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II.백두대간·정맥·기맥/한남정맥 종주기

한남정맥 종주기11(42번국도-무네미고개)

시인마뇽 2007. 1. 3. 14:05
                                              한남정맥 종주기 11


                              *정맥구간:42번국도-부아산-함박산-무네미고개

                              *산행일자:2005. 12. 14일

                              *소재지  :경기 용인

                              *산높이  :부아산403미터/함박산349미터

                              *산행코스:42번국도-부아산-함박산-무네미고개

                              *산행시간:9시50분-14시20분(4시간30분)

                              *동행       :나홀로

 


 

   어제는 작정하고 종주구간을 짧게 잡아 바동대지 않고 느긋하게 걸어 일찌감치 산행을 마쳤습니다. 용인정신병원에서 얼마 안 떨어진 42번국도상의 고개 마루에서 시작하여 은화삼 골프장을 지나는 45번국도의 무네미 고개에 이르는 이번 구간은 용인 시내를 중심으로 반원을 그리며 북서쪽에서 남동쪽으로 뻗어나가는 산줄기로 1980년대를 몽땅 이곳에서 살면서 두 아들을 키워낸 제게는 쏜살같이 내달려 지나쳐 버리기에는 아쉬운 구간이어서 될 수 있는 대로 천천히 걸으며 옛 추억을 반추하느라 모처럼 긴 호흡을 할 수 있었습니다.


쌓여가는 추억거리를 기록하여 정리해 두면 역사가 됩니다.

기록이 역사와 추억을 가름하는 잣대라고 생각하는 것은 기록으로 말미암아 정리되고 자료화되어 사적차원의 추억이 공적차원의 역사로 전환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많은 분들이 옛일들을 기록하여 공표하지 않고 개인차원의 추억으로 간직하고 싶어 하는 것은 역사로 남겨두었다가는 언제 어디서 후손들에 의해 “역사바로잡기”나 “과거사 규명”작업등으로 난도질당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도 용인에서의 삶이 특별히 넉넉하고 아름다웠던 것은 아니었지만 이번 나들이 중에는 냉혹한 역사가 아닌 정감 가는 추억만을 되새기기로 마음먹고 길을 나섰습니다.


  아침9시50분 용인시내와 구성읍을 경계 짓는 42번국도의 고개 마루에서 산행을 시작했습니다. 이번에는 1978-91년의 13년간 살았던 용인 시내를 에워싸고 있는 산줄기만 오르내리고자 워낙 구간을 짧게 잡은 터라 햇살이 퍼진 후 산행을 시작해도 충분할 것 같아 8시가 넘어서 산본 집을 나섰습니다. 수원역에서 용인행 버스를 타고 한 시간가량 달려 용인정신병원 앞에 도착, 공사장안으로 들어가 오르다가 고개 마루 조금 못 미쳐서 오른쪽으로 난 길을 조금 걸은 후 바로 왼쪽 산등성으로 치고 올라 절개면 꼭짓점에 다다르자 오른 쪽으로 정맥 길이 잘 나있었습니다. 흰눈이 길을 덮어 아침의 냉기가 더욱 냉랭하게 느껴지는 산길이 얼마 후 넓은 차로와 합류했다 다시 벌어졌습니다. 마루 금 턱밑에 나란히 나있는 찻길을 버리고  산길을 걸은 것은 제가 한남정맥을 종주해서이지 그냥 용인 시내의 뒷산을 오르는 것이라면 찻길을 따라 걷는 것이 훨씬 쉬워 보였습니다.


  10시26분 ABC No.65의 송전탑이 들어선 넓은 공터에 올라서자 용인읍내가 한눈에 들어왔습니다. 공터를 채운 억새풀이 다정하게 느껴졌고 바람한점 없는 조용한 이 아침을 덥히는 햇살이 따사로워 마냥 평화롭고 안온했습니다. 전세 살던 용인 시내 마평리에서 김량장리의 언덕바지에 자리 잡은 한 아파트를 장만해 이사 가던 1979년 가을 어느 날  아파트 바로 앞에 잘 다듬어진 묘지와 논 뜰을 보고서 느꼈던 안온함이 다시 살아나는 듯 했습니다. 어느 누가 한 겨울에 따뜻함을 얻고자 하거나 땡볕 복더위에 시원함을 느끼고자 산줄기만 이어 걷는 종주에 나서겠느냐 할지 모르겠지만 이는 종주산행의 묘미를 모르고서 하는 얘기들입니다. 발을 동동구루는 혹한의 추위에 발발 떨다가도 바람이 불지 않는 양지바른 곳을 지날 때의 따사로움은 난방설비가 잘된 사무실이나 아파트에서 결코 느낄 수 없는 행복감을 안겨줍니다. 무거운 짐을 지고 치받이 길을 오르느라 온 몸이 땀에 흠뻑 젖어 있다가도 정상에 올라 산 밑에서 불어올라오는 골바람이 스치고 지나갈 때의 그 시원함에는 도시의 에어컨 바람에서 결코 느낄 수 없는 자연이 배어있습니다.


  11시 정각 용인에서 영진골프랜드로 이어지는 지방도로를 건넜습니다.

한남정맥을 들어내고 낸 이 길이 그리 오래되지 않은 새 길인 듯싶은데 왜 터널을 뚫지 않고 돈들이고 힘들여 산을 도려내는 가 잘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대간 길에는 옛날에 산줄기를 잘라 내고 낸 차도의 고개 마루 여러 곳에 다시 생태다리를 놓느라 부산한데 말입니다. ABC N0.65 송전탑에서 남동쪽으로 꺾어 이 고개 마루에 이르기 까지는 간간이 임도를 걷는 등 산행하기 편했고 정맥 길 양 밑으로는 “살아 진천, 죽어 용인”이라는 옛 이야기가 무색해질 정도로 아파트들이 잔뜩 들어서 있었습니다. 정맥 길을 걷는 동안 한두 번 전투기의 굉음이 귀청을 때려 나중에 여객기 지나는 소리 정도는 한결 조용하게 느껴졌습니다. 고개 마루 직전의 ABC No.23 송전탑에서 왼쪽으로 나있는 길을 따라 내려서다가 만난 절개지를 철 계단을 따라 걸어 내려섰습니다.


  11시37분 해발403미터의 부아산을 올랐습니다.

왕복2차선인 지방도로를 건너 다시 절개지를 올라서자 먼저 오른 분들의 표지기가 정맥 길을 인도했습니다. 능선 왼쪽의 골프연습장에서 공을 치는 소리가 들려왔고 오른 쪽 넘어 산자락에 자리 잡은 골프장에 흰눈이 쌓여 시원스레 보였습니다. 작년 한해 같이 산을 올랐던 서울대AFB산악회의 한 사장님이 전화를 해 와 저녁 식사를 같이 하기로 약속을 하고 나서부터는 조금 산행을 서둘렀습니다. 로프가 쳐진 마지막 고바위 길을 올라서자 이동통신탑이 세워져 있었고 조금 더 올라 육각정이 차고앉은 넓은 공터의 부아산 정상에 다다르자 몸놀림이 잽싼 박새 한마리가 인사를 해왔습니다. 육각정에 걸터앉아 용인시내를 내려다보며 그동안 변모된 시내를 조감했습니다. 빽빽이 들어선 고층아파트가 시내를 넓혀가 용인시내 어디에서도 옛날의 여유로움을 되찾기 어려워져 흙과 더불어 놀 수 있도록 일찌감치 이곳에서 애들을 키우기를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5분을 넘겨 쉰 후 길안내가 없는 표지목을 뒤로 하고 용인대를 향하여 부아산 정상을 출발했습니다.


  12시15분 하고개 위를 지났습니다.

절개면을 조심해 내려서자 양 절개면 사이에 대략 축구장 1/5만한 넓은 공터가 나타났는데 이 공터가 바로 하고개 고개마루에 놓은 생태다리 덮개부분이라 합니다. 왼쪽 바로 옆에 자리한 용인대 캠퍼스까지는 어머니와 집사람과 함께 큰아들 돌 즈음에 유모차를 끌고 봄나들이를 나섰던 것으로 기억됐습니다. 왼쪽 북사면에 쌓여있는 흰눈을 밟을 때 나는 사각사각 소리가 산을 오르는 발걸음을 가볍게 했습니다.


  12시42분 삼각점이 세워진 338봉에 오르는 동안 오른쪽 남사면의 서울공원묘지에 꽉 들어찬 묘지에 놓여 있는 색색의 조화가 눈길을 끌었습니다. 봉우리에 올라서자 북서쪽으로는 지난번에 오른 석성산이, 북동쪽으로는 모현의 정광산이, 동남쪽으로는 제가 18년간 몸담았던 쌍용그룹이 한동안 소유했었던 은화삼 골프장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338봉에서 솔밭을 지나 안부로 내려섰다 명지등산로로 명명된 길을 따라 올라 산불감시초소가 서있는 봉우리에 다다르자 옛날 애들과 함께 자주 들러 돼지삼겹살을 구워 먹던 명지대에 인접한 자그마한 저수지가 눈에 잡혔습니다. 명지대 캠퍼스와 이 저수지는 용인 집에서 먼 거리가 아니어서 휴일이면 가족들과 함께 자주 찾았던 곳으로 오가는 산길과 논길은 애들이 시골정취를 한껏 맛볼 수 있었던 훌륭한 학습의 장이었습니다. 이 훌륭한 학습의 장에서 올곧게 성장한 두 애들 모두 이제 제 몫을 다하고 있음을  애들 할머니와 어머니에 고하고자 합니다.


  13시22분 낡은 표지목이 서있는 해발349미터의 함박산을 올랐습니다.

정신병원 고개 마루에서 이곳 함박산까지 정맥 길을 안내한 것은 송전탑이었습니다. 숱하게 많은 송전탑을 세우느라 낸 길인지 확실치는 않지만 덕분에 임도가 잘 나있고 정맥 길도 사람들이 많이 다녀 별 어려움 없이 3시간 반 남짓 걸어  함박산에 올랐습니다. 앞으로 좀처럼 이 산을 다시 찾을 일이 없을 것 같아  표지목 앞에 배낭을 세워놓고 사진을 찍었습니다. 함박산에서 내려다 본 명지대 캠퍼스에도 시내처럼 건물들이 잔뜩 들어서 옛날보다 훨씬 답답하게 느껴졌습니다. 따끈한 커피로 몸을 덥힌 후 무네미고개로 향했습니다. 서서히 고도를 낮추며 산길을 걷는 동안 시민묘지를 지나고 제법 넓게 자리 잡은 개인 묘지를 또 지나 “살아 진천, 죽어 용인”을 실감했습니다. 3번을 낙선한 한 후보가 조상분의 묘지를 이곳 용인으로 옮긴 후 대통령에 당선된 것이 꼭 묘 자리를 잘 쓴 결과만은 아니겠지만 용인 땅의 성가를 높이는데 기여한 것만은 분명했을 것이기에 이래저래 용인 땅은 편히 쉴 날이 없겠다 싶었습니다.


  14시20분 45번국도의 무네미 고개에서  산행을 끝내, 대간 길과 정맥 길을 걸으며 처음으로 일찍 종주산행을 마쳤습니다. 20분전에 건넌 이천-평택 간 고속화도로는 최근에 개통 된지 몇 해 안된 것 같았습니다. 질주하는 차들이 겁이나 웬만하면 돌아가고자 했으나 얼마를 걸어야 하는 지 판단이 서지 않아 별 수 없이 위험을 무릅쓰고 중앙분리대를 넘어 도로를 건넜습니다. 철 계단을 따라 절개면 꼭짓점으로 올라서 오른쪽으로 난 길을 따라 한참을 걷다가 이상해 다시 돌아서 되짚어 오다가 오른 쪽으로 내려선 곳이 무네미고개의 한우촌 바로 옆이었는데 길을 잘못 들어 직전에 도랑을 건너 어제도 알바를 면하지 못했습니다. 절개면 꼭짓점에서 오른 쪽으로 진행하다 첫 번째 산줄기를 타고 왼쪽으로 꺾어 내려서야 옳았다고 생각됐습니다.


  한우촌에서 갈비탕과 맥주 한 병을 시켜들며 개념도를 꺼내 다음에 오를 종주코스를 일별했습니다. 점심식사를 마치고 용인시내 터미널로 걸어 나와 인근의 다방을 들러 잠시나마 시내 정취를 되새겨보는 것으로 용인나들이를 전부 마쳤습니다. 급속한 인구증가로 용인시내가 과밀화, 광역화되었고  이에 따른  주택건설과 도로신설이 불가피해 산허리가 잘려나가고 옛날 논밭이 대부분 택지로 전환되어 시내에서는 옛  정취를 맛볼 수 없어 아쉬웠지만 시내를 에워싸고 있는 산줄기를 휘돌며  용인 땅의 정기를 느낄 수 있어 다행이었습니다.


  결혼 그 이듬해부터 13년을 살았던 용인 땅은 어머니와 집사람의 체취를 느낄 수 있는 곳이기에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용인구간의 한남정맥을 지났습니다. 다음 구간부터는 올 안에 한남정맥 종주를 마치고자 다시 속력을 내어 뛰어 볼 생각입니다.

 

 

                                                            <산행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