 건넌 것은 1120분이 조금 지나서였습니다.

 

  1144분 창강서원(滄江書院)을 들렀습니다. 백제큰길과 나란한 방향으로 놓인 분강교를 건너자 바로 아래 강변에 자리한 아담한 한옥 한 채가 눈에 띄었는데, 알고 보니 이 건물은 농어촌공사에서 세운 배수장이었습니다. 부여 땅이 시작되는 나지막한 고개를 넘어 저석교차로에 이르자 오른 쪽 산 아래에 옹기종기 들어선 시골마을이 보였습니다. 이 마을 서쪽 끝자락에 자리한 창강서원을 들러 이 서원에서 배향하는 조선조 문신인 황신(黃愼, 1560~1617)을 만나보았습니다.

 

  창강서원은 1629(인조 7년)에 지방 유림의 공의로 황신(黃愼)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한 충남 부여의 서원입니다. 숙종 임금으로부터 창강(滄江)’이라는 현판을 받아 사액서원(賜額書院)이 된 이 서원은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헐렸다가 1937년에 복원된 후 1966년 현 위치로 이전해왔다고 서원 앞의 안내문은 전했습니다. 창강서원에는 황신의 위패와 영정이 봉안된 3칸의 사우(祠宇), 제향 때 유림들의 숙소 및 원내의 여러 행사 때 회합장소 등으로 사용되는 3칸의 재실(齋室)과 삼문(三門), 그리고 신도비가 세워져 있었습니다. 이 서원에 모셔진 황신은 성혼(成渾)과 이이(李珥)의 문인으로 병조판서와 호조판서를 역임한 중신이기도 했습니다. 제가 이 분을 처음 알게 된 것은 그의 저서 일본왕환일기(日本往還日記)를 읽고 나서였습니다. 이 책은 황신이 임란 중인 1596년 명나라 책봉사(冊封使) 양방형(楊方亨)과 심유경(沈惟敬)을 동행해 겪었던 153일간의 일들을 기록한 사행일기(使行日記)입니다.

 

  창강서원에서 조금 떨어진 왕진교로 자리를 옮겨 다시 자전거길을 이어갔습니다. 자왕천에 이르러 다시 강변으로 다가가 이 하천이 금강으로 흘러들어가는 합류점을 살펴본 후 자전거 길로 복귀해 백제보 쪽으로 향했습니다.

 

  1325분 백제보를 들렀습니다. 자왕천을 건너 백제큰길 아래로 이어지는 자전거길을 따라 억새를 베어내 텅 비어 있는 억새밭이 계속 이어져, 비상시에는 비행장으로 이용해도 되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소나무들이 일직선으로 도열해 서있는 길을 걸으며 저 멀리 서쪽의 끝점에 자리한 산줄기를 응시했습니다. 처음에는 제가 2007년에 종주한 금남정맥이다 싶었는데 위치가 아닌 것 같아 다시 보니 싸리봉에서 군산앞바다까지 이어지는 금남기맥 같았습니다. 한강기맥을 끝으로 종주산행을 접고 강 길을 따라 걷고 있지만 요즘도 안 가본 산줄기를 바라보노라면 저도 모르게 가슴이 뛰곤 합니다. 백제큰길과 나란한 방향의 독정교를 건너 백제보 전망대에 올라서자 이제껏 걸어온 금강이 한 눈에 잡혔습니다. 금강의 마지막 보인 백제보는 세종보나 공주보와 달리 개방을 하지 않아 소수력발전이 가능할 것 같은데 실제로 발전소가 가동되고 있는지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강 건너 청양 땅의 왕진나루터를 일별한 후 전망대에서 내려가 금강문화관을 들렀습니다. 이 문화관이 자랑스럽게 소개하는 16개의 첨단명품보는 한강의 3개보, 금강의 3개보, 영산강의 2개보, 낙동강의 8개보 등입니다. 2021118일 대통령 직속 국가물관리위원회는 전체 회의를 열어 16개 보() 중에서 세종보와 죽산보는 해체, 공주보는 부분해체, 승촌보와 백제보는 상시개방하기로 최종 의결했습니다. 단 자연성 회복과 지역 여건을 고려해 해체할 것을 제안해 해체 시기는 특정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결정을 내린 국가물관리위원회는 16개의 보를 첨단명품보로 보지 않은 것이 분명합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는 잘 몰라도 두 해가 지난 지금까지 해체된 보나 해체를 시작한 보는 단 하나도 없습니다. 이것은 물관리위원회의 결정이 얼마나 비현실적인 것인가를 잘 보여주는 사례라 하겠습니다. “백제보 수문개방은 농민을 우롱하는 행위다라는 현지 농민들의 플래카드가 걸려 있는 풍경은 2년 전에 들른 영산강의 죽산보와 다르지 않았습니다.

 

 

  1449분 고란사 건너편인 백마강 우안의 선착장을 들렀습니다. 백제보를 출발해 백마강에 이르기까지 금강 좌안의 하상부지(河床敷地)는 네모반듯한 갈대밭으로 이어졌습니다. 백마교에 이르러 자전거길을 따라 이 다리를 건너자마자 오른 쪽으로 내려가 백마교를 밑으로 지나 백마강변의 왕흥로로 들어섰습니다. 금강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백마강으로 불리는 지는 정확히 모릅니다만, 아마도 이 다리에서 백제교까지를 일컫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16년 전 부소산의 낙화암에 올라 이 강을 내려다 본 적이 있어 이번에는 그 반대쪽에서 낙화암과 고란사를 조망할 뜻에서 백마강 서안의 왕흥로로 들어섰습니다. 이 길을 따라 몇 분 걷다가 왼쪽으로 선착장이 보여 강변으로 다가갔습니다. 배 위에 한옥을 올려놓은 것 같은 커다란 목선이 정박해 있는 선착장에 다가가자 때마침 강 위를 달리는 버스가 보여 잠시 넋 놓고 바라보았습니다. 겉보기에는 영락없는 버스인데 저리도 빨리 강 위를 달린다니 참으로 신기했습니다. 알고 보니 이 버스는 물과 뭍 양쪽에서 다 달릴 수 있는 수륙양용 시티투어버스였습니다. 1536분이 되어 강 건너 부소산에 자리한 낙화암과 고란사를 사진 찍은 후 차들도 다니는 강변의 넓은 흙길을 걸어 부산의 산자락에 자리한 청룡사 삼거리에 이르렀습니다.

 

  1650분 부여버스터미널에서 27차 금강탐방을 마무리 지었습니다. 청룡사 삼거리에서 해발106.8m의 부산을 왼쪽으로 끼고 에도는 진변로로 들어선 것은 이 길을 따라 금강우회자전거길이 나 있어서였습니다. 제가 끼고 도는 부산이 백제삼산의 하나라는 것은 안내문을 보고 알았습니다. 해발121.2m의 금성산(일명 日山)과 이 산을 중심으로 2Km씩 떨어져 일직선을 이루고 있는 동쪽의 오석산(일명 吳山)과 서쪽의 부산(浮山)을 일컬어 백제삼산으로 부르는데, 백제전성기에는 세 산에 신선들이 살면서 왕래를 했다고 합니다. 진변사거리를 지나 마을 앞으로 난 자전거길을 따라 걷다가 길가에 세워진 보령도수로의 표지석을 보았습니다. 보령도수로란 서천시의 보령댐이 극심한 가뭄으로 고갈되는 것을 막고자 금강의 물을 끌어들이기 위해 낸 수로를 이릅니다. 이 도수로는 4대강의 보를 설치해 물을 저수한 것이 옳았음을 말해주는 좋은 사례가 아닌가 합니다.

 

  백제교를 건너며 길 건너 구릉에 자리한  팔작지붕집의 수북정(水北亭)을 사진 찍었습니다. 김장생(金長生), 신흠(申欽) 등과 친교가 깊었던 양주목사 김흥국(金興國, 15571623)이 인조반정을 피해 이곳으로 와서 건립한 이 정자는 부여팔경(扶餘八景)의 하나로 동쪽으로 부소산(扶蘇山)과 나성(羅城)이 자리하고 있고 정자 밑에는 백마강(白馬江)이 흐르고 있습니다. 백제교를 건너 정림사지를 들르고 싶었으나 시간이 여의치 못해 부여시외버스터미널로 직행, 오산행 버스에 올랐습니다

 

 

...................................................................................................................................

 

 

  산수(山水)를 뭍과 물로 해석하는 것은 지나치다 싶기도 합니다. 제가 이제껏 걸어온 산수 길은 산줄기와 강줄기였습니다. 백두대간과 남한 땅의 9개 정맥, 그리고 이들에게서 뻗어 나간 지맥 등을 종주해온 제가 산줄기 따라 걷기를 그만두고 강줄기 따라 걷기에 나선 것은 꼭 3년 전인 2020년입니다. 그후 열심히 걸어 섬진강과 영산강의 강줄기 따라 걷기를 마쳤고 전장 401Km의 금강도 하구까지 60Km 정도만 남겨놓고 있습니다.

 

  제가 활동무대를 산에서 강으로 옮긴 것은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강물 속으로 들어간 것은 아니어서 뭍에서 물로 자리를 이동했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이 점이 뭍과 물 양쪽을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양서류와 다른 점이라 하겠습니다. 현실 세계에서는 강 위를 걷는 것이 불가능하지만, 꿈속에서는 얼마든지 가능해, 강 위를 걷는 꿈을 꽤 여러 번 꾸었습니다. 수륙양용 버스가 물 위를 달리듯 물위를 걸어도 물속으로 빠지지 않는 신발을 신고 물 위를 걷는 꿈 말입니다. 이런 신발이 발매되는 날까지는 수륙양용버스를 타는 것으로써 대신하고자 합니다.

 

 

<탐방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