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II.백두대간·정맥·기맥/한남정맥 종주기

한남정맥 종주기7(397번도로-47번국도)

시인마뇽 2007. 1. 3. 13:58
                                         한남정맥 종주기 7


                   *정맥구간:397번도로-목감사거리-수암봉-47번 국도

                   *산행일자:2005. 11. 13일

                   *소재지  :경기 안산, 광명, 군포

                   *산높이  :수리산475미터/수암봉398미터/운흥산205미터/감투산185미터

                   *산행코스:금이사거리-방죽재-운흥산-목감사거리-223봉-수암봉-수리산

                       -감투봉-47번국도

                   *산행시간:7시45분-17시48분(10시간3분)

 


 

  수원 광교산의 형제봉 바로 밑 한남정맥 길에 세워진 표지판에는 “그 곡절 많은 사랑은 기쁘던가 아프던가 ”로 시작하는 박 재삼님의 시 “산에서”가 실려 있습니다. 누구라도 한남정맥 종주가 기쁘던가 슬프던가 물어 온다면 저는 먼저 형제봉에 올라 “진실로 산이 겪는 사철속에 아른히 어린 우리 한 평생”을 노래한 그의 시를 먼저 읽어 볼 것을 권해 드린 다음, 둘 다라고 답할 뜻입니다.


  미지의 정맥 길을 종주하고자 아침에 집을 나설 때면 작은 흥분이 일고 가슴이 설레곤 합니다. 이 흥분이 저를 들머리로 이끌고 또 이 설렘이 종주 길을 이어가 날머리로 나서게 합니다. 백두대간에 비하면 산 높이가 상당히 낮고 산세도 훨씬 덜 험하지만, 이미 길이 훤하게 뚫린 대간과는 달리 낙엽이 살짝만 깔려도 사람이 다닌 흔적을 좀처럼 찾기 어려운 정맥 길을 지도와 선답자의 산행기만 가지고 어렵사리 길을 찾아 이어갈 적마다 온 몸이 짜릿한 쾌감이 느껴지고 무슨 일이든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가슴이 뿌듯해집니다. 그런데 한남정맥은 이 뿌듯한 기쁨만으로는 종주 길을 이어갈 수가 없습니다. 한남정맥은 사람들이 모여들어 인구가 계속 늘어나는 경기도를 관통하기에 각종 명목의 개발 공사로 산허리가 잘린 곳이 부지기수입니다. 도로를 내느라, 집을 짓느라, 공장을 만드느라 이런 저런 이유로 잘리고 뜯기고 뭉그러진 한남정맥을 걷노라면 우리의 산하에서 다른 생물들은 몽땅 내쫓고 사람들만 아옹다옹 싸우며 살기로 작정한 것이 아닌가 싶어 분노하고 절망할 때가 많습니다. 안산의 방죽재에서 시작하여 수암봉을 거쳐 군포의 47번 국도에서 종주산행을 끝낸 어제도 그러했습니다. 서울외곽순환고속국도, 서해안고속국도와 수인산업도로, 그리고 몇 개의 국도와 지방도로가 한남정맥을 수 없이 동강냈고 목감사거리의 시가지가 낮은 산을 밀어내 정맥의 흔적조차 없앴으면서도 생태다리 하나 놓지 않은 사람들의 이기심이 가득 찬 서글픈 현장을 지나며 정맥 종주가 기쁘던가 아니면 아프던가 하고 몇 번이나 자문했습니다.


아침7시45분 397번 도로의 고개 마루에서 군부대정문 맞은편의 사격장안으로 들어섰습니다. 방죽재 다음역인 금이사거리에서 하차하여 오른 쪽의 397번도로를 따라 걸어 고개마루에 다다라 오른 쪽으로 꺾어 들어선 사격장 초입에서 왼쪽 능선으로 붙어 부대 울타리를 따라 오르다가 8부 능선쯤에서 오른쪽으로 조금 내려선 곳의 철조망을 건너 산 밑으로 내려가 방죽재의 GS칼텍스 주유소에 닿았습니다.


  8시 정각 방죽재에서 42번 국도를 건너 절개면을 따라 능선으로 올라서 얼마고 진행하다 서울외곽순환고속국도로 내려섰습니다. 갓길을 따라 안양방향으로 수분을 걷다가 왼쪽으로 내려서 지하통로로 고속도로를 건넜습니다. 지하도를 통과해 절개면으로 올라선 다음 능선 길을 따라 반원을 그리며 전진해 기독교공원묘지에 다다랐습니다. 11월 들어 꽃을 피운 진달래와 철쭉나무를 몇 곳에서 보았지만 어제 묘지에서 본 진달래 한 그루는 가지가지마다 꽃을 가득 피워 마치 봄꽃을 보는 듯했습니다.


  8시58분 공원묘지에서 방죽재와 물왕리를 잇는 시멘트 길의 도리재로 내려섰습니다.

도리재에서 경사가 완만한 산 오름을 계속하다가 길 위에 쓰러져 있는 거목들을 넘으며 가파른 산길을 올라 운흥산 갈림길에 이르렀습니다. 갈림길에 오르는 중 몇 곳은 길이 분명하지 않아 잠시 산행을 멈추고 산행기와 지도를 찾아보곤 했는데 곳곳에 표지기가 걸려있어 도움이 되었고 그중 "한국의 산하“사이트에 종주기를 올린 육덕 이 병구님의 표지기를 만나 반가웠습니다.


  9시31분 정맥에서 서쪽으로 약간 비껴있는 해발 205미터의 운흥산을 들렀습니다.

관악산, 청계산과 수리산의 관모봉, 태을봉과 수암봉이 북동쪽에서 남동쪽으로 원근을 이루며 펼쳐져 있었고 서쪽 산 밑에는 신현로 건너 넓은 뜰에 물을 대는 물왕저수지가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정상에서 8분을 쉬고 나서 다시 갈림길로 돌아가 정맥 길을 이어갔습니다. 능선 길을 오르락내리락하며 산불감시초소가 서 있는 203봉을 오른 다음 시멘트나무로 만든 계단 길을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 180봉을 올랐고 또 다시 안부로 내려섰다 평평한 공터의 150봉에 오르는 중 잘 닦여진 이 길로 운흥산을 오르는 산객들을 여러분 만났습니다.


  150봉에서 내려서 서울외곽순환고속국도를 건너는 일이 그리 쉽지 않았습니다.

철계단을 따라 내려가다 만난 시멘트 길을 따라 오른 쪽으로 옮겨 송전탑에서 풀을 헤치고 내려가 지하도를 건넌 다음 오른쪽으로 치고 올라가 다시 고속도로에 바짝 붙은 길을 따라 잠시 안현방향으로 거슬러 올라가다가 오른 쪽의 들머리로 들어서 능선으로 헤치고 올라서야 했습니다. 능선에 올라선 후 가시 철망을 밑으로 통과하여 오른 쪽의 능선을 따라 올라 102봉에 다다른 시각은 10시36분으로 도로건너 산불감시 초소를 출발한지 50분 후였습니다. 고속도로를 건너는 생태다리라도 있었다면 산짐승들도 자유롭게 넘나들 것이고 저도 20분이면 충분했겠다 싶으니까 최근의 환경운동을 무책임한 이기주의로 질타하는 제 눈에도 너무 개발 밖에 모르는 것으로 보여 안타까웠습니다. 돌무덤이 정겨워 보이는 102봉에서 사과를 먹느라 6분을 쉰 후 한남정맥이 깎여 뭉그러져 흔적을 감춘 목감사거리로 내려섰습니다.


  목감사거리에서 지하도를 건너고 도로를 횡단해 대각선 위치의 한강조경원 안으로 들어서 다시 절개면 위에 올라섰습니다. 오른 쪽의 오거리방향으로 나가다 목감우회도로로 내려서는데 풀려있는 개 두 마리가 저를 보고 덤벼들 듯이 짖어대며 쫓아올라와 별수 없이 다시 절개면으로 되돌아와 삼거리로 하산해 건널목이 없는 왕복 4차선 도로를 건너자 정말 짜증이 났습니다. 도로를 따라 오거리로 내려가다 왼쪽으로 꺾어 서해안고속국도를 밑으로 건넌 후 얼마고 직진하다 왼쪽 산으로 들어서 시계를 보니 벌써 11시42분이었습니다.


  도대체 금이사거리를 출발해 목감사거리 권역을 빠져 나오기까지 약 5시간 동안 한남정맥의 허리를 잘라 내고 낸 차로를 얼마나 건너 여기에 와있는가 점검해보고 저도 놀랐습니다. 부대 앞 397번 도로를 시작으로 방죽재에서 수인산업도로와 서울외곽순환고속국도를 건넜고 다시 150봉에서 내려와 서울외곽순환고속국도를 건넜습니다. 목감사거리에서 수인산업도로와 목감대로를 건넜고 얼마 후 목감우회로와 서해안고속국도를 건넜으니 모두 8번을 건넌 셈입니다. 잘리고 뜯기고 헐리고 뭉그러져 일찌감치 원형을 잃어버린 한남정맥은 지금도 여기저기서 공사 중이어서 앞으로도 계속해 더 많이 잘리고 정맥 길이 끊길 것이 분명해 칠장산까지 종주를 끝낸 후 또 다시 종주 길에 나서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때때로 끊어진 길에 들어 당황해 하다가 다시 제 길로 접어들었음을 표지기로 확인할 때의 기쁨은 바로 정맥종주의 원동력입니다. 서너 번 낮은 고개 마루를 건너 군부대 철망을 만났습니다. 이 곳에서 똑바로 능선으로 치켜 올라가 통신탑이 서있는 군부대 철망을 만나 오른쪽으로 이 철망과 나란히 걸어가며 마루금을 이어가면서 성 봉현님이 지나쳐버려 사격장까지 내려갔다는 첫 번째 지능선에서 오른 쪽으로 내려서 그분의 실수를 피했습니다. 이번 코스를 일요일에 잡은 것도 혹시 잘못해 이 밑의 사격장으로 내려설까 두려워서였는데 그분의 자세한 산행기 덕분에 무사히 통과해  고마웠습니다.


  12시39분 아까시아 나무가 가득 들어선 넓은 안부를 지났습니다.

어느새 단풍들이 다 떨어져 황갈색의 낙엽이 길을 덮고 있었는데 여기 이 안부만은 새파란 풀밭이 마지막 푸르름을 견지하고 있어 지나기가 상큼했습니다. 가시가 많이 나있고 번식이 너무 잘되어 산을 버린다는 아까시아 나무 밑에서만 어째서 저렇게 풀들이 파랗게 자라고 있을 까 궁금해 잠시 쉬며 이 정경을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13시32분 223봉에서 숨을 고르며 사과로 요기를 했습니다.

능선을 따라 삥 둘러 처진 군부대 울타리에 바짝 붙기도 하고 능선에서 조금 떨어진 9부 능선쯤에서 삥 돌아가기도 하며 힘들게 223봉에 올라섰습니다. 능선 길 여기저기가 암릉으로 되어 있어 위험한 암릉을 피하고자 9부 능선에 나있는 길을 탔는데 길 찾기가 쉽지 않아 긴장을 풀지 않고 산행을 해서인지 223봉에 올라 맞은편의 수암봉이 가까이 보이자 맥이 풀렸습니다. 오전에는 끊어진 길과 싸우고 오후 들어서는 군부대 울타리를 따라 오르느라 힘이 많이 빠졌습니다. 한 시간 이상 계속된 울타리 옆길을 지나는 중 안부 오른쪽으로 내려서는 갈림길이 딱 한곳에 있어 뭣하면 그 길로 탈출할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14시37분 해발 398미터의 수암봉에 올라서자 발 디딜 틈이 거의 없었습니다.

223봉에서 수암봉까지는 길도 잘 나있고 지난 5월에 수암봉을 한번 오른 터라 쉬지 않고 내달렸습니다. 22분전에 올라선 순례자성당 갈림길의 봉우리에서 수암봉까지 넓은 길은 푸른 소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어 인근의 주민들이 자주 찾아 쉬는 곳입니다. 시간이 많이 늦어져 사진만 몇 커트 찍고 바로 수리산으로 향했습니다. 헬기장으로 내려섰다 다시 고도를 높여 안산으로 갈리는 갈림길에 올라섰습니다.


  15시14분 이 갈림길에서 때늦은 점심을 들었습니다.

수원의 지지대고개까지 진출하기는 너무 늦었고 47번 국도에서 산행을 끝내기도 쉽지 않겠다 싶어 서둘러 군부대가 들어선 수리산과 슬기봉을 옆 질렀습니다. 슬기봉 우회길을 지나기가 이번이 세 번째인데 한겨울 눈길을 지나기는 위험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6시9분 슬기봉을 옆질러 고개사거리에 내려서기 직전에 오른 쪽 길로 올라섰습니다. 순례자성당길 갈림길에서 이곳까지는 이미 다녀온 길이라 수월했는데 여기서부터 다시 처음으로 밟는 길이어서 긴장됐습니다. 수리산 정상에서 내려서는 능선길인지 슬기봉에서 시작되는 능선길인지가 분명치 않아 이길 저 길을 들락날락하느라 십 수분을 까먹은 후에야 한 젊은이에 지도를 보여주며 물어 슬기봉에서 뻗어 내려간 능선을 타야 47번 국도로 이어짐을 알았습니다. 급경사의 내리막길을 서둘러 하산 한 후 곧게 난 넓은 길을 부지런히 걸었습니다. 용진사로 갈리는 쑥고개쉼터를 지나 258봉으로 내달렸습니다.


  17시5분 258봉을 지났습니다.

시간만 여의하다면 천천히 걸으며 여유를 느낄만한 길을 서둘러 내달려야 해 아쉬웠습니다. 258봉에서 도장터널 위를 지나 해발 185미터의 감투봉까지 저보다 4년 연배인 한 남자분과 동행을 했는데 그 분은 평생의 꿈인 설악산 대청봉을 오르고자 거의 매일 같이 3-4시간 씩 걷기운동을 하고 있다합니다. 감투봉을 우회해 그분과 작별인사를 나누고 헤드랜턴을 꺼내 찼습니다. 이곳에서 오른쪽으로 난 길을 따라 깜깜해지기 전에 산행을 마치고자 쉼 없이 뛰었습니다.


  17시48분 47번 국도변의 “숲속의 오리학교” 음식점 옆으로 내려섰습니다.

오른쪽의 보건소사거리로 옮겨 GS칼텍스주유소 앞에서 산본가는 버스를 잡아 타 약 11시간동안의 하루산행을 마쳤습니다. 산행기를 쓰면서 47번 국도변으로 내려온 지점이 맞는가를 점검해본 결과 이번에도 문스힐 레스토랑에서 오른 쪽으로 한참 비껴선 곳으로 내려와 마지막에 잘못 하산하는 그동안의 실수를 반복했습니다.


7번의 한남정맥 종주 중 정맥 길을 제대로 밟은 것은 인천 구간을 지나는 4번째와 5번째  종주산행의 딱 두 번이었습니다. 나머지 5번은 마지막에 엉뚱한 길로 하산해 마루금을 온전하게 밟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정맥종주가 기쁜 것은 정말 어렵고 힘들게 길을 찾아 마루금을 밟는다는 가슴 뿌듯함 때문입니다. 산속에서 사람 다닌 흔적이 별로 없거나 아예 사라져 길을 잃고 알바를 하는 것으로 정맥종주가 아프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제 다리가 아픈 것은 얼마든지 참아 내겠는데 사람들만 당장 잘 살아보고자 마구 허리가 잘려지는 한남정맥이 신음하는 것을 현장에서 지켜보고 듣는 것이 아픔입니다. “진실로 산이 겪는 사철 속에 아른히 어린” 산 꾼들의 한평생은 기쁨과 아픔으로 점철되었으려니 “젊어 한창 때 그냥 좋아서 어쩔 줄 모르는 기쁨이어든 여름날 헐떡이는 녹음에 묻혀들고 연중 들어 간장이 저려오는 아픔이어든 가을 날 울음 빛 단풍에” 젖어 들거라“하는 박 재삼님의 시를 다시 한번 읊조리며 7번째 종주기를 맺습니다.

 

 

                                                        <산행사진>