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II.백두대간·정맥·기맥/한남정맥 종주기

한남정맥 종주기13(미리내마을-가현치)

시인마뇽 2007. 1. 3. 14:20

                                             한남정맥 종주기 13 

     

                         *정맥구간:미리내마을안골도로-구봉산-가현치

                         *산행일자:2005. 12. 27일

                         *소재지  :경기용인/안성

                         *산높이  :구봉산456미터

                         *산행코스:미리내마을 안골도로-두창리고개-구봉산-천주교공원묘원-가현치

                         *산행시간:9시26분-16시43분(7시간17분)

                         *동행       :나홀로

 


  

   세모가 턱밑에 다가오자 그동안 밀린 일들을 챙겨 해 안에 마치려고 수선을 떠는 통에  뭔가 모르게 부산한 요즈음입니다. 꼭 올해 안으로 마쳐야 하는 일도 아닌데 그냥 넘기자니 찜찜해 서둘러 해내고자 하는 것은 카렌다의 위력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따지고 보면 12월31일과 1월1일이 연속선상에 있음은 12월30일과 31일 또는 1월1일과 2일과도 하등 다를 바 없습니다만, 카렌다상으로는 지나간 한해의 끝과 새로운 한해의 시작이라는 엄청난 차이가 있기에 많은 사람들이 예사롭게 넘길 수 없을 것입니다. 사람이 만물의 영장일 수 있는 것은 역사의 기록과 보존에 있다는 생각입니다. 지금까지 카렌다가 없었다면 과거와의 대화로 미래를 발전시키는 역사의 기록이 불가능했기에 사람들이 오늘처럼 이 지구를 지배할 수 있겠는가는 자신할 수 없을 것입니다.


  어제 서둘러 안성 땅을 밟은 것은 지난 9월에 시작한 한남정맥 종주를 올 안에 마치기 위해서였습니다. 반드시 해안에 끝내야 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두 번만 더하면 마무리 질 수 있는 한남정맥 종주를 내년으로 미루는 것은 오늘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말라는 카렌다의 기본 정신에 부합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었습니다. 새벽같이 일어나 산행준비를 마치고 5시40분 조금 넘어 집을 나선 것도 서기 2005년에는 길 찾기가 쉽지 않은 전장 180키로가 넘는 한남정맥을 혼자서 힘들여 마쳤다고 기록하고 싶어서였습니다. 만약 카렌다가 없었다면, 그래서 역사로 기록해 둘 수 없었다면 며칠 뒤로 미루지 꼭 어제 같이 영하 십수도의 혹한을 무릅쓰고 종주 길에 나서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아침9시26분 원삼면사무소에서 멀지 않은 미리내마을 안골도로에서 종주산행을 시작했습니다. 전철 한번에 버스를 두 번 타고 산본에서 이 고개까지 오는데 총 요금이 3,700원 든 것으로 보아 거리는 그다지 멀지 않은데 용인에서 원삼 가는 버스를 50분가량 기다리는 바람에 시간은 무려 KTX열차로 서울서 부산을 가고도 남는 3시간 40분이나 걸려 짜증이 났었는데, 들머리에 조금 못 미쳐 차도 왼쪽에 자리한 대사찰 법륜사의 단아한 색상의 단청과 높이 솟은 황금색 탑신이 때마침 맞이한 아침햇살로 화사하게 빛이 나는 것을 보고 심기가 풀렸습니다. 오른 쪽 산등성으로 올라서 얼마고 걷다 삼거리에서 왼쪽으로 표지기 하나가 걸려있어 그길로 들어선 것이 첫 번째 알바였습니다. 한참을 내려가도 더 이상의 표지기가 보이지 않고 길이 전혀 나있지 않아 산행기를 꺼내 삼거리에 오르기 훨씬 전에 왼쪽의 산소로 빠져야 하는 것을 너무 많이 올라온 것으로 확인하고 다시 원위치 하느라 20분 가까이 까먹고 알바를 한 것은 몇 집 안 되는 미리내마을을 바짝 끼고 돌면 되는 것을 개새끼가 짖어대는 바람에 서둘러서였습니다. 9시51분 왼쪽 묘지로 내려서 마을 공터를 건너 다시 야트막한 산으로 들어선 다음 절개지 위로 난 길을 따라 걷다가 시멘트도로를 건너 임도를 걸으며 직진했습니다.


  10시23분 57번 도로에 다다랐습니다.

임도를 따라 얼마고 걷다가 공장과 가옥사이를 질러 만난 아스팔트길로 들어섰습니다. 얼마 후 도착한 57번 도로 옆에 세워진 장수농원 표지석 앞에서 건너편 갈림길 표지판을 또다시 종주할 때 이정표로 삼고자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도로를 건너자 바로 위의 연안김씨 묘지 앞에서 어슬렁대던 허연 개 한 마리가 저를 보고 슬그머니 사라져 재빠르게 묘지를 지나 하얀 눈이 곱게 덮인 넓은 흙길을 걸었습니다. 왼손에 산행기와 지도를 들고 있는 저를 보고 한 할아버지가 무엇을 조사 중이냐고 말씀하시어 아니라고 했더니 그러면 한남정맥을 종주하고 있느냐고 다시 물어 오셔 그렇다고 말씀드리자 제게 설명을 요청하셨습니다. 4-5분 궁금해 하시는 것을 설명을 드리고는 두 번째 종주 중 김포에서 포도밭 옆을 지나는 저를 불러 세워 막무가내로 다른 데로 돌아가라던 한 할아버지가 생각나 한남정맥 종주에 따뜻한 관심을 표하시는 이 할아버지에 고맙다고 인사를 드렸습니다.


  10시 41분 시멘트 길에서 오른 쪽으로 꺾어 조림지를 거쳐 산길로 들어서자 잡풀이 길을 막아도 마음은 편했습니다. 한남정맥은 고도가 낮은 곳이 많아 정맥 길에 도로가 나있거나 집들이 들어 선 곳이 꽤 여러 곳 있습니다. 뭔가 불안하고 찜찜한 기분으로 이런 길을 걷다가 산길로 들어서면 비로소 마음이 편해지는 것으로 보아 저도 어쩔 수 없는 산 꾼이기 때문 일 것입니다. 나지막한 산 밑으로 목장이 들어서 있고 목장 앞의 너른 들판은 사료용 밭으로 개간 된 듯싶은데 흰눈이 밭을 덮어 확인할 수 없었습니다. 축사 밖 해가 드는 곳에서 여러 마리의 젖소들이 햇볕을 쬐며 노닐고 있었는데 이 나라 젖소들이 이 추운 겨울을 잘 견뎌서 내년에도 어김없이 젖이 줄줄 나와 주면 좋겠다고 생각한 것은 그래야 목장주인들이 행복하고, 또 시골에서 젖소를 기르고 있는 형님도 한시름 놓을 수 있을 것 같아서였습니다. 가좌리교회 옆 도로를 건너 소나무가 울창한 송림으로 들어서 한적한 산길을 걷는 동안 며칠 전 칠장산에서 한남정맥 종주를 시작해 한국의 산하에 산행기를 올린 구름나그네님의 초록색 표지기를 만나 반가웠습니다.


  12시5분 극동기상연구소 정문을 지났습니다.

37분전에 산에서 내려와 패미리승마장 입구에서 이곳까지 평지의 좁은 시멘트차도를 걸었습니다. 시멘트 길을 따라 논 뜰을 가로 지른 후 극동기상연구소 담을 따라 얼마고 걷다가 성급하게 왼쪽으로 벗어난 것이 두 번째 알바의 원인이었으며, 넓은 차로로 나섰다가 정문으로 돌아가 산행을 이어가기까지 또 10여분을 날려버렸습니다. 담을 높게 세워 외부인의 접근을 막은 이 연구소 안에 세워진 접시모양의 기상관측기구가 엄청 컸고 그 숫자도 꽤 됐습니다. 연구소 이름으로 보아 극동지역의 기상을 주로 연구하는 것으로 짐작되는데 경계가 저리도 삼엄한 것은 혹시나 북한 땅의 기상연구를 대신해 주어서가 아닐까 하는 쓸데없는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정문에서 두창리 고개까지는 솔밭사이로 S자 형 커브의 아스팔트길이 잘 나있어 걸어서 10분 걸렸습니다.


   12시44분 무명봉에 올라 점심을 드는 동안 바람 하나 불지 않고 햇빛이 따사로워 이번에는 손끝이 아려오지 않았습니다. 두창리고개에서 절개지를 따라 능선으로 올라 임도와 산소를 지나 해발 240미터의 무명봉에 오르는 동안 눈이 제법 많이 쌓여 겨울산행의 묘미를 한껏 즐겼습니다.  이 봉우리에 올라서자 산 밑 왼쪽으로 두창리 저수지가 보였고 정면 먼발치에 구봉산의 연봉들이 점잖게 자리  하고 있었습니다. 10분을 쉰 후 구봉산을 향해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겨 18분 후 삼각점이 있는 282봉에 올라섰다 왼쪽으로 내려서 안부에 이르러 이번산행 중 처음으로 표지목을 만났습니다. 왼쪽으로 두창리저수지 길이 나있는 안부를 출발하여 얼마 후 운동기구가 세워진 쉼터와 잘 지은 목조주택을 차례로 지나자  오른쪽으로 흰눈이 필드를 덮은 태영CC가 확 눈에 들어왔습니다. 


  13시57분 된비알의 길을 천천히 걸어 석술암산-구봉산 갈림길의 산등성에 올랐습니다.

경사가 급한데다 눈이 많이 쌓여 산 오름이 편하지 않았지만 282봉에서 땀 흘리며 걸어온 길을 산등성에 올라 뒤돌아보니 어느 한곳도 막힘이 없이 시원하게 보여 좋았습니다. 이 갈림길에서 왼쪽의 석술암산 길, 오른쪽의 구봉산 길과 이제껏 걸어온 능선 길을 모두 카메라에 담고 나서 구봉산을 향해 오르막길을 치고 올랐습니다. 부지런히 걸어야 저녁 5시안에 목적지인 가치현에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아 마루금에 포진하고 있는 구봉산의 연봉들을 서둘러 지나느라 해발 469미터의 구봉산을 오르지 않고 그냥 우회해 버린 것을 산불감시초소에 다다라서야 알았습니다. 석술암산-구봉산 갈림길에서 나무에 표찰이 걸려있는 465봉에 다다르기까지 40분 가까이 광활한 태영CC를 끼고 도는 정맥 길을 걷는 중 산 밑의 골프장에서 불어오는 세찬 바람을 맞았는데 이 바람이 이번 산행 중 가장 매서웠습니다.


  15시13분 해발 413미터의 달기봉에 올랐습니다.

465봉에서 왼쪽으로 확 꺾어 나무계단 길로 내려가자 얼마간 평평한 편한 길이 이어졌습니다. 이 길을 지나 아무도 지나지 않은 등산화 목까지 차는 눈을 밟으며 달기봉에 올라서기 까지 길안내를 해 준 것은 산짐승들의 발자국이었습니다. 작년 3월 대설 그 이튿날 경기 포천의 죽엽산을 오르내리며 확인한 바와 같이 산 짐승들이 눈이 쌓인 등산로를 용케도 알아내 주로 그 길로만 다니는 것 같았습니다. 이 짐승들이 눈 덮인 산길에 발자국을 남겨 훌륭하게 길안내를 해주어서 정말 고마웠습니다. 달기봉에서 왼쪽으로 내려서 구봉산-황새울 표지판이 서있는 십자안부를 지나 나무계단을 밟고 산등성으로 올라서다 오른 쪽으로 꺾어 쉼터를 지났습니다.


  16시13분 이번 산행의 마지막 봉우리인 364봉에 올라섰습니다.

쉼터를 지나 얼마 후부터 오른쪽으로 수원교구 천주교공원묘지를 끼고 돌며 조금씩 고도를 높여 바로 밑에 송전탑이 서 있는 364봉에 오르기까지 거대한 주검들을 만났습니다. 한 교구의 공원묘지가 저리도 거대한데 서울교구의 공원묘지는 어떠할 것이며 다른 교구는 또 어떠할까 ,여기에 다른 종교까지 생각이 미치자 장례문화가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우리의 산하가 살아남을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저 같은 산 꾼들에는 화장 후 나무하나를 정해 그 밑에 뼈 가루를 묻는 수목장이 가장 제격일 것 같습니다.  나무가 수명을 다하면 그 나마의 흔적도 사라지는 것이 아닐까 해서 아쉬울 수도 있겠으나 죽어 없어지는 나무와 같이 죽은 자의 기억도 함께 지워져야 뒤를 이어 살 사람들이 그들의 역사를 쓸 여백이 남을 것입니다.


  16시43분 안성의 삼죽면과 보개면을 경계 짓는 가현치고개로 내려서서 7시간 조금 넘는 종주산행을 마쳤습니다. 공원묘지 도로에서 가현치고개로 내려서는 길이 경사가 심하고 풀들이 무성해 아주 짧은 내림 길이었지만 잔뜩 긴장했었습니다. 택시를 불러 5천원에 삼죽면소재로 나가 안성 가는 버스를 갈아탔습니다. 안성에서 버스로 평택으로 나가 전철로 산본까지 왔는데 가현치고개의 날머리에서 집으로 돌아오기 까지 2시간 30분이 걸려 이보다 훨씬 거리가 짧은 집에서 용인 원삼의 들머리까지 소요된 3시간 40분보다 무려 1시간 10분이나 덜 걸렸습니다. 이번 산행으로 먼 길을 이동해 종주할 때에는 무엇보다 집에서 들머리, 또 날머리에서 집까지 교통정보를 숙지하는 것이 급선무라는 것을 절감했습니다.


  기왕에 올 안에 끝내겠다고 작정했기에 이틀 후 다시 안성을 찾을 생각입니다.

우선 교통편을 자세히 알아보고 칠장산에서 한남정맥 종주를 성공리에 마침을 자축하고자 맥주 1캔을 넣어갈 뜻입니다.

 

 

                                                        <산행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